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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경 Apr 01. 2024

셰익스피어의 비밀의 연인

책 속의 여자 ①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그대를 여름날에 비겨 볼까요? 

그대가 더 사랑스럽고 온화합니다 

거친 바람 귀여운 오월 꽃망울을 흔들고 

여름철의 기간은 너무 짧습니다      

하늘의 눈은 때로 너무 뜨겁게 빛나고 

그 금빛 안색은 자주 흐려집니다 

모든 아름다움에서 아름다움이 줄어들고 

우연이나 자연의 변화로 그 치장 빼앗깁니다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시들지 않고 

그대가 지닌 아름다움을 잃지 않을 것이며 

그대가 죽음의 그늘 속에서 헤매어도 

죽음은 뻐기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숨 쉴 수 있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한 

이 시는 그때까지 살아 그대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영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연애 시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소넷(14행시) 18번이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유명한 영화인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셰익스피어가 여주인공인 기네스 펠트로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나오던 시구로도 기억이 된다. 시인의 희망대로 이 시는 셰익스피어가 죽은 지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살아남아서 시속의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을 되살리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살아생전 그 많은 유명한 희곡들과 함께, 아무도 모르게 154편의 소넷을 썼다. 이 소넷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들로 원래 발표를 하기 위한 작품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1609년 토마스 토프라는 이름의 출판인이 도대체 어떻게 입수했는지 이 작품들을 손에 넣게 되어, <한 번도 출간된 적 없는 셰익스피어의 소넷(Shakespeare's Sonnets, Never Before Imprinted)>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출판 소식을 듣고 놀라다 못해 ‘겁에 질렸다('horrified')’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식적으로 출판을 허락해 준 적이 없었고, 대놓고 세상에 내놓기에는 이 작품들의 내용이 너무나도 사적이고 에로틱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때는 이미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라 권당 5펜스에 팔았던 그 소넷집은 불티나게 팔리고, 토마스 토프는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이처럼 은밀하게 연시를 써서 바쳤던 상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분분한데, 대개의 논의는 두 가지로 그 초점이 모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첫째, 셰익스피어가 이처럼 절절한 연시를 써서 바친 상대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주장이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 유명해지기 전에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셋이나 낳은 가장이었기 때문에 그가 일반적인 의미의 동성애자였다는 추정은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은밀하게 써서 남긴 154편의 소넷에 등장하는 상대가 여자가 아닌 어느 '젊고 아름다운' 남성인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우선 작품 속에서 그는 상대를 표현할 때, '내 사랑하는 소년(my lovelyboy), '내 열정의 주인이자 연인(themaster-mistressof my passion)', '내 사랑의 지배자(Lordof my love)', '그대는 나의 것, 나는 그대의 것(thou mine, I thine)' 등등의 표현으로 남성명사를 사용함으로써 남자임을 분명히 했다. 


 둘째, 소넷집의 서문에서 셰익스피어는 ‘오직 W.H.씨를 위해 이 소넷들을 바친다’라고 썼는데, W.H의 후보로 가장 유력한 사람은 3대 사우스햄턴 백작 헨리 리슬리(Henry Wriothesley)이다. 리슬리는 셰익스피어의 든든한 후견인으로, 갓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셰익스피어에게서 장시 '비너스와 아도니스(Venus and Adonis)'를 헌사받기도 한 장본인이다. 그는 분명 양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남겨진 그의 초상화를 보면 셰익스피어가 '신이 직접 그린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라고 한 표현이 납득이 될 만큼 굉장히 곱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극장환경에서 여자가 배우로 무대에 설 수 없었음을 감안할 때, 여자역을 하는 어린 미소년들을 많이 대해야 하는 직업적인 분위기도 아마 셰익스피어의 성향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수적인 추종자들은 그의 이러한 성향을 후대에게 숨기려고 노력했다. 소넷의 초기 편집자들은 작품 속의 남성형 대명사를 전부 여성형 대명사로 바꿔서 출판하기도 했다. 특히 윤리적 규율을 중요시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셰익스피어의 성 정체성을 이성애자로 규정하려고, 일부 작품에서 나타나는 동성애적 코드는 단순한 전문가적인 실험정신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소넷 작품들을 보면 셰익스피어에게 동성애, 혹은 양성애적 성향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대, 내 사랑의 주인이자 연인은

신이 직접 그린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대에게는 여인의 온화한 마음이 있지만

여인들이 결점인 변덕은 없습니다.     

그대의 눈은 그들보다 더 밝고, 더 진실하여

바라보는 모든 것을 밝게 비추지요.

아름다운 사내여, 모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다른 사내들은 부러워 쳐다보고, 여인들은 마음을 빼앗기지요.     

그대는 분명 여자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신마저도 그대를 만들다 사랑에 빠졌는지

그대를 향한 제 사랑을 가로막으려

나에게는 소용없는 하나를 더 만들었나 봅니다.     

하지만 신이 그대를 여성들을 위해 만들었고,

그들이 당신을 차지할지언정, 사랑만큼은 내가 품게 해 주세요.    

      

 소넷 20편 12행에 등장하는, 신이 청년의 몸에 만들었다는 '나에게는 소용없는 하나'는 성기의 의미로 해석되고, 13행에 등장하는 표현 'prick'd thee out'에서의 'prick'은 중의적 표현으로 out과 함께 사용되었을 때는 '선별되다'의 뜻을 갖기도 하지만, 명사로서 'prick'은 남성의 성기를 뜻하기도 한다. 즉 연인의 성기(육체)는 비록 여성들이 차지할지라도 그의 마음만은 자기 것으로 하게 해 달라는 소망을 중의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한편 이처럼 간절한 사랑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셰익스피어의 소넷 154편은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등장인물이 시인, 젊은 귀족 남성, ‘흑발의 여인(dark lady)’이라 불리는 미모의 여성, 이 세 사람 사이의 사랑과 갈등이 주된 주제이다. 즉 처음의 129편이 귀족 남성에 대한 내용, 즉 셰익스피어의 젊은 남성을 향한 흠모와 찬미의 내용을 담고 있고, 중간 부분은 ‘다크 레이디’에 대한 애증관계를 담고 있다. 화자는 청년을 사랑하는 한편 다크 레이디와도 관계를 맺고 있는데, 청년이 또 다크 레이디와 관계를 갖게 되면서 모두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애증에 휩싸이게 되는 내용이다. 

 두 사람의 절대적인 관계에 파란을 일으키게 되는 다크 레이디는 금발이 아닌 검은 머리의 여인으로 유럽인이 아닌 이민족 여인임을 암시한다. 다크 레이디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애정은 소넷 130편에 잘 드러나고 있다.

            

내 애인의 눈은 태양과 같지 않다; 

산호가 그녀의 빨간 입술보다 훨씬 더 빨갛다; 

눈이 하얗다면, 왜 그녀의 젖가슴은 암갈색일까? 

머리카락이 금줄이라면, 그녀의 머리에서는 검은 쇠줄이 자란다.      

내가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장미들을 보았지만, 

그녀의 뺨에서 그러한 장미들을 볼 수 없네; 

그리고 어떤 향수에서 더 좋은 향내가 난다 

나의 연인이 내뿜는 악취보다.      

내가 그녀가 말하는 것을 즐겨 듣지만, 음악이 훨씬 

더 즐거운 음을 들려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신이 걷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음을 인정한다; 

나의 애인은, 걸을 때, 땅을 쿵쿵 밝고 간다.      

허나, 맹세코, 나의 애인이 거짓 비유로 꾸며진 

그 어떤 여인보다도 진귀하다고 생각하노라.          

 

 젊은 귀족과 천재 작가를 모두 손안에 휘어잡고 흔든 이 팜므파탈적인 존재인 다크 레이디에 대해서는 최근 런던에서 유명한 매음굴을 운영한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데일리 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치체스터 대 셰익스피어 학자인 덩컨 샐컬드는 다크 레이디가 클럭큰월의 매음굴을 운영한 '루시 니그로'(Lucy Negro) 또는 '블랙 루스'(Black Luce)로 불린 여성이었음을 뒷받침하는 문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샐컬드는 당대 셰익스피어의 경쟁 극단 운영주이자 로즈 극장을 세운 필립 핸슬로이의 일기에서 블랙 루스에 대한 내용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블랙 루스는 이민자, 부자, 상류층 등 다양한 이들을 매음굴로 데려오는 것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유명했다’고 하는데, 만일 그의 주장이 맞다면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다크 레이디의 존재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는 소넷 144편에서는 그녀를 '나의 적'과 '사악한 천사'로 부르기도 했다. 또한 147편에서는 ‘나는 그대가 아름답다 선언하고 너의 눈부심을 생각한다. 지옥처럼 검고 밤같이 어두운 그대를’이라고 읇조리기도 했다. 마치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나오는 여인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강렬한 팜므파탈의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많은 문인들이 마약을 했었다는 정황에 근거해서 셰익스피어의 생가에서 발견된 도자기 파이프와 그의 작품에 나타난 환각적 요소들을 내세워 그의 영감의 근원이 마약이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생겨났다. 


 어쨌든 여러 정황에 미루어 볼 때 위대한 대문호인 셰익스피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결하고 모범적인 삶을 산 인물이 아니라, 자유분방한 예술가적인 삶을 산 인물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셰익스피어는 18세 때 8살 연상인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와 결혼해 딸과 쌍둥이를 낳았지만 이들을 모두 고향에 남겨두고 홀연히 런던으로 떠나서, 극작가이자 배우, 극단 운영자로 크게 출세했고 말년인 1612년 무렵이 되어서야 은퇴하여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관례적으로 아내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던 당시와는 달리 유서에서 자신의 아내에게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물려준다’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부부생활이 그렇게 원만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이 유추된다. 


 셰익스피어의 자전적인 내밀한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소넷 속에서 그는 시간과 죽음, 짧은 시간에 대한 명상과 함께 사랑은 난장판과 같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전하고 있다. 시인은 찰나적 인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으로 후손을 얻는 것을 권하는 동시에, 삶의 찰나성에 맞서는 시의 영원성을 강조한다.     

 

사람이 숨 쉴 수 있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한 

이 시는 그때까지 살아 그대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연인에게 써서 바치려고 썼던 이 연시들에 드러난 그의 간절한 소망은 400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이루어져서 그의 비밀의 연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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