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여자 /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영문학 사상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라면 대개 19세기 빅토리아조의 시인인 로버트 브라우닝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이야기를 첫 손에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두 번이나 영화화가 되었을 정도로 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스토리로,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완벽무결한 해피엔딩이라는 점에 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랑이야기들이 있다. 일례를 들어서 왕관을 포기한 윈저공의 사랑이야기를 보자. 한 나라의 국왕의 자리를 포기할 정도로 절실했던 사랑 이야기에도 세월이 흘러가면 석연치 않은 뒷이야기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말년에는 윈저공이 심프슨 부인에게 심한 구박을 받게 되어서 그의 선택을 후회했다는 둥, 아니면 심프슨 부인이 독일군 장교와 모종의 관계에 있어서 윈저공까지 나치와 연관이 있었다는 둥...... 완벽무결한 해피엔딩이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개운하지 않은 뒷이야기들이 끼어드는 것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야기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 같다.
모든 사랑이야기들이 동화처럼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이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의 사랑이야기에는 그 많은 우여곡절과 고난들을 모두 극복하고 맺어지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권태로운 삶’이라는 복병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해피엔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명시인, 불구의 환자를 사랑하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고요?
생각해 보죠
그 빛 안 보여도 존재의 끝과
영원한 영광에 이를 수 있도록
깊고도 넓게
높은 곳까지 사랑하지요
태양 아래서나 촛불 아래서나
날마다 부딪치는 작은 일까지도
사랑하지요
권리를 주장하듯 자유롭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칭찬을 외면하듯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옛 슬픔에 쏟았던 정열로써 사랑하고
내 어릴 적 믿음으로 사랑합니다
세상 떠난 성인들과 함께 사랑하고 잃은 줄만 알았던 사랑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한평생 미소와 눈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더라도
죽어서도 더욱 당신을 사랑하렵니다
영문학사상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연애 시의 하나로 손꼽히는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유명한 작품, <사랑법>의 전문이다. 이 시가 한참 연애 중인 사랑에 눈먼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면 누구나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모든 우여곡절을 겪고 결혼하고 난 다음에, 그러니까 어떤 사랑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는 ‘생활’과 ‘시간’의 끈질긴 공격을 다 받고 난 다음에 쓰인 시라는 점에서 그 희귀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과 로버트 브라우닝이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39세의 노처녀로 로버트보다 6세 연상이었다. 게다가 자리보전하고 누워 지낼 수밖에 없는 불구의 환자로 시한부 판정까지 받은 심각한 상태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시적인 재능을 보였던 엘리자베스는 15세에 낙마 사고로 척추를 다치고 불구의 몸이 됐다. 게다가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불행히도 가슴 동맥이 터져서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만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대에도 엄격하기로 소문난 무서운 사람으로 자식들을 모두 집안에 가둬두고 되도록 결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자리보전하고 누운 엘리자베스에게 어떻게 대했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엘리자베스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시를 쓰는 일밖에 없었을 터이고, 또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도 시밖에 없었을 것이다.
1844년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두 권의 시집을 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나는 당신의 시를 나의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나는 이 시집을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당신을.
이 용감한 편지를 보낸 사람은 그녀보다 여섯 살 연하의 무명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었다. 요즘에야 한 통의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는 삭막한 시대이지만 지금으로부터 몇 십 년 전만 해도 학보에 실린 글을 보고 연애편지를 보내고, 서로 편지가 오가다가 마침내 어느 날 어느 커피숍에서 머리에 빨간 핀을 꽂은 어느 여자와 어떤 책을 든 남자가 서로 만나게 되는 등등의....... 어렵지만 낭만적으로 연애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부부도 (지금은 이름만 대면 누가나 다 아는 유명인사들이 되었다) 대학시절, 이렇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글만 보고 편지로 연애하다가 맺어진 커플이 있다.
로버트와 엘리자베스는 그로부터 무려 570통이 넘는 편지를 서로 주고받았다. 하지만 장애를 갖고 있는 데다가, 그리 미인도 아니었던 엘리자베스는 그와 실제로 만남을 갖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서 볼만한 것은 아무것도, 나에게서 들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쓴 시가 저의 꽃이라면 저의 나머지는 흙과 어둠에 어울리는 한낱 뿌리에 불과해요.
현실에서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그녀의 마음이 읽히는 편지의 한 구절이다. 하지만 끈질긴 로버트의 구애 끝에 결국 그들은 실제로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그의 방문에 다음과 같은 소감을 털어놓을 만큼, 강렬한 첫인상을 받게 된다.
로버트가 방에 들어오고난 후, 그는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서 로버트는 강렬한 보호본능과 함께 마치 성안에 갇힌 공주를 괴물로부터 구해내야만 하는 흑기사와 같은 사명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강력한 부친의 반대에 시달리던 그들은 마침내 1846년,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멀리 이탈리아로 사랑의 도피를 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후 15년이 지나 엘리자베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영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까지도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탈리아로 사랑의 도피
이탈리아의 햇살과 사랑하는 남편의 따뜻하고 섬세한 보살핌 속에서 엘리자베스의 건강은 기적처럼 회복이 되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그녀는 놀랍게 건강해져서 나중에 조각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아들까지 출산, 행복의 절정을 누리게 된다.
로버트도 그녀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통해 시심이 폭발을 했는지, 여러 편의 걸작들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이들 부부는 비록 도피생활로 경제적으로는 그리 윤택하지 못했을지라도, 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 가정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그동안 몰래 써놓기만 하고 남편에게 차마 보여주지 못했던 사랑의 시들을 몰래몰래 남편의 호주머니 속에 넣어주곤 했다고 한다. 이 사랑의 시 중에 앞서 소개했던 <사랑법>이 있고, 또 유명한 소넷(14행시)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이있다.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부디 미소 때문에, 미모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그리고 또 내 생각과 잘 어울리는 재치 있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어느 날 기쁨을 주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고는 부디 말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러한 것들은 스스로 변할 수 있고
또 당신 편에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맺어진 사랑은 또 그렇게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고픈 그대의 연민 때문에
사랑하지 말아 주세요
그대에게 오랫동안 위안받았던 이는 웃음을 잃게 되고
그리하여 당신의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날 사랑해 주세요
언제까지나 그대 날 사랑할 수 있도록
영원한 사랑을 위해
이 시들을 혼자서만 읽기가 아까웠던 팔불출의 남편은 또 ‘셰익스피어 이래로 이렇게 훌륭한 시를 본 적이 없다’는 낯간지러운 말과 함께, 아내의 사랑 시들을 남몰래 엮어서 출판을 하게 된다. 마치 자신들이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들의 시를 모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제목인 <포르투갈인의 편지>라는 제목의 시집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사랑 시로 유명해졌지만 엘리자베스는 사실, 사회적인 문제에도 아주 관심이 많은 지적인 신여성이었다.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노동자들을 슬퍼한 그녀의 시 덕분에 영국의 노동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태리에서의 행복한 결혼생활 15년이 지난 후, 1861년, 그녀는 55세의 나이로 남편의 품에서 눈을 감게 된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그녀가 남편의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기적의 힘으로, 무려 십여 년 이상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 로버트는 ‘기분이 어때?’라고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의 마지막 대답은 ‘아름답다’였다고 한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20년간
그녀의 사후, 로버트는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20여 년간 독신으로 살면서,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더욱 공고하게 쌓아 올리게 된다. 그가 남긴 시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피파의 노래>라는 작품인데, 특히 다음과 같은 구절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아마 꽤 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시절은 봄
봄날 아침
아침 일곱 시
언덕 중턱엔 이슬방울 진주되어 맺히고
종달새는 높이 날고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앉았고
하나님 하늘 위에 계시니
온 세상은 모두 평화로워라
이 구절만을 읽으면 세상에 이렇게 낙천적인 시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구절이 나오는 <피파의 노래>라는 작품을 전부 다 읽어본다면 사실, 그 어느 신문기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 잔인한 세계에 깜짝 놀라게 된다. 이를테면 노동착취의 공장에서 364일간을 꼬박 일하는 여주인공은 마침내 창녀로 로마에 팔려갈 위기에 처해있고,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쌍의 남녀는 이제 막 여자의 남편을 살해했으며, 심술궂은 한 무리의 보헤미안들은 어떤 젊은이를 속여서 사기결혼을 시키고 있다는 등등 살인자들, 가학성 남편들, 비열하고 쩨쩨한 협잡꾼들이 우글거리는 전혀 평화롭지 않은 세계 속에서 피파라는 소녀 혼자서 ‘온 세상은 모두 평화롭다’고 읇조리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브라우닝은 사실 낭만적인 19세기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비참하며 모던한 20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시인이다. 하지만 그의 시세계를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사실, 불구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결코 미인이 아닌 39세의 노처녀에게서,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걸만큼의 절대적인 의미와 아름다움을 끝끝내 찾아냈던 불굴의 시인이 아니었던가?
브라우닝은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의 참혹함을 모두 뚜렷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끔찍한 현실세계 속에서도 높이 나는 종달새를 보고, 하늘 위의 하나님을 느꼈던 피파라는 어린 소녀처럼, 그도 쓰레기 같은 세상 속에서도 남들이 놓치기 쉬운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아내는 뛰어난 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불굴의 의지로 그 의미를 현실화시킬 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참혹하고 쓰레기 같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화’를 노래했던 피파처럼,,,,,, 처절한 절망 속에 있던 연인에게서 영문학 사상 최고의 사랑 시를 탄생하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님이여.
죽음의 꿈을 버리고 생의 낮은 경지를 다시 찾아오리다.
사랑! 나를 바라보소서.
나의 얼굴에 더운 숨결을 뿜어 주소서.
사랑을 위하여 재산과 계급을 버리는 것을
지혜로운 여인들이 이상히 여기지 않는 것같이.
나는 사랑을 위하여 무덤을 버리오리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고운 하늘을 그대 계신 이 땅과 바꾸오리다.
---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참으로 그러할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