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추

10. 복수(復讐)

by 김수현


10. 복수(復讐)

진수는 무일푼이 된 신세를 한탄하며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던 차에 몇 해 전에 관악산 등산을 가다가 꼭 자기와 같은 사람을 봤다고 말했던 직장 상사의 말이 생각났다.

“이 사람 진수?”

“네, 과장님!”

“얼마 전에 우리 총동문회를 서울서 했잖는가.”

“아, 예 서울서요?”

진수는 별 시답잖은 이야기라 건성으로 듣고 대답하는 중이었다.

“첫날은 동문들과 술을 마시고 이튿날은 등산을 했는데 새벽 일찍 관악산을 올랐단 말일세.”

“전날 술을 마시고 등산까지, 정력도 좋으시네요, 하, 하, 하 ”

“이 사람 이야기를 다 들어보게, 그런데 연주암에 올라갔을 때였어, 나는 깜짝 놀랐어, 바로 앞에 자네가 있지 먼가!”

“과장님도 참 근무 때문에 정신이 없는 제가 가긴 어딜 가요, 허허 참.”

“아 글쎄, 나는 그 사람을 보고 ‘자네 여기는 웬일로?’하고 반가워서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데 그 사람이 ‘누구신지?’하고 오히려 놀라는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지 않겠어? 그제야 나는 자세히 바라봤지, 자세히 보니 얼굴이 희고 부대가 흘러 아이고 사람을 잘못 봤구나 하고 미안하다 했지만 아무리 봐도 자네를 쏙 빼닮았더란 말이야, 그래서 돌아서서 몇 번을 보고 또 보고 했단 말일세, 나도 내가 아직 술이 덜 깼나 싶어 내 다리를 꼬집어까지 봤단 말이야, 내가 자네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어.”

“세상에 닮은 사람이 없겠어요, 과장님이 술을 자셔서 잘못 본 모양이지요.....”

“그래도 너무 닮아서......”

하던 상사의 이야기를 당시에는 지나가는 우스갯소리로 들었던 것인데 그때 일이 지금 생생하게 생각난 것은 참 신기하기도 했다.

그때는 폭격으로 주변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는데 동생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감히 생각지도 못해 대수롭지 않게 들었으나 지금 생각하니 나도 살았는데 동생이라고 살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수가 관악산 연주암에 간 것은 일요일 이른 새벽이었다. 이 마당에 동생을 찾아 관악산까지 간다는 것은 언감생심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사람의 마음에 귀신이 들려면 별 이야긴들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그는 혹시 동생이라도 살아 있으면 한 번이라도 만나 보려고 찾아왔지만 아침해가 떠오르도록 재수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때 죽었겠지!”

과장이 하던 그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찾아온 자신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돈도 없고 그리도 믿었던 미향이도 어디론지 떠나 버렸다. 전처와 자식도 몽땅 돈을 빼앗아 원수같이 떠나갔으니 도저히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손을 꼽아 봐도 대한민국에 찾아갈 곳은 자신이 차버린 처가 말고는 한 곳도 없었다. 세상에는 온통 혼자인 것 같았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아스라이 고향 집도 눈에 들어왔다. 이미 돌아가셨을 어머니 아버지 모습도 떠올랐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연주암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진수는 머리가 띵 했다. 배도 고프고 어지러웠다. 정신도 없었다.

“까짓 세상, 살아서 뭣하니!”

그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훨훨 하늘을 날아 버렸다. 순간이었지만 가슴이 참 시원하다고 느꼈다.

“퍽!”

무엇에 부딪쳐서 나는 소리가 진수의 귀에 잠깐이나마 선명하게 들렀고 캄캄한 어둠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금방 환한 빛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바로 그날 진수가 연주암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재수는 펑크 난 차를 정비하고 늦게 관악산 입구에 도착했다. 재수는 등정을 하려고 운전기사 정호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재수는 막상 등정을 하려고 몇 발짝을 옮기고 나니 먼저 간 일행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기사 정호를 돌려보낸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는 생각을 바꾸어 택시를 타고 그만 집으로 향했다.

그날 재수가 생각을 바꾸지만 않았어도 형 진수를 만난 것은 물론 진수가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 운전기사 정호와 아내 금순이가 저지른 더러운 꼴도 보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사고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수와 그의 형 진수의 이런 사실을 알 수 없는 금순이나 용천은 죽은 재수가 나타났다는 것에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용천은 아무리 생각해도 재수가 나타났다는 금순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용천은 분명히 그때 경찰에서 인계받은 재수의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을 보았고 화장까지 했지 않는가. 그러면 며칠 전에 용천이 금순의 집에 갔을 때 재수에게 따귀를 맞았다고 보여주던 금순의 얼굴에 난 손자국은 무엇이란 말인가. 용천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을 며칠이 지났는데도 잊을 수가 없었다.

“차 한 잔 드세요.”

점순이가 큰 쟁반에 차를 담아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밖에 나갔던 박 형사가 공구함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둘은 여러 차례 이방 저 방을 다니면서 콘센트를 뜯고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더니 몇십 분 뒤에 전깃불이 들어왔다.

“다 됐습니다, 이젠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하면서 소파 앞 탁자 위에 놓인 다 식은 커피잔을 들어 훌쩍 마시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두 사람은 주섬주섬 공구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밤늦게 고마워요.”

어두운 골목길에 세워 둔 차를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웠다.

그들이 떠난 다음 무섭다고 집에서 자고 가라는 금순을 겨우 떼놓은 용천은 한편으론 금순의 남편 출몰 소식 때문에 자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잔다는 것이 점순이 보기에도 그렇고 절에선 모두 무슨 일인가 온 신경을 쓰고 있는데 여기 온다고 해 놓고 자고 간다는 것이 주지로서는 도리가 아니란 생각에 억지로 일어섰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고.”

배웅을 받으며 금순의 어두운 얼굴을 미안한 듯 바라보던 용천은 냉정을 되찾고 발길을 옮겼다.

대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 금순은 한동안 체념한 듯한 얼굴을 하고 서 있다가 갑자기 굳은 얼굴을 하며 어금니를 물었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금순은 오늘에서야 뒤쪽 지하실이 마음에 걸렸다. 용천을 배웅하고 들어온 그녀는 시집을 와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뒤져 보지 않았던 지하실을 뒤져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금순은 용천을 보내고서야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무척 후회스러웠다. 남편 재수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항상 지하실 문을 꼭 닫아 놓고 있었고 좁은 뒤편까지에는 정원수가 꽉 들어차서 지하실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발길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두 번이나 재수가 나타난 것을 생각해 보면 재수가 귀신이 아니고서야 감쪽같이 집안에 나타날 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순이와 아들 훈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그녀는 신발장 위에 있는 손전등을 찾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멀리 산 아래 도시에는 수많은 불빛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밤은 깊어 가건만 하늘에 있는 별빛보다 더 많은 차량 행렬들이 길고 넓은 도로를 빈틈없이 메우면서 끝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당이 넓은 정원에는 시커멓게 우뚝 선 정원수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가끔 불어오는 미풍에 저승사자처럼 흔들거렸다.

현관 계단을 내려선 금순은 계단 밑에 있는 창고에서 배척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집 뒤쪽에 있는 지하실로 발길을 옮겼다. 그 지하실 주변에는 정원수 때문에 몸을 나무에 비비고서야 겨우 지하실로 통하는 좁은 통로를 들어설 수 있었다.

골목은 이웃집 담장 벽과 여섯 자 정도 떨어져 있었고 정원수를 피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지하실 문은 남편 재수가 무엇을 넣어 놓았는지 굵은 자물쇠로 잠가 놓았고 시집을 온 이래 지금까지 금순이도 이곳에 무엇을 넣어 놓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많은 정원수가 어두운 숲을 만들고 있었지만 손전등의 위력은 촉촉한 풀잎의 촉감까지도 금순의 빛나는 눈 속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집 모퉁이를 돌아섰다. 금순의 정신은 더욱 말똥거렸다. 가슴도 팔딱거렸다. 침을 넘기려고 하자 울대가 잘 열리지 않은지 입안에 남은 침이 겨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어머나!”

갑자기 움푹 들어간 벽 사이 허공에 손을 짚고 말았다. 금순은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금순은 몸의 균형을 바로 잡고 손전등을 비췄다. 물받이 턱 안쪽으로 회색 칠을 한 철문이 금순을 가로막고 있었다. 10여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발길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거미줄 하나 없이 깨끗했다. 금순은 누가 손을 댔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내 예감이 틀림없어!”

철문은 오른쪽 중간 문틀과 함께 경첩 위에 굵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금순은 손전등을 켠 채 바닥에 놓고 배척을 경첩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는 배척의 손잡이 끝을 있는 힘껏 아래로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삐그덕!”

이윽고 경첩의 이음매가 휘어지면서 연결고리가 빠졌다. 문은 안으로 열렸다.

문이 열리자 금순은 손전등을 다시 비춰 들었다. 계단참 벽면에는 여인 혼자서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액자가 정면 입구를 바라보면서 걸려 있었다. 액자는 벽면 중앙 공간을 넓게 자리 잡고 있었고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위로 말아 올린 귀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금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흥!”

금순은 비웃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금순은 그녀가 변재수의 전 부인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벽면과 천장에는 목재로 된 폭 좁은 티크 루버가 여러 겹의 니스 칠을 해서 어두우면서도 깔끔하고 섬세하면서도 육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금순은 손전등을 끄고 옆에 붙은 전원스위치를 켰다. 붉은색 전등이 희미하게 불빛을 밝혔다. 금순은 가져온 손전등보다 결코 밝지 않다고 생각했다.

금순은 여섯 개의 넓은 계단을 내려가서 계단참(站)을 돌아 다시 여섯 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마룻바닥은 오크 바닥재로 3 평방자씩 가로 세로로 깔아 놓고 니스를 여러 겹 칠해서 은은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삼나무의 원목으로 제작된 고급스러운 목재 문이 눈에 들어왔다. 금순은 문 옆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올리고 문을 열었다.

“아!”

금순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탄성이 나왔다. 금순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하에다 이렇게 화려하게 꾸며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실에는 디귿 자형의 붉은 가죽 소파에 용무늬가 박혀있는 자개 탁자, 섬세하고 육중한 크리스털 등, 드문드문 명화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고 자개 받침대 위에 도자기가 거실 등의 크리스털 빛을 은은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유리창 하나 없이 사방이 꽉 막혀있는데도 이 넓은 지하실이 습기와 탁한 공기가 하나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안방 문을 열어젖혔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화려한 자개농이 거실에서 스며드는 크리스털 빛에 의해 에메랄드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처음 들어올 때와는 달리 은은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지하의 환경에 동화되어 마음은 차분하게 안정되고 있었다.

화장실이 안방과 작은 방 사이에 있었고 작은 방문도 닫혀 있었다. 그녀는 작은 방문을 열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작은 방의 도어 록을 틀었다. 쉽게 열리리라는 기대와 달리 문은 꼼짝하지 않았다. 도어 록을 몇 번 흔들던 그녀는 방문 여는 것을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녀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털썩하고 침대에 걸터앉고 말았다.

그때였다. 작은 방에서 신음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작은방을 향해 귀를 기울이며 막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밖에서 철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어서 계단에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금순은 얼른 숨을 곳을 찾았으나 어디 한 곳 마땅히 숨을 곳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금순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어차피 재수 당신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닌가, 분명 재수 당신이겠지.”

금순은 그를 만나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이를 물었다.

참으로 기다리는 순간이 잠깐이었지만 금순으로서는 아주 긴 시간이었다.

거실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모자 달린 긴 옷을 입은 사내였다. 그의 모자는 앞에 챙이 너무 길어 눈까지 내려와 누구인지 얼른 알아보기 힘이 들었지만 금순은 십수 년을 함께 살아온 재수의 정취를 그동안 떨어져 있었다고 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당신?”

재수였다. 그는 낮고 강한 어조로

“당신? 당신이란 말이 나와? 나쁜 년, 네년이 운전수와 붙어서 절벽에다 나를 갖다 버려?”

원망에 찬 말을 하면서 재수의 발길이 점점 금순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금순은 재수를 피해 침대 위로 올라갔다. 아니 피할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가소로운 년, 네년이 도망간 들 어디를 가겠어, 그래, 한번 도망가 보지 그래!”

금순은 침대 위 벽에 엉거주춤하게 기대서서 점점 다가오는 재수를 향해

“가까이 오면 소리 지르겠어, 저리 가!”

하고 손사래를 치자

“흥, 지를 테면 질러봐, 여기가 지하실이야, 네년이 아무리 소리 질러도 밖에는 모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자, 한번 질러 보시지, 설령 소리 질러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러면, 그러면 결국 네년이 한 짓이 모조리 들통이 나겠지? 그때는 어떡할까? 그때도 용천이란 그 중놈이 살려 줄까?”

금순은 할 말이 없었다. 입이 백 개라도 남편 재수에게 무엇이라고 변명할 말이 없었다.

“나를 어쩔 거야?”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 천하에 갈보 같은 년, 네년을 어째 죽일까? 그래, 오늘은 왼쪽 팔을, 내일은 오른쪽 팔을, 사지를 하나하나 찢어서 죽여야지, 안되지, 빨리 죽으면 안 되지, 네년을 쉽게 죽이면 내 골수에 맺힌 원한을 갚을 수가 없지, 네년이 죽고 나면 내 살아 있는 동안 치가 떨리도록 분한 마음을 어떻게 채워 나가겠어, 안되지, 하루에 손마디 하나씩 잘라서 몇 년을 고통을 느끼다가 죽게 해야지, 자, 긴말 필요 없어, 어차피 잡힐 거니까 좋게 말할 때 이리 오지......”

그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싸 놓은 것을 꺼내 펼치기 시작했다. 푸줏간에서나 사용하는 날이 시퍼렇게 든 칼이었다.

이를 본 금순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본래의 독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때 칼을 쌌던 신문지가 채 떨어지지 않고 끝부분이 칼끝에 매달려 있자 금순을 향하던 재수의 시선이 잠시 신문지로 옮겼다.

금순은 이틈을 타 재수의 가슴팍을 힘껏 두 손으로 밀면서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재수는 자개장 앞으로 밀려 넘어질 뻔하다가 겨우 장롱에 의지해서 중심을 잡았다. 그 바람에 재수가 든 칼이 바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찌나 날이 들었는지 바지는 금방 가로로 칼날 같은 금이 가 있었고 살이 비었는지 재수의 손길이 그 위를 문지르자 피가 묻어 나왔다. 그는 절뚝거리면서 급히 금순을 따라갔다.

금순은 급한 나머지 미닫이 거실문을 여닫이로 착각했다. 문을 몇 번 밀려고 하는 순간 재수는 금순의 바로 뒤에 다가왔다. 재수가 든 칼이 사정없이 금순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금순의 어깻죽지가 뻐근해 오는 것을 느꼈다.

“살아야 해!”

금순은 중얼거리며 재수의 팔을 피해 다시 문을 옆으로 밀었다. 금순은 자신의 어깨에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계단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허벅다리에 쇠꼬챙이 같은 금속이 닿는 것을 느끼는 순간 픽하고 맥없이 계단을 끌어안고 쓰러지고 말았다. 동시에 눈에 별이 번쩍였다.

재수의 발길이 금순의 머리를 힘껏 짓밟았고

“팅~!”

하고 계단귀퉁이에 머리 부딪히는 소리가 금순의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금순의 한쪽 머리에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망할 년!”

재수는 발로 금순의 머리를 잔인하게 밟아 짓눌렀다.

“안...... 돼, 살...... 아...... 야...... 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금순의 입은 경련이 일 듯 아주 가늘게 떨었다. 금순은 자신이 시커멓고 끝도 없는 깊고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그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면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용천이 사찰에 돌아오자 사찰에는 공양주 보살만 사찰에 남겨 놓고 일도도, 혜천도 김 처사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용천은 사찰에 혼자 남아 부엌 설거지를 하는 공양주 보살인 순자를 불렀다.

“스님들은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그리고 김 처사는요?”

“예, 수용소에서 환자 한 사람이 없어졌다니 더.”

“아니, 없어지다니요? 누가요?”

“지는 잘 모르겠심니더.”

순자는 두 마디 말만 대답하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침 그때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김 처사가 들어왔다. 그는 용천을 보고

“스님, 환자가 도망을 갔는데 지금 찾고 있습니다.”

“누굽니까?”

“예, 준혁이란 환잔데, 왜 자기가 미치지 않았으니 보내 달라고 생떼를 썼던 환자 있잖습니까?”

“아~ 그 환자!”

“예, 첨 들어와서 말썽도 많이 피웠잖습니까.”

“놓쳤어요?”

“이 좁은 바닥에 지가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기껏해야 기차역뿐이 잖습니까? 곧 잡힐 겁니다.”

“그런 환자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니, 쯪쯪, 도대체 일도는 뭘 하고 있었는지, 수면제는 뒀다가 어디다 쓴답디까?”

“아닙니다, 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밭일을 마치고 오는 도중에 슬쩍 빠진 모양입니다.”

“김 처사, 이번에 잡으면 본보기로 두 번 다시 도망 못하게 버릇을 확실하게 들이라고 지시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던 김 처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런데 큰스님, 우리 농장이 요양원 뒷산 넘어있으니 무슨 구체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니는 길이 너무 험해서 도중에 누가 업어 가도 모르니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낸들 그걸 모르겠습니까? 내게 계획이 있으니 잠시 뒤에 감독관을 비롯하여 모두 모이라고 하세요, 할 이야기가 있으니......”

“요양원 식당으로 모이라고 할까요?”

“회의 준비를 하고 모이라고 하세요.”

마침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혁이란 자가 잡힌 모양이었다.

“기차를 타려고 역 울타리에 숨어든 것을 퇴근하던 이 형사가 수상해서 검문하려고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을 잡았답니다. 마침 우리가 역으로 환자를 찾으러 가자 이 형사와 마주쳐서 쉽게 넘겨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 그래, 그래, 이 형사...... 자네가 내일 이 형사에게 알아서 수고비나 좀 주게나.”

“예.”

보고를 마친 일도는 감독관들과 준혁을 데리고 요양소로 들어갔다. 일도는 오늘 준혁이란 환자가 도망친 덕에 저녁 공양도 채 하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동분서주했던 일을 생각하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잡히자 말자 준혁의 따귀를 올려붙였지만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일도는 주지 용천의 지시도 있고 이왕지사 내친김에 준혁에게 직접 본때를 보여 주려고 작심을 했다.

일도가 요양소 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지시를 받은 감독관이 준혁을 꿇어앉혀 놓고 있었고 준혁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애원하는 눈동자로 일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준혁은 이곳으로 들어올 때의 얼굴이 아니었다.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제법 뼈대도 크고 근육이 있어 힘깨나 쓰게 보였는데 지금 보니 피골이 상접해서 그 큰 눈이 굵게 튀어나와 사람의 가죽을 썼을 뿐이지 귀신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말짱한 정신으로 미친 사람들 수용소에 들어와서 수년간 미친놈 취급을 받았으니 그의 속은 미치지 않았다 해도 이미 미쳐 있을 것이다.

준혁이 가족들에 의해서 이곳까지 끌려 들어와서 당한 고초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일도의 잔인한 매질은 준혁을 꼼짝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작열하는 땡볕에서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미친놈이라고 보리밥 반 그릇에다 나물국이 전부였다. 거기다가 주지란 자가

“미친 자식들은 이 세상에서 전연 쓸모없는 쓰레기 들이다, 보리밥 한 톨도 저들에게 먹이기 아까운 음식이니 죽지 않을 만큼만 쳐 먹여라, 그리고 잠은 조금만 재워라, 일을 시키고 말을 듣지 않는 놈은 말을 들을 때까지 가차 없이 두들겨 패라, 매에는 장사가 없느니라.”

설령 제정신을 가진 준혁이라 하더라도 수십 차례 반항하고 도망 다니다가 잡혀 수면제를 먹이고 매질을 당했으니 자기 정신이었겠는가.

“이 사람아, 아무리 미친 사람이라도 사람 애간장을 적당히 먹여야지, 안 그래?”

“스님,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

“빡!”

일도의 발길이 준혁의 뼈만 남은 관자놀이에 정확하게 날아왔다. 벌렁 나자빠진 준혁은 일도의 발길 한 번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야, 물 부어!”

감독관이 떠다 놓은 양동이 물을 쓰러진 준혁에게 부었다. 준혁이 다시 정신을 차리자 이번에는 얼굴 한가운데로 발길이 날아왔다.

“어이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려 코와 입 주위를 검붉게 물들였다.

“퇫!”

자세를 바로잡은 준혁은 아까와는 달리 상대를 잡아먹을 듯이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피와 뒤섞인 가래를 일도의 바지 위에다 뱉었다.

“이 더러운 자식, 이 자식 눈깔 좀 봐라, 그래도 이 자식아, 네놈이 미친놈이 아니란 말인가? “

하고 다시 한번 발길로 얼굴을 향해 내 질렀다.

“이 쌍놈의 자식!”

일도도 비록 땡추지만 그래도 부처의 모습을 마음으로 새기며 수십만 번 아미타불을 부른 기도승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의 입에서 시장 잡배의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그는 일어서서 닥치는 대로 준혁을 밟고 때리고 또 밟았다. 아마 주지 용천이 지시한 회의 소집만 없었다면 준혁이 두 번 다시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저녁 사찰에 간부급들은 모두 모였다. 지금까지 환자 중 일부가 심심찮게 도망을 가다가 잡히는 일이 발생한 데 대한 대책 회의였다.

사찰이 소유하고 있는 논밭전지는 대다수가 요양원의 뒷산을 넘어서 계곡에 있었다. 움푹 들어간 계곡은 위에서부터 입구까지 작은 개울을 따라 층층이 전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여기에다 정신병 환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문전옥답으로 일구어서 하나같이 문전 답이었다.

그곳 전답은 지금껏 용천이 요양원을 운영해서 마련한 땅이었고 그 땅이 이제는 수십만 평의 옥토가 되었다.

처음 살 때는 자갈밭이나 다름없는 이 땅이 지금은 금싸라기가 되어 몇십억 몇백억이 나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또한 여기에서 생산되는 많은 곡식은 사장으로 비싼 값에 팔려 나가 용천의 배를 더욱 불려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람의 발길이 뜸한 이 계곡의 땅이 누구의 땅인지도 몰랐으며 돈 한 푼 안 드는 요양원 환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일군 금싸라기 땅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일도가 먼저 회의의 운을 띄었다.

“오늘 작업을 하던 환자 한 명이 대열을 이탈해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만 무사히 잡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날 수십 명을 작업시키자면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감독관을 늘려 감시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여기에서 우리 요양원 뒷산을 넘으려면 길도 험할 뿐만 아니라 이들 한두 명이 눈을 피해서 이탈하면 잡을 길이 없습니다, 좋은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무식한 감독관들이라 좋은 계획이란 있을 수도 없었다. 모두 남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 뿐 누구 한 사람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 뒤 용천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우리 농장까지는 산이 험해서 요양소 환자가 도피해서 숨어 버리면 잡을 길이 없는 것은 사실이오, 다른 방법은 없소, 내가 예전부터 계획한 것이 있소, 그래서 여러분을 모이라고 했어요, 자, 각자 도면을 보시오, 내가 벌써부터 짜 논 도면이오, 이 일을 천천히 실행하려고 했습니다만 이런 일이 발생하니 일을 앞당겨야겠소, 내일부터 요양원 내부 뒤편부터 산 넘어 우리 농장까지 땅굴을 파는 거요, 저놈들에게 지금부터 조를 짜서 내일 당장 저녁을 먹이고 작업을 실행하시오, 감독관은 환자들에게 조금도 틈을 줘서는 안 될 것이오. 그들은 다섯 시간 이상은 잠을 재우지 마시오, 그리고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작업을 마친 후에는 깨끗이 씻어서 잠을 재우시오, 장비는 이미 마련해 놓았으니 창고에 가서 확인하기 바라오.”

용천의 용의주도한 말을 들은 감독관과 간부들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다음 날부터 땅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땅굴을 파는 사람, 흙을 싣는 사람, 나르는 사람으로 조를 짜서 착착 진행했고 일사불란하게 일은 진행되었다. 해머 드릴과 곡괭이, 삽, 리어카가 동원되고 폭행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비록 정신병 환자들이었지만 경찰봉과 쇠 파이프 앞에서는 순한 노예나 다름없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했지 않는가. 과연 용천이었다.

사찰 내가 조용해지자 용천은 다시 금순이 생각이 났다. 어제 본 금순이의 모습에서 왠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대로 뿌리치고 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내일은 꼭 금순의 집을 찾아가서 그녀의 마음을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용천은 밤이 새도록 이상한 생각이 들고 불안한 마음에 밤잠을 설쳤다. 겨우 새벽녘에 깜박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사이 용천은 꿈을 꾸었다.

금순은 머리를 산발하고 옷은 갈기갈기 찢어진 채 주지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용천의 바로 앞으로 쓰러졌다. 만세력을 펼쳐 들고 날짜를 찾던 용천은 깜짝 놀랐다. 용천은 얼른 일어서서 금순을 안으려고 다가갔다. 순간 금순은 얼굴을 들고 용천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용천의 얼굴에다 피를 토하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용천은 어찌나 놀랐는지 그만 잠이 깨고 말았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 후로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용천으로서는 하산하고 단 한 번도 꾸지 않았던 그런 잡스런꿈이었다.

그는 그 길로 일어나서 서울 금순이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꽤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대문은 열려 있었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없는 집에 들어가서 기다리자니 좀 멋쩍기도 해서 그는 거실에 들어가지 않고 현관을 오르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금순은 나타나지 않았다. 금순이뿐만이 아니라 학교에 갈 그의 아들 훈이도 아침밥을 해야 할 식모 점순이도 이른 아침인데 어디로 갔는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용천은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우선 사람도 없고 앉아 있으려니 마음도 편치 않아 집안이나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용천은 우선 그녀의 집 건물을 한번 훑어보았다. 과연 육중하고 큰 집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대지가 족히 한 오백여 평이나 될 것 같았고 식구가 몇 되지는 않았지만 이층 집이었고 외벽에는 대리석으로 치장한 잘 지어진 건물이었다.

넓은 정원에는 몇십 년 된 정원수 여러 그루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아침 이슬을 머금은 초록빛 잔디밭이 은빛 광체를 반짝이고 있었다.

정원 중앙에는 조경석으로 둘러싸인 연못을 중심으로 여섯 쪽 분수가 사람의 그림자가 없는 아침인데도 물을 뿜고 있었고 물은 적은 도랑을 거쳐서 용천이가 서 있는 작고 앙증스러운 다리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연못에는 손바닥만 한 금빛 잉어들이 무리를 지어 점잖게 물길을 따라 거닐고 있었고 일부 무리들은 분수대에서 이곳 다리까지 작은 수초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용천은 잔디 사이에 놓여 있는 사각 칼라블록으로 된 좁은 정원 길로 올라섰다. 굵은 등나무 두 그루가 서로 마주 보며 꽈리를 틀면서 아치형의 조형물 위로 터널을 만들고 있었고 터널 뒤에는 넓은 통유리로 된 2중 유리문 한쪽이 열려 있었다. 그 사이로 호화로운 거실이 용천의 눈에 들어왔다.

용천은 뒷짐을 진 채 차근차근 눈여겨보면서 좁은 뒷담 경계선을 돌았다. 제주에서 떠 온 돌인 듯한 검은색의 곰보 난 두 개의 망부석이 왕방울 눈을 부릅뜨고 용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천이 망부석 뒤를 힘겹게 지나 건물을 막 돌아서자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용천의 생각으론 다니는 길도 없이 조경수로 꽉 들어찬 이곳에 지하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천은 도어 록을 잡았다. 지하실 문의 장식이 녹슬지 않은 것을 보면 최근에 단 것이라고 용천은 생각했다. 자물쇠가 잠기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문은 아무리 밀어도 꿈쩍을 하지 않았다.

“안에서 잠갔나? 그럼 누가 있다는 건가?”

용천은 몇 번을 흔들어도 보고 두드려도 봤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것 참 이상하군, 안에서 걸렸다면 누가 있을 텐데...... “

그 시간 금순은 지하실 방에서 온몸이 꽁꽁 묶이고 입에는 초록색 테이프로 감겨 있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때마침 재수가 다가왔다. 재수는 말없이 금순의 한쪽 팔을 풀었다.

“이 사람이 그래도 자기 아내를 알아봐서 풀어 주려나?”

하고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금순은 해보았다. 순간 재수는 금순이의 손가락을 탁자 위로 잡아당기고 팔을 자신의 한쪽 무릎 사이에다 끼웠다.

“날도 밝았으니 작업을 시작해야지!”

그는 금순의 손가락에다 시퍼런 푸줏간의 칼을 올려놓았다.

“오늘은 네년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이다, 이제부터 내가 당한 고통이 얼마나 괴로웠다는 것을 네년이 곧 알게 될 것이다, 하루에 한 마디씩 난도질해서 고통을 줄 것이다.”

“으음음......”

새파랗게 질려서 살려 달라고 아무리 애원했지만 금순이의 코에서는 신음소리만 흘러나왔을 뿐 입은 테이프로 감겨 있어서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흥, 살려 달란 말이지? 그래, 살려주지, 암, 살려 주고말고, 네년이 피가 다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살려 두고말고......”

재수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면서 금순의 엄지손가락 첫마디에다 칼을 올려놓고 막 누르려고 팔목에 힘을 주려 할 때였다.

그때 밖에서 용천이 문을 흔들어 보다가 이번에는 두드려 보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금순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재수는 누르려던 칼자루로 금순의 목덜미를 힘껏 내려쳤다.

“끄으응......”

금순은 신음소리를 내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밖에서 아무리 두드리고 흔들어 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용천은 밖에서 자물쇠도 없고 문도 열리지 않아 미심쩍은 마음은 들었지만 그래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용천이 문을 여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서 나가자 한참을 기다린 재수는 금순을 그대로 두고 작은 방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했던 임정호가 몸이 묶인 채로 역시 입에는 테이프가 감긴 채 옆으로 쓸어져 있었다. 정호의 다리는 피부가 벗겨진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겨우 숨을 쉬면서 고통을 버티고 있었다.

재수는 정호의 윗도리 목덜미를 움켜잡고 질질 끌어서 금순이 방으로 들어왔다.

“네년 놈들 오랜만에 만나니 무척 반갑지? 어디 지금 이 자리에서 화양 질을 한번 해 보지 그래, 야! 이 새끼, 일어나!”

잠시 기절했다가 정신이 든 금순은 정호를 보자 깜짝 놀랐다. 벌써 죽어서 물고기 밥이 되어야 할 사람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재수는 밥이 담긴 냄비를 가져왔다. 그리고 둘의 입에 감긴 테이프를 뜯어냈다.

“자, 처먹어라, 먹고살아야 내가 두고두고 복수를 하지......”

얼마를 굶겼는지 정호는 팔이 묶인 채로 얼른 몸을 끌고 와 고개를 밥 냄비에 넣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 정호를 금순은 애처롭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네년은 배 때지가 아직 부른 모양이지? 그래 조금 더 굶어봐라, 안 처먹고 배겨내나......”

그는 밥그릇을 차듯이 발길로 저만치 밀어냈다. 정호는 밥그릇을 따라 기어갔고 팔이 묶인 채 입을 대고 정신없이 핥아먹고 있었다. 한참 밥을 핥아먹던 정호가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금순을 쳐다보았다. 정호의 입과 코에 밥알이 묻은 채로 쳐다보는 정호의 깡마른 얼굴을 본 금순은 더욱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정호는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다리에 통증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수는 금순과 정호를 끌고 와서 함께 팔을 침대 다리에 끼워 수갑으로 채운 후에 밖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서인지 밖으로 나갔다.

둘은 수갑이 채워진 채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중에 재수가 문밖으로 나가자 금순이 먼저 말을 걸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죽은 줄 알았겠지! 내가 차에서 튕겨 나와 강물에 빠졌으니깐!”

“그런데 어떻게?”

“아마 차에서 튕겨 나왔을 때 머리를 어딘가에 부딪쳐 기절한 상태에서 물에 빠졌던 모양이지, 그러니깐 내가 물에 빠졌어도 물을 먹지 않았지. 이게 모두 하늘이 나를 살려주신 거지...... 내가 깨어나 눈을 떴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어, 내가 어떻게 떠내려왔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눈을 떠보니 수초더미 위에 내가 있는 게 아니겠어, 내가 두물머리로 떠 내려와서 수초더미에 걸린 거야, 그래서 살아났지, 그 순간 나는 내 명이 무척 길다는 생각을 했어, 나는 물에 빠진 옷을 빨아 적당히 말리고 어렵사리 너의 집까지 왔었지, 우리가 절벽에 버린 재수란 놈이 살아서 이곳 지하실에 진을 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내가 오자마자 나보다도 더 질긴 목숨을 가진 저 미친놈에게 잡히고 말았지!”

“아~!”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서야 금순은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저 재수란 놈이 내 다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어, 저놈은 제정신이 아니야, 정신 이상자야, 저놈이, 저 사이코 같은 저놈이 나를 포를 뜬다고 회칼로 내 다리 껍질을 벗긴 거야, 그리고는 천천히 다른 다리 껍질을 벗기고, 팔을 벗기고, 온몸을 차례차례 포를 뜨고는 맨 마지막에는 얼굴을 뜬다고 하더군, 그러면서 저놈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면서 좋아하고 있었어.”

“아니, 그러면 칼로 다리를 저렇게 만들었다고?”

금순은 피부 껍질을 벗기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진저리를 쳤다.

“우리가 잡혀 오기 훨씬 전에 저놈은 미리 철저한 준비를 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내 몸 마디마디를 꼼짝 못 하게 묶을 형틀을 만들어 놓고 말이야.”

“형틀이라니?”

금순은 조선시대에 있을 법한 형틀이라는 말에 눈을 휘둥그리며 반문하자

“칠성판이라고 알지? 시체를 관 속에 넣을 때 같이 넣는 칠성판, 저놈이 벌써부터 이곳 지하실에다 진을 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마침 내가 나타나자 얼씨구나 하고 나를 잡아 칠성판에다 마디마다 사람을 묶는 가죽끈을 끼워 넣고는 나를 거기다 눕히더군, 그리고 가죽끈으로 묶고서는 회칼로 내 다리의 옷을 찢고 꼼짝 못 하는 나를 칼로 포를 뜨는 거야, 살아 있는 생사람의 피부를 회칼로 얇게 벗긴다고 생각해 봐, 저놈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피부를 벗기던 놈이야, 내가 까무러지게 아파서 이를 갈면서 견디는 동안 저놈은 회칼로 내 피부 껍질을 벗기면서 무엇이 좋은지 혼자서 킬킬거리더군, 내 다리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방을 방울 맺히는 핏방울을 보는 저놈의 눈은, 기절할 정도로 통증을 감내하는 내 모습을 볼 때의 저놈의 눈은 결코 사람이 아니었어!”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저놈이 말하더군, 우리가 절벽에 떨어뜨렸을 때 살아나서 정육점 사장 집 앞까지 기어 와서 쓰러졌다는군, 그래서 배운 것이 칼로 고기를 써는 일이었다는군, 그 덕에 내 다리를 포를 떴지만 말이야, 너도 별수 없이 당할 거야,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차에 튕겨 나와 저 넓은 한강에 빠져도 산 내가, 이렇게 질긴 목숨인 내가 여기서 죽겠어? 나는 꼭 살게 될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여기를 빠져나가면 같이 외국으로 도망가자, 거기서 새로운 삶을 사는 거야.”

“흥, 난 싫어!”

금순은 용천이면 모를까 지금의 정호는 싫었다.

“싫다고? 그러면 만약에 여기를 빠져나가면 어디를 갈 건데? 당신은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어, 나는 물에 빠졌을 때 죽은 사람이라 경찰에서 찾지도 않겠지만 살아 있는 당신은 재수를 죽인 살인자로 수배를 받을 거야, 거기다가 재수까지, 저 미친놈이 당신을 가만 놔두겠어? 끝까지 찾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호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남편인 재수가 연주임에서 떨어져 죽은 것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만약에 경찰이 재수가 살아 있는 것을 알면 분명 수사는 다시 시작될 것이고 결국에는 자신과 정호가 산 사람을 절벽에 떨어뜨렸으니 살인미수로 수갑을 찰 것은 빤한 이치였다.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해! 같이 이 나라를 뜨는 거야.”

“우선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갈 건데?”

“글쎄,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풀이 죽어 있던 정호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잠깐잠깐, 당신 허리를 구부릴 수 있지? 그래, 우리는 살았어, 당신 말이야, 몸을 앞으로 당겨서 침대 밑으로 들어가, 병신 자식이 우리를 살려 주려고 침대에 수갑을 채웠어.”

“발목이 묶여서 힘들어!”

“죽고 사는 문제야, 어서 침대 밑으로 들어가!”

금순이 기다시피 겨우 침대 밑을 들어가자

“그렇지, 그리고 힘껏 침대를 위로 치켜들고 수갑이 채워진 손을 빼, 그렇지, 조금만 더! “

“됐어, 빠졌어!”

“그럼 빨리 발에 묶인 줄을 풀어, 그리고 내 쪽도 들어줘, 나는 다리 때문에 힘을 쓸 수가 없어.”
정호의 팔을 빼고 다리에 묶인 줄을 풀자마자 지하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방문 뒤로 숨어, 저기 주둥이 좁은 도자기를 들어, 나도 하나 주고, 그리고 재수가 들어오면 힘껏 뒷머리를 내려쳐, 힘껏 쳐야 해? 잘못하면 우리는 끝장이야, 알았지?”

점점 발소리가 그들이 있는 안방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금순은 숨을 죽이고 도자기를 치켜든 채 방문 뒤에 바짝 붙어 섰다. 정호는 침대 다리를 붙잡고 묶여 있는 시늉을 하고 있었고 혹 설 맞아서 비틀거리면 자신도 도자기를 들고 재수를 치려고 침대 밑에 도자기를 숨겨두고 있었다.

그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재수는

“아니, 이 년은 어데 갔어?”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순간 문 뒤에 숨어 있던 금순은 있는 힘을 다해 재수의 머리를 향해 도자기로 내려쳤다.

“퍽!”

재수의 머리에 맞은 도자기는 산산조각이 났고 재수는 앞으로 넘어졌다. 동시에 정호는 숨겨둔 도자기를 잡고 또 한 번 재수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려쳤다.

정호와 금순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손발이 척척 잘 맞았다. 둘은 쓰러진 재수를 침대로 끌고 와서 자신들을 묶었던 밧줄로 꽁꽁 묶어 버렸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서 지하실 문을 처음대로 자물쇠로 잠가 버렸다.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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