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이후
1994년 10월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이듬해 6월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다. TV에서는 하루 종일 구조 작업이 방영됐다. 수일만에 구조된 '잘생긴' 청년은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2019년 현재 삼풍 백화점 자리에는 그때보다 훨씬 더 높은 주상복합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그 시대의 실수를 우리는 더 높고, 더 튼튼한 건물의 위용으로 보상하려 했던 걸까? 우리는 그동안 어떤 반성을 했기에.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왔다. “와~” 엄청난 인파에 엄청난 함성이었다. 깃발이 나부끼고 열기가 대단했다. 규모 때문인지 감동이 몰려왔다. 1997년 한총련 출범식이다.
한총련은 '한국총학생연합회'의 준말이다. 출범식은 매년 5월 말에서 6월 초에 이뤄졌다. 그해 출범식은 H대학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전투경찰의 철통 방어를 뚫지 못해 집회는 일주일이나 계속됐다. 나 역시 일주일 동안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학교에서 노숙을 했다.
첫날은 K대학의 어느 강의실에서 잤다. 나는 책상 위에서 잤고, '순박한 농촌 머리' 선배는 바로 옆에서 의자를 붙여 잤다.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지만, 피곤했는지 이내 곧 잠들었다. 동이 틀 무렵 나는 옆으로 누워 자다가, 잠결에 바로 누웠다.
'퍽' 소리가 나자, “억” 하고 깼다.
일어나 보니 나는 선배 배 위에 있었다. 선배는 아프다며 빨리 내려오라고 했고, 나는 푹신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데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앗,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나는 책상에서 떨어졌고 하필이면 떨어진 곳이 '순박한 농촌 머리' 선배의 배 위였다. 선배는 화도 못 내고 배를 움켜쥐고 "어우씨"를 연발했다. 나는 죄송한 마음과 동시에 자꾸 웃음이 났다. 참느라 혼났다.
낮에는 ‘제니스 조플린’ 선배가 응원 왔다. 햄버거, 초코파이, 콜라 등 간식을 사 갖고 왔다. 너무 반가웠다. 햄버거가. 햄버거를 앞다퉈 집었다. '제니스 조플린' 선배는 이미 뒷전으로 밀린 상태였다. 우리는 햄버거를 향해 일제히 입을 크게 벌렸다. 바로 그 순간, 저쪽에서 다른 학교 학생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우리에게 매우 다급하게 다가왔다.
“학우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미제의 음식을 먹습니까?”
맞다, 우리 운동권 학생들은 '말보로'(미제 담배)도 안 피고 '노랗고 납작한 차'(그게 미제인지 유럽제인지 모르고 그냥 넓은 의미의 미제로만 안다)의 출입도 막을 정도로 미국을 싫어한다. 우리는 벌렸던 입을 다물고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하고 모두들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배 나온 머리 큰' 선배가 우리 사이를 헤치고 나왔다.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난세의 영웅처럼. 그리고 그를 향해 당당하고도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롯데리아는 한국껍니다.”
선배 덕에 우리는 햄버거를 사수했다. 콜라만 하수구에 장렬히 버렸다. 나는 그날 '배 나온 머리 큰' 선배를 존경했다.
모든 집회가 그렇겠지만 한총련 역시 중앙에서 작전을 세우고 각 단위 조직으로 지령을 내렸다. 전문 용어로 그걸 ‘택’이라고 한다. 우리는 서울대에 입성하라는 택을 받았다. 택은 ‘배 나온 머리 큰’ 선배가 받아서 우리에게 전달했다. 사실 1학년인 나에게는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가라면 가고 외치라면 외치고 먹으라면 먹고 싸라면 쌀 뿐이다.
"버스에 타"라고 해서 버스에 탔다. 버스 안에는 일행과 다른 학교 학생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도 있었다. 쇠파이프를 든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무시무시한 사수대였다. 쇠파이프는 하얀 헝겊으로 칭칭 감겨 있었다. 시민에게 최대한 위협이 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미 위협적이었다. 죄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데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용역 깡패'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사수대는 위험성 때문에 고학년 중에서 선발한다. 그러나 지금 보니 선발 기준이 하나 더 있는 듯했다. 바늘로 찔러보고 피가 나는지 안 나는지.
버스에서 한 학생이 '갑자기' 유세를 시작했다. 힘 있고, 딱딱 끊어지지만, 마디마디는 반드시 길게 높여 늘리는 전형적인 운동권의 창법이었다. 저걸 외워서 말하는 건지 아니면 뭘 알고 말하는 건지, 아무튼 원고도 없이 말 참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대단해 보였다. 한 할아버지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기 전까지만.
한참을 가다, 누군가 여기서 내리라고 했다. 모든 학생이 내렸다. 5월의 햇살에 하늘은 파랗고 도시는 밝았다. '날씨 참 좋다'라고 생각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 순간 갑자기 전경이 몰아쳤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정보가 샌 것이 분명했다. 프락치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난 하얗게 질려서 엄청난 속도로 도망쳤다. 사수대는 뒷걸음질을 치며 헝겊을 쇠파이프에서 벗겨냈다. 그들의 역할은 전경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이고, 나의 역할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전경들이 바로 뒤에서 바짝 좇아왔다. 거리는 이내 곧 아수라장이 됐다. 어떤 학생들은 주택 담장 뒤에 숨고 또 어떤 학생은 가게로 숨어들었다. 나는 앞만 보고 골목으로 내달렸다. 바로 뒤에서 “튀어, 튀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겁이 났고 다급했다.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안보였다.
앞에 두 명의 여학생이 손을 잡고 뛰어갔다. 체구가 작고 연약해 보였다. 골목은 좁았다. 나는 도망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그녀들을 제치고 도망쳤다. 제치고 나가는 과정에서 약간 미끄러지면서 그녀들을 밀쳤다. 그녀들은 휘청했고, 난 그대로 내달렸다.
어느 정도 달리자 전경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사수대에서 물량을 들 남자 둘을 찾았다. '안경' 선배가 나서서 우리가 들겠다고 했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나를 포함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물량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물량은 화염병이었다. 한마디로 소주 20병이 든 박스였다. 선배와 나는 사수대에 껴서 물량을 한쪽씩 들고뛰었다. 물량은 너무 무거웠다. 5분도 안돼서 팔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팔을 바꾸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못 했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물량을 놓칠 것 같았지만 정말이지 정신력으로 버텼다.
한참을 뛰다 보니 어느새 수십 명의 학생들과 함께 산 중턱에 올라와 있었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떠다녔다. 우리는 헬리콥터가 오면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몸을 낮췄다. 리더로 보이는 한 학생이 전경들은 산 위로는 절대 오지 않으니 걱정 말란다. 아마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일 것이다. 우리는 동태를 살피며 대오를 맞춰 숲에 앉아 쉬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안경 선배를 제외하면 함께 왔던 선배와 동기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고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곧 수치심이 몰려왔다. 도망칠 때 다급한 나머지 내가 밀치고 간 두 여학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어떻게 됐을까? 부끄러웠다. 왜 그때 난 그녀들의 손을 잡아 주지 못했단 말인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겁에 질려 여자 둘을 밀치고 도망쳤다니.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랬지, 왜 그래랬지.’ 머리를 쥐어뜯었다.
“파이 어쨌어요?”
그때 옆에 있던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친 한 학생이 내게 물었다. 그는 전형적인 사수대였다. 모자를 눌러썼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네?” 난 순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되물었다. “파이 어딨냐고요?” 그가 다시 물었다. 난 여전히 당황했다. 초코파이를 왜 묻지? 아까 낮에 먹은 초코파이가 생각났다. '학우들 미제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했던 그 사람인가? 그러나 그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아니면 이 사람 배고픈 걸까?
“초코파이요? 없는데요.”
“하아~” 그는 한숨을 쉬었다.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파이가 무얼 말하는지 알아챘다. 정황 상 파이는 '쇠파이프'였다. 사수대에게 파이는 군인에 비유하자면 총과 같은 것이었다. 잃어버려서도, 버려서도, 뺏겨서도 안 되는 것이며 목숨보다 더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는 내가 머리를 쥐어뜯는 걸 보고 파이를 잃어버린 걸로 착각한 모양이다. 만약 파이를 잃어버린 거였다면 나를 질타하려 했던 것 같다. 사수대 대오에 끼어 있으니 당연히 파이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초코파이요?’ 하는 황당무계한 대답을 듣고 너무나 어이가 없어 나를 무시하고 외면해 버린 것이다. 난 팔이 떨어져 나가도 팔을 바꿀 수 없는 정말 힘든 물량 조인데. 그걸 말하기엔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난 그냥 멍청하게 데모에 낀 골 빈 학생이 되어버렸다.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흘러 전경이 흩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는 안전하게 뒷구멍으로 서울대에 입성했다. 서울대에서 일행을 만났다. 모두 무사했다. 다행이었다. 도망칠 때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모두 신났다. 모두 웃고 떠드는데 나는 동참할 수가 없었다. 두 여학생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괴로웠다.
며칠 후 프락치로 추정되는 L 씨가 학생들의 구타에 의해 죽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출범식은 일주일 만에 실패로 마감했다. 선배들은 사고 경위에 대해 갑론을박을 했다. 프락치를 만든 정권이 나쁘다, 그래도 폭력을 행사한 학생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둥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이 집회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대통령도, 전경도, 프락치도, 구타한 학생들도, 미국도, 콜라를 버리게 한 그 학생도, '파이'를 모른다고 무시했던 사수대도, 버스에서 화를 냈던 할아버지도 모두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연약한 여학생 둘을 밀치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바로 나였다. 나야말로 비겁자요, 겁쟁이요, 말미잘, 호모, 쓰레기였다. 차라리 따귀 한 대 맞았으면 했다. 아니 10대, 아니 100대라도, 후련해질 때까지.
나 살겠다고 연약한 여학생을 밀친 놈이 무슨 놈에 세상을 바꾼다고 구호를 외친다는 말인가. 이건 완벽한 모순이오, 자기기만이었다. 난 자격이 없었다. 세상이 잘못됐다고 외치기 전에, 나부터 타도해야 했다. 이건 뭔가 뉴스에 나왔던 무너진 삼풍백화점 같은 것이었다. 다시 세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