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죽었다. 한강에 빠져 죽었다. 자살은 아니었다. 살인도 아니었다. 사고였다. 선배는 실수로 한강에 빠져 죽었다. 친구들과 한강변에서 술을 마시고 놀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배의 친구들은 장난인 줄로만 알고 저들끼리 깔깔대고 웃었다고 한다. 선배는 허우적 댔고 친구들은 웃었다. 선배는 그렇게 죽었다.
나는 수민에게 전화를 했다. 수민은 선배의 애인이다. 내 친구이기도 하다.
"여보세요?" 그녀가 받았다.
"나야."
"네가 웬일이냐, 전화를 다하고?"
"저..." 지구에 그녀와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뭔데? 왜 이렇게 뜸 들여?"
나는 우주를 헤맸다. 적당한 말을 찾아야만 했다.
"선배가..."
"오빠가, 왜?"
"..." 그 순간 우주에 떠있는 고양이가 생각났다. 왜 고양이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고양이는 천천히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한가로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입을 벌였다.
"죽었대." 나는 도망치듯 내뱉었다. 고양이는 우주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전화기 넘어 무언가 울렁거렸다. 세상이 휘청거렸다. 분명 세계가 바뀌었다. 나는 왠지 살인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물 간 락스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마약에 쩌든 배우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당시 난 어떤 경계선 상에 있었다. 그곳은 매우 저열하고 위험한 곳이었다.
나는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아주 웃긴 농담을 했다. 동료들은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아마도 웃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난 21살이었고 여름날 밤이었다.
장례식장은 용산역 앞 중대병원이었다. 우리는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장례식장을 지켰다. 난 소주를 마시다 장례식장 뒷골목에 나와 담배를 피웠다. 골목은 좁고 어두웠다. 가로등이 하나 켜져 있었고, 전봇대 위에 전선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바닥에는 담배꽁초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가끔 도둑고양이들이 어슬렁거렸다.
그때 한 여자가 다가왔다. "민수 친구 맞죠?" 그녀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옷가지도 헝클어져 있었다. 체구는 작고 얼굴은 예뻤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가 선배의 친구라는 걸 직감했는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선배가 죽던 날 한강에 함께 있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민수 나 때문에 죽은 거 아니에요. 알아요? 그쪽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정말 사고였어요. 난 민수를 죽이지 않았어. 죽이지 않았다고.” 정확히 기억은 안니지만, 대충 이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그건 참회 같기도 하고 고해 같기도 하고 변명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당당함을 넘어 고압적이었다. 눈은 나를, 아니 세상을 잡아먹으려는 것 같았다. 동시에 두렵고 슬퍼 보였다. 그녀 내부에서는 그때의 그것들이 폭발하고 있었다. 거대한 감정의 파편들이 그녀의 작은 입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분노도, 슬픔도, 고통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냥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존재하고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담배 연기가 흐르지 않았다면 시간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이제 그만하고 가자." 옆에 일행인 남자가 그녀를 말렸다. 여드름 투성이에 키가 큰 사내였다.
"놔, 나 아직 안 끝났어."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쏟아냈다.
그녀의 말들은 살아 있는 벌레떼 같았다. 그녀가 쏟아내는 벌레들은 그날의 공허와 허무와 분노 같은 감정들에 짓눌렸고 벌레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비명을 질러댔다. 죽지 않으려는 벌레들의 끈질긴 욕망이 역겹게 느껴졌다. 벌레들은 나의 눈과 귀와 입과 영혼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어지러웠다. 취한 것 같기도 했다. 순간 그녀의 뒤로 골목 저 멀리 아주 커다란 고양이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이쪽을 쳐다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입을 벌렸다. 분명 그랬다. 난 모든 게 갑자기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고양이로부터 시선을 떼 고개를 들었다. 가로등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따귀를 때렸다.
그날 새벽 난 꿈을 꾸었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 같은 곳에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소녀는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문제집 같은 걸 풀고 있었다. 나는 소녀와 대화를 하고 싶어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소녀는 한숨을 쉬었다. 한심한 듯 껌을 ‘퉤’ 뱉더니 나를 쳐다봤다. 선배였다. 어느새 다시 고양이로 변했다. 고양이는 펄쩍 뛰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의기소침해져서 그녀가, 아니 선배가, 아니 고양이가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의자에 껌이 붙어 있었다. 난 껌이 붙은 채로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춤이라기보다 발버둥에 가까웠다. 춤을 추는 동안 껌은 길게 늘어져 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다시 껌 묻은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선배가 죽기 딱 일주일 전 내게 전화를 했다. 난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쁘다고 했고, 안된다고 했다. 간극은 드넓은 바다처럼 넓어져 있었다. 아득하고 머나먼 광야 같았다. 이젠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에 그때의 그때가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너무나 깊은 우물 같았다. 우물을 쳐다보고 있으면 우물에 빠져 영원히 침전할 것만 같았다.
몇 개월이 지나 수민과 술을 마셨다. 선배가 살아 있을 때 셋이 종종 어울렸다. 우리는 선배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배의 버릇과 습관, 그리고 우스꽝스러움에 대해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이면에는 그리움과 슬픔이 흐르고 있었다.
선배는 좋은 사람이었다. 정의롭고, 똑똑하고, 세상을 해석하는 지혜가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선배는 나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정신적 지주 같은 사람이었다.
술에 취한 수민은 내 어깨에 기댔다. 나는 수민에게 키스를 했고 그날 우리는 잠을 잤다. 헤어진 연인이 오랜만에 만나 잠을 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익숙하고 슬펐고 아련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수민은 없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수민을 볼 수 없었다. 서로 상처를 안고 있었고, 더 깊은 죄의식 같은 세계에 빠져들어 갔다.
그리고 몇 년 후 딱 한 번 우연히 신도림역에서 수민과 조우했다. 수민은 취직을 했는지 정장을 말끔히 입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아주 어색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다. 그게 다였다.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문득 장례식장 가로등 밑에서 만났던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맞고 싶었다. 정말이지 맞고 싶었다. 따귀든, 주먹이든, 발길질이든, 그냥 죽도록 맞고 싶었다.
난 수민을 좋아했다. 그걸 수민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슬펐다. 창 밖을 봤다. 한 남자가 병신처럼 흔들리며 웃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난 그게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