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쿡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미국의 최남단이라는 사우스 포인트(south point)까지 달리기로 한다.
간밤에 비가 더 왔는지 아침에도 땅이 촉촉하게 젖어있고 어제 빨아놓은 옷들도 덜 말라있다.
조금 일찍 출발하니 주인집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나간다.
캡틴 쿡 마을 중심부에 있던 식당들이 오늘따라 늦게 연 덕분에 캡틴 쿡을 벗어나서 조금 가다가 더 커피 쉑(The Coffee Shack)에서 아침을 먹는다.
아직 조금 흐리긴 하지만 멋진 하와이 해변을 보면서 아침을 먹을 수 있다.
Shack(판자집)이라 붙은 가게치곤 음식값은 매우... 아니 많이 비싸다. 일단 이 동네가 코나 커피의 원산지니 커피를 잘 안 마시는 나도 코나 커피를 주문한다.
나는 아침으로 로코모코를 먹고 지니님은 오믈렛을 먹는다.오믈렛에 같이 나온 과일이 먹을만한데 그 외에는 평범하다. 우리나라 인터넷 하와이 정보에 나오는 유명한 집이라는데 하와이의 흔한 해변을 보는 풍경 값을 감안해도 음식의 질에 비해 비싼 곳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었으니 다시 달린다. 거의 대부분이 왕복 2차선인 마마라호아 하이웨이(Hi-11)를 달려간다.
카우 지역이라는 표지가 있다. 이 근처는 화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다.
약한 언덕을 계속 올라가서 오션뷰에 도착한다.
빅아일랜드의 동네들은 이름이 좀 특이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은 시뷰, 오션뷰라는 이름인 곳이 있고 산이 잘 보이는 곳은 마운틴뷰라는 곳도 있다. 오션뷰를 벗어나면 50km 구간 동안 식당이나 가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전거로 이동해야 하는 우리들은 오션뷰에서 점심을 꼭 먹어야 한다. 마침 L&L 드라이브인이 보이길래 들어간다.
L&L은 하와이의 김밥천국 같은 곳이다. 오랜만의L&L에서 하와이안 바베큐 믹스를 먹는다.
고기보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지니님은 생선 믹스를 주문했다. 생선과 조갯살, 그리고 바짝 튀긴 새우가 나온다.
오션뷰를 벗어나면 사우스 포인트까지 내리막길이다.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길을 따라서 쭉 내려간다.
슬슬 사우스 포인트가 보인다. 날이 좀 흐렸는데 사우스 포인트만 밝은 햇살이 내리쬔다.
길 옆으로 용암이 굳은 흔적이 계속 나타난다. 이 근처는 1868년에 분출한 용암들이라고 한다. 길 옆의 굳고 갈라진 용암들은 화산 활동이 활발한 빅아일랜드에선 흔한 풍경이다.
초지로 된 농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사우스 포인트 로드를 통해서 사우스 포인트에 갈 수 있다. 캡틴 쿡에서 날후(Na'alehu)까지 바로 가면 70km인데 사우스 포인트를 들러야 해서 40km가 더 늘어나지만 꼭 들를만한 곳이다.
사우스 포인트로 가는 길 양쪽으로 목장의 초지가 펼쳐진다. 이 넓은 초지에 정작 소나 말은 몇 마리 없다.
멀리 해발 4169m의 마우나로아산이 보이고 사우스 포인트의 풍력발전기들도 보인다.
20km의 내리막을 내달려서 사우스 포인트에 도착한다. 다시 돌아가려면 20km의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 것을 알기에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지니님은 마음이 불편하다.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들이 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만나서 아름다우면서 독특한 경치를 만든다.
높이 6미터의 절벽 아래로 푸르디푸른 태평양의 바다가 보인다.
이 평평한 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군의 임시 비행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절벽을 배경으로 지니님의 인증샷을 찍어준다. 발판 위에 올라가 보라니 절대 싫다고 한다.
미국 최남단에 온 것을 기념해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다들 높이에 겁먹고 못 뛰어내린다. 올라가보면 아찔해서 나도 못 하겠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Ka Lae라고 쓰인 석조물들이 있다. 사우스 포인트는 Ka Lae라고도 하며 그 뜻은 하와이 말로 'the point'라고 한다. 이곳은 폴리네시아 인들이 작은 배를 타고 먼 항해를 해서 처음으로 하와이에 정착해서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좀 더 밑으로 가면 등대터가 있다.
미국 해안 경비대가 세웠던 등대는 터만 남아있고 지금은 자동화된 등대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가 사우스 포인트에서도 남쪽 끝이다. 여기서 정남 쪽으로는 남반구의 몇몇 작은 섬들 외에는 남극 대륙 밖에 없는 정말 끝없는 태평양 바다다.
다시 점프대 쪽으로 돌아오니 용기 있는 서양 아저씨들이 점프를 하고 있다. 백인들은 정말 물에 뛰어드는 걸 좋아하는지 어디서든 물만 보이면 뛰어든다. 이 곳은 물살이 세기 때문에 함부로 뛰어들면 안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멋지게 뛰어내린다.
한참 햇볕을 쬐면서 둘러보니 목이 마른데 마침 빙수 트럭이 있어서 시원한 코코넛 워터를 하나 사서 먹고 다시 20km의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간다. 멀리 풍력발전기들이 보인다. 사우스 포인트는 바람이 강한 곳이라 예전에는 언덕 위에 37개나 되는 풍력발전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14기의 신형 풍력 발전기가 예전보다 훨씬 많은 전기를 주변에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시끄러운지 목장의 소들이 우리만 쳐다본다.
오전 내내 흐리더니 사우스 포인트부터는 그늘도 없이 햇볕이 강하고 무척 덥다. 중간에 그늘이 보여 잠시 멈춰 쉬어간다.
숙소를 예약해놓은 날후(Na'alehu)까지 가는 지름길인 카마오아 로드(Kama oa Rd)로 우회전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길은 시골길이라 날후 입구까지 식당이나 카페는커녕 조그만 가게 하나 없다. 가져간 물은 다 마셔버리고 목은 바짝바짝 마른다.
날후 입구의 작은 슈퍼마켓에 도착한다. 물과 사이다를 사서 허겁지겁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온다. 미국은 이런 시골이라도 화장실이 나름 깨끗하다.
이제 날후의 숙소만 찾으면 되는데... 또, 집주인이 설명을 이상하게 해놓아서 찾아헤메다가 손바닥만한 동네를 벗어났다 되돌아왔다 한다. 찾아보니 시내의 주유소 옆 작은 여관에서 여관방 외의 생활 구역을 B&B로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숙소는 깨끗하고 아늑하다. 좀 멀리 떨어져 있긴 해도 세탁기와 건조기도 쓸 수 있으니 좋았다.
방이 큰 덕분에 자전거들도 방에 들여놓는다.
씻고 조금 쉬었으니 이제 저녁을 먹어야겠다. 식당 이래 봐야 동네가 작아서 몇 개 없긴 하다. 이 날후라는 동네는 미국 최남단의 동네라고 해서 무엇이든 미국 최남단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미국 최남단 빵집, 미국 남단 바, 미국 최남단 식당 등등, 집주인이자 여관의 주인아저씨가 추천해준 미국 최남단의 바인 Shaka restorant으로 간다.
미국의 시골스러운 바다.
자전거 타기가 끝났으니 코나 생맥주부터 한 잔 해야겠다.
지니님은 참치(Ahi)를 주문한다.
나는 간단하게 햄버거로 저녁을 먹는다.
양이 부족했는지 집에 와서 컵라면도 먹는다. 이때 먹은 컵라면은 내일 크나큰 힘이 될 것이라곤 아직 몰랐다.
66.8 마일... 해발 640미터의 오션뷰까지 올라간 후 해수면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해발 400미터까지 올라가는 만만치 않은 길을 약 110km 정도를 달렸다. 사우스 포인트에 들르지 않았다면 거리도 확 줄고 오르막길을 오를 수고도 줄어들었겠지만 사우스 포인트는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생각보다 오르막 내리막이 많지만 아직 오르막은 시작도 안 했다고 봐도 된다. 내일은 해발 1200m의 화산 국립공원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자전거로 올라가게 되는 가장 높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