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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Nov 08. 2016

지니의 까미노 은의길 자전거 여행 1

지니의 Via de la Plata (까미노 은의길) 자전거 여행 - 1일차


일정 : '16.09.05(월)

구간 : Astroga ~ Barcial del Barco

거리 : 75km / 75km



12시간을 달려 아침 동이 틀 때쯤 버스는 목적지인 Astorga에 도착했다.짐칸에 고이 모셔진 내 흰둥이를 꺼낸다. 스페인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실으려면 10유로의 추가차지를 내야한다. 앞바퀴를 빼면 직원이 야무지게 실어준다.


흰둥이와 나를 남겨두고 다음 도시로 떠나버리는 ALSA 버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옆자리 뚱땡이도 여기서 내렸다. 젠장, 더 일찍 내렸으면 좋으련만..


그리하여 드디어 Astorga에 도착!

흰둥이 옆 비닐봉지는 어제부터 들고 다니던 손잡이 없는 나의 생계형 봉다리인데, 가방이 없어서 아직 못버렸다..ㅋ

산티아고 프랑스길 여행할 때 Astorga에서 하루 쉬어간 기억이 있어서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그때는 외곽에서 진입했고, 이번에는 마을 중간의 버스터미널에 떨궈준 것이 다르긴 해도 조금 돌아다녀보니 예전에 저녁먹으려고 돌아다녔던 생각이 났다.


바르샤에서 미리 검색해놨던 Astorga 일의 자전거 가게를 찾아왔다. 터미널에서 멀지 않아 5-10분 걸었더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자전거 가게는 10시에 연다. 지금은 7시반이 약간 넘은 시각.. 간단히 아침을 먹으려고 근처 바에 갔는데, 준비된 것도 없고 너무 퀘퀘한 곳이라 코르타도 한 잔만 하고 나왔다. 커피잔 역시 제대로 닦이지 않아 누적된 커피가 꼬질꼬질하게 묻어있었다.


커피를 대충 마시고 나왔더니 아직 오전 8시 밖에 안됐다. 입맛이 없어서 아침은 스킵하기로 하고 자전거 가게 앞 계단에 앉아서 문 여는 10시까지 2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바르샤에 비해 고지대라 그런가 그늘에만 있어도 아침에는 확실히 쌀쌀하다. 제 시간에 열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10시15분에 거의 바로 문이 열려서 좀 놀라웠다.ㅎㅎ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자전거와 클릿신발, 공구통, 예비튜브 하나.. 구하기 어려운것은 그나마 건진 상태.

추가로 꼭 필요한 헬멧, 가방, 펌프, 장갑을 모두 여기서 구입했다. 후미등과 전조등을 사고 싶었는데 저렴한 것은 크기만 크고 성능이 별로라 사지 않았다. 어차피 해가 떠있을 때만 달릴테니 말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11시 반부터 N-6국도를 따라 남동쪽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새로운 장비가 어색하긴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 순례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은의길임을 알리는 오래된 간판이 은의길의 시작을 알려주는 듯 하다. 자, 이제 고고씽~


도로 양 옆에는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다. 길은 별로여도 차가 없어서 초반에 긴장을 풀며 속도를 올리기에 괜찮았다.

가방은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서 짐받이는 버리지 않고 그냥 달아두었다.


날씨가 끝내주게 좋으니 옥수수밭이 더 파르라니 진해보인다. 어제와는 완전히 180도 달라진 기분!


Seville로 가기 위해서는 N-4국도에서 N-630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두 개의 국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마을로 돌아가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했다. 다리 근처까지 갔는데, 다리를 허물고 새로 놓는 대공사중이라 지나갈 수 없다고 했다. 이 길이 아니면 도저히 돌아갈 곳이 마땅찮아서 사정사정했더니  저기 위 고속도로로 가란다. 저기는 Autovia라서 나는 갈 수 없다고 막 영어로 말했더니 스페인어로 까미노 어쩌구~ 계속 똑같은 대답 만이 돌아오길래 뒤늦게야 눈치채고 그곳으로 향했다.


고속도로 사이드에 분리막을 세워 사람이나 자전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스페인어에 미숙해서 한번에 못알아들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명해준 아저씨가 고마웠다.


드디어 N-630 국도에 진입했다. 이 국도만 따라가도 Seville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이제 길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에서는 약간 벗어났다.


이 국도는 정남향으로 뻗어 있는데, 해를 거의 마주 보는데다가 남쪽으로 점점 내려가고 있으니 갈수록 계속해서 더워졌다.


저기 보이는 황소는 오스본 황소라는 브랜디 회사의 마스코트로 도로 옆 대형 간판이 금지된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입간판이다. 지금은 스페인 도로의 상징이 되어 '부엘타 아 에스파냐'라는 스페인의 국제 자전거 대회에서도  자주 보인다.


70km쯤 갔을까.. 모든게 안정된 지금에서야 배가 고파져서 작은 바에 멈추고는 또르띠야와 음료수를 먹었다.


wifi 비번을 알려달러고 했더니 알베르게 이름이 비번이라며 명함을 주길래 여기가 알베르게도 같이 하는 곳인줄 알게됐다.

원래는 20~30km 더 가서 자려고 했는데, 50km 떨어진 Zamora 입구는 가야 숙소가 있는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결국 이곳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 어제 야간버스를 타서 피곤한데, 가는 길에 숙소가 나오지 않으면 너무 지쳐버릴 것 같아서였다. 이미 오후 5시가 되어가기도 했고..


2층 침대가 그득 있었는데, 방과 침대가 깨끗했다. 침낭라이너도 이미 잃어버린 상태였는데, 새로 빨아놓은 침대시트와 베개, 덮는 이불까지 있었다.

자전거는 현관문 안쪽 싱크대 근처에 걸리적거리지 않게 세워놨다.


화장실도 넓고 청소가 매우 잘 된 상태였는데, 샴푸와 바디클렌저까지 있어서 나의 세면도구 여유분을  쓰지 않아도 됐다.ㅎㅎ

나에게는 그 흔한 수건도 없다. 물론 갈아입을 옷도 없다.샤워를 하면서 입었던 옷을 같이 손빨래하고, 그 옷을 짜서 몸의 물기를 닦고, 그 옷을 다시 짜서 젖은채로 입고 나온다.;;


밖은 아직 쨍하니까 그대로 나와서 1시간 쯤 동네구경하며 돌아다니면 옷이 다 마른다. 그러면 그대로 입고 자면 된다..

저렴한 호텔이나 펜션의 싱글룸에서는 옷을 말려놓고 그냥 자면 되는데, 알베르게나 도미토리에서는 불편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한벌의 옷이 더 생길때까지는..

(하지만 여행 끝나는 그날까지 3주간 결국 저 한벌로 버텼다. 귀차니즘의 승리여라..ㅋㅋ)


마을에 하나쯤 있는 성당 근처를 둘러보았지만 아까 음료를 마신 바 이외에 또 다른 가게는 없었다.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아서 곧 다시 돌아왔고, 저녁도 거른채 하루의 끝을 맥주로 마무리지었다.

테라스 옆 자리에 동네 아저씨가 앉아서는 짧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말을 건다.


"순례중임? 어디까지 가시나~?"

"자전거로 순례중인데, Seville까지 일단 갔다가 동쪽 해안타고 바르샤로 갈꺼야."

"오, 대박~ 내일은 Zamora까지 가겠네?"

"아니, 내일은 Salamanca까지 갈꺼야!"

"웃기시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ㅋㅋ"


Zamora까지 50km, Salamanca까지 120km 정도 남은 지점이었다.


9월이라 해가 빨리 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해가 길어서 8시는 넘어야 노을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Zamora까지 갔어야 했나.. 싶었지만 일단 Vigo가 아닌 Astorga를 시작점으로 바꾸면서 루트가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에 하루가 늦어졌더라도 마음만은 여유롭게 달리기로 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다. 다른 순례자들이 올 줄 알았는데.. 여긴 거리상 쉬어가는 포인트가 아니기도 한 것 같고, 은의길을 정방향으로 오려면 남쪽에서 한여름에 시작해야 하니 아직 시즌이 된 것 같지도 않았다.

덕분에 싱글룸에 있는 것 마냥 옷을 다 벗어서 말려놓고 편하게 잘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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