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충주까지 150 km
2017년 6월 3일
드디어 망가졌던 자전거의 수리가 끝났다. 내 소중한 자전거를 박살낸 중국동방항공은 두고두고 잊지 않을거다. 이제 자전거도 고쳤으니 좀 길게 달리고 싶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꾸준히 길게 달릴 수 있는 가장 편한 길은 누가 뭐래도 남한강 자전거길일 것이다.
예전부터 종종 다녀왔던 남한강 자전거길을 오랜만에 다시 달려본다. 잠실 근처의 집에서 출발해서 충주까지 150 km이지만 로드바이크로는 그리 힘든 거리는 아니다.
집 근처의 석촌나들목에서 출발해서 충주까지 달리고 충주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기로 한다. 여러 번 다녀온 익숙한 길이니 150km 거리라도 부담은 없다.
서울을 벗어나는 관문인 암사고개를 넘어간다. 별거 아닌 언덕이지만 은근히 힘들다. 옆의 차도는 주말을 맞아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서있다.
미사리 조정 경기장 근처에서 자전거길이 위와 아래로 나눠져 일방통행이다. 지니님은 이 구간이 너무 지겹다고 한다.
이제 팔당대교를 건너가야 한다. 팔당대교에 진입하는 좁은 급경사 커브길은 많은 자전거가 오가는 길이니 조심해야 한다.
팔당대교를 건너 조금만 가면 팔당댐이다.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산책객들이 없다.
팔당댐 위의 두물머리는 서울 근처에서는 손꼽을만한 풍경이다. 조금만 늦게 오면 산책객들로 붐비는 구간이기도 하다.
자전거길로 바뀐 철교는 항상 혼잡하다. 자전거를 멈추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듯하다.
남한강 자전거길 두물머리에서 양평 사이의 특징은 터널이라 할 수 있다. 옛 철길을 고친 자전거길이다보니 기차가 다니던 터널이 고스란히 자전거길이 되었다. 날 더울 때는 정말 시원하지만 터널 안이 어두우니 전조등과 후미등을 켜는 것이 좋다.
남한강 자전거길이라고 해도 중간에 길이 안좋은 구간은 있다. 신원역 앞에서 도보길과 겹치는 구간은 좁고 불편하다.
옥천면 입구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한 식당에 들르기로 한다. 자전거길에서 식당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놨는데 경사가 급하니 살살 끌고 내려가야 한다.
사골만두국을 잘 하는 집인데 육개장을 먹었다. 시설도 음식도 깔끔한 집이라 지니님이 좋아하는 식당이다.
고깃국물이 들어가서 배가 부르니 힘이 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양평 미술관을 지나간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 이런저런 코스를 다니러 양평에 들르는 일이 많기 때문에 양평이란 동네는 익숙하다.
자전거길로 가면 꽤 큰 동네인 양평 읍내도 거의 못보고 순식간에 지나치게 된다.
봄에 오면 나름 분위기 있는 벚나무길을 지나면 곧 후미개 고개가 나타난다. 암사고개보다 조금 더 긴 정도이다.
후미개 고개를 내려가면 이포보가 보이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사대강 사업의 보인 만큼 홍보 효과를 위해서인지 과하게 꾸며놨다.
이포보에는 특이하면서 쓸모없는 원형 수영장 시설이 있다. 이포보 자체가 세금 낭비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포보 근처의 양촌리에는 홍수에 강물이 범람하면 강물을 분산하여 가두는 저류지가 있다. 그 저류지에 물이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간다.
이포보를 지나서 한참 달리면 여주보가 나온다. 자전거길은 여주보를 건너 강 반대편으로 이어진다.
여주보 좌안의 여주보문화관에 편의점이 있으니 잠깐 들러 쉬기로 한다.
여주 시내 자전거길은 항상 노면이 안 좋았었는데 보수공사라도 했는지 조금 나아졌다. 여주대교 옆으로 올라가면 여주 시내를 동쪽 끝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여주시 외곽의 금은모래 캠핑장은 집 나와서 천막치고 자는 사람들로 주말마다 북새통이다. 그들이 가져온 전동 탈 것으로 자전거길까지 혼잡하니 항상 조심해서 지나가야 한다. 이번에도 전동 킥보드 같은 것이 중앙선을 넘어서 우리에게 돌진해왔다.
조금 더 달리면 여주의 마지막 보인 강천보가 나타난다.
강천보를 건너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극도로 적어진다. 강천보를 넘어가면 교통편이나 식당이 적어지니 정말 자전거를 타고 멀리 가는 사람만 다니는 길이 된다. 사람 많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여주역에서 출발해서 충주 방향으로 달리면 사람 많은 구간을 거의 피할 수 있다.
강천보 끝에는 급경사길의 안전사고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게 해놓은 시설이 있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조심조심 끌고 내려간다.
이제부터 뻥 뚫린 길에서 편하게 달린다.
자리 깔고 쉬기 좋은 강천섬에서 쉬지 않고 지나간다. 강천섬도 천막족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취사 금지 구역이지만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밥하고 고기 굽느라 바쁘다.
강천 마을에서 애매한 경사의 오르막인 창남이 고개를 넘어가면 이제 여주를 벗어나게 된다.
한강의 큰 지류 중에 하나인 섬강을 섬강교로 건넌다. 여기서부터 횡성까지 이어지는 섬강 자전거길도 안 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섬강교를 건너 내려가면 자전거길이 쭉 이어진다.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이다. 물놀이하러 온 사람들이 있는데 저 차는 자전거길을 주행해서 차량 출입이 통제한 자전거길 시설을 다 망가트리고 들어간 차이다.
도로 양 옆에 노란 꽃길이 펼쳐지니 원래 좀 지루했던 자전거길 구간이 화사하게 바뀌었다.
여기서부터 충주까지는 사실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는 제대로 된 식당이나 휴게소도 없다.
그래서 생긴 것이 동네 사람들이 만든 비내쉼터와 비내섬 인증센터인데 변변한 음식을 파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간식거리와 음료수나 파는 곳인데 너무 비싸다.
안 와본 사이에 자전거길 일부를 새로 포장해놨다. 노면이 좋은 길이 쭉쭉 뻗어있으니 좋다.
충주댐의 보조댐인 조정지댐이 나타났다. 남한강 자전거 도로는 원래 조정지댐을 건너서 목행교까지 시 외곽을 빙 둘러간다. 충주댐까지 가볼 생각이라면 원래 길대로 목행교로 가면 되지만 우린 시내로 바로 가야 하니 조정지댐을 건너지 않는다.
조정지댐 입구에서 바로 자잘한 진동으로 그리 좋지 않은 데크길을 빠져나가면 자전거길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이지만 아까 전에 우리를 추월해갔던 사람들이 길을 헤매다가 우릴 보고 따라오기도 한다.
충주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탄금대교 옆의 탄금교로 건너가면 곧 충주 시내다.
아침겸 점심을 먹은지 꽤 되었으니 이제 저녁 먹으러 가야 한다. 충주에는 먹을만한 식당이 거의 없다. 지니님이 좋아하는 매운 짬뽕집은 내가 매운 것을 잘못 먹어서 자주 안 가고 충주댐 가는 길의 송어회집도 지금 다녀오기엔 은근히 멀다. 충주 시내의 불고기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충주역에서 길을 건너 동네로 들어가면 동네 골목에 불고기집이 있다.
동네에선 나름 유명한 집이라는데 충주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먹고 가기 좋다.
한우 불고기라 그런지 가격이 좀 비싸긴 한데 맛은 괜찮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충주 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우리 외에는 자전거객들이 없어서 화물칸에 편하게 자전거를 실었다.
자전거로 달릴 때 단거리와 장거리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150 km의 코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장거리일 것이다. 존과 지니의 자전거 여행에서는 상당히 길게 달린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큰 오르막길이 없으면서 길이 쉽기 때문에 로드바이크로 달리기에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다. 이렇게 100여 km를 몇 번 달려놓으면 비슷한 거리를 달릴 때 육체적, 정신적으로 훨씬 부담이 덜해지기 때문에 훈련 삼아서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