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직전, 비나스코
2017년 10월 5일
이동 경로 및 거리 : 알레산드리아(Alessandria) - 비나스코(Binasco) 78 km
총 누적 이동 거리 : 1155 km
오늘 아침도 호텔 조식으로 시작한다. 유럽식 호텔 조식을 연달아 먹다보니 따듯한 국물 음식이 먹고싶어진다. 예전에는 그저 서양식 식사가 잘 맞았는데 입맛이 변했나보다.
호텔의 좁은 엘리베이터에 여러 나라 말로 경고문이 붙어있다. 이탈리아어를 그대로 번역기 돌렸는지 마지막에 쓰인 한국어만 이상한 듯하다.
뒷골목스러운 호텔 입구에서 출발 준비를 한다.
알레산드리아의 서쪽을 흐르는 타나로 강(Fiume Tanaro)을 건너서 북쪽의 큰 강인 포 강(Fiume Po)도 건너야 한다. 넓은 들판이라 도로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데 강을 건너는 다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루트도 제한적이다.
강을 건너서 도시를 벗어나니 넓은 벌판이 펼쳐진다.
발렌쟈(Valenza)라는 마을을 우회해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잘못 들어가서 괜히 한 바퀴 돌아나왔다. SP494번 도로로 빠져나와서 북쪽으로 달리니 포강이 나타난다.
철교와 차도가 함께 있는 다리로 포 강을 넘어간다. 꽤 넓고 물이 많은 강이다.
이제 밀라노까지는 온통 들판이다. 추수를 끝낸 평원이 펼쳐진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더 멋진 황금 들판을 볼 수 있었을 듯하다.
한참 허허벌판이니 매점도 식당도 거의 안 보인다. 로멜로(Lomello)라는 마을을 지나면서 보니 마을 안의 카페나 식당은 모두 동네 노인들이 차지해서 시끄럽다. 수십 년 동안 같은 동네 살면서 매일 만난 사람들끼리 할 말이 아직도 많은 게 신기하다. 로멜로를 벗어나는 곳에 조금 조용해보이는 카페가 있어 잠시 쉬기로 한다.
점심으로 간단히 먹을 샌드위치를 주문하려 했더니 마침 빵이 다 떨어졌다고 한다. 얇은 밀가루 전병으로 빵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해서 랩같이 생긴 빵을 받아서 먹는데 오히려 샌드위치보다 낫다.
커피도 한 잔씩 주문해서 마신다. 가을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곤충들이 한 군데 모이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노린재들이 잔뜩 모여드는 곳이다. 시골 구석에서 젊은 여성들이 하는 카페라 그런지 우리 외의 대부분의 손님이 젊은 남자들이다.
생각보다 배부르게 잘 먹었으니 다시 출발이다.
티치노 강(Ticino)을 건너려면 가르라스코(Garlasco)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가야 한다.
티치노 강에 도착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데... 특이하다.
여러 척의 배들이 줄지어 강 위에 떠서 교각 대신 다리 상판을 받치고 있다. 꽤 견고하게 고정되어서 흔들림도 거의 없는데도 1지니님이 불안하다고 내려서 걸어간다.
언덕이 많지 않은 평원을 달리는 것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지만 나름대로의 멋지고 독특한 풍경들을 볼 수 있어 즐겁다.
트로보(Trobo)라는 마을 근처부터 이제 샛길을 이리저리 타고 비나스코까지 달린다.
폭도 좁고 노면도 거친 길이지만 이정표는 나름대로 잘 되어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노면이 거칠다고 해도 프랑스의 일반 도로들과 비슷한 정도다.
비나스코의 입구에서 아직 한창 추수를 하고 있는 황금벌판이 보인다. 리조또도 많이 먹는 나라라 그런지 생각보다 논이 많다.
드디어 비나스코 도착이다. 아주 작은 동네면서 관광객이 많지 않을 듯한 곳인데 두오모 광장에 사람들이 활기차다. 이런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사는 느낌이 나는 마을이 좋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기로 한다. 근처엔 사람이 많은데 정작 두오모 앞은 조용하다.
두오모 옆에 비스콘테오 성이 있다. 앞에 동상은 전쟁 추모비인 듯하다. 밀라노로 통하는 관문이라 그런지 아픈 사건이 있었나보다.
오늘의 자전거 타기도 끝났으니 적당한 바에 자리잡고 맥주 한 잔 마신다. 생맥주가 마시고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바로 옆 가게가 생맥주를 팔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라 오늘 예약해둔 호텔도 바로 근처다. 자전거를 끌고 슬슬 걸어간다. 호텔이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받은 경험이 많은지 중국어로 된 안내문들이 많다.
나름 깔끔하고 편안한 숙소다.
조금 쉬었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선다. 괜찮아보이는 식당이 조금 떨어져 있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니 걸어간다.
과할 정도의 노란색 불빛으로 가득찬 식당이다.
하우스 와인을 주문했더니 여기도 자기네 상표가 붙은 와인병을 따준다. 가격대도 맛도 무난하다.
지니님은 토마토를 곁들인 생선살 스파게티, 나는 봉골레 스파게티다.
지니님이 너무 맛있는 인생 파스타를 만났다고 한다.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더 주문한다.
그리고 메인으로 나온 샐러드와 생선 요리도 참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집이라면 후식도 맛있겠지?
커피 두 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를 주문한다. 모두 맛있다. 트러플 어쩌고 하는 아이스크림인데 젤라또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중에 가장 나았다.
시칠리아 요리를 메인으로 하는 식당이라 주인 아주머니에게 시칠리아 사람이냐고 물어봤더니 바로 메시나 바다 건너인 칼라브리아 사람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칼라브리아도 가볼까 한다.
가을 벌판을 한참 달려 작지만 활기찬 마을인 비나스코에서 이번 여행 최고의 저녁 식사를 하였다. 마을의 분위기와 맛있는 저녁 식사를 즐겼으니 복잡한 도시 밀라노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멈춰 쉬기를 잘 했다. 이제 밀라노까지 25 km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