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년 트레일과 데저트뷰
2018년 10월 5일
어제 그랜드 캐년에 도착해서 사우스 림 트레일의 일부를 걸었다. 그랜드 캐년 맛뵈기는 한 셈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그랜드 캐년을 즐길 예정이다. 일단 오전에는 동쪽의 카이밥 트레일을 따라서 우아 포인트까지, 오후에는 그랜드캐년 빌리지에서 시작하는 브라이트엔젤 트레일을 갔다가 그랜드캐년 빌리지에서 하루를 묵을 예정이다.
투사얀의 롯지는 그랜드 캐년 안에 있는 롯지에 비해 그리 싸진 않지만 잠은 잘 잤다.
롯지 바로 맞은 편에 맥도널드가 있으니 여기서 아침을 해결한다.
맥모닝 세트 두 개에 샐러드를 하나 먹었는데 은근히 비싼 느낌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대부분 아침을 주는 숙소에 묵다보니 맥도널드는 들를 때마다 음료수만 마셨는데 처음으로 맥모닝을 먹는다.
그랜드 캐년에서 간단한 트레일을 다녀오려면 어디를 가는게 좋을까? 정답은 카이밥 트레일(Kaibab trail)이다. 셔틀버스를 타면 카이밥 트레일의 입구까지 갈 수 있지만 일반 차량은 중간 갈림길에 주차하고 걸어가야 한다. 그랜드 캐년을 보면서 걷는데 좀 걸어도 상관없지. 입구 근처의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데 차 한 대가 금방 빠져나가 자리가 생겼다. 운이 좋았다.
사우스 림 트레일의 동쪽 끝 지점을 걸어서 카이밥 트레일의 입구까지 간다. 걸어가는 길에도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여기가 카이밥 트레일의 입구다. 바로 앞의 절벽 위는 야키 포인트(Yaki point)인데 보는 풍경은 비슷할 것 같아서 들르지 않는다.
입구에서 내려가자마자 꼬불꼬불한 절벽길을 내려간다. 길에 줄지어 떨어져 있는 거뭇한 것들은 노새의 똥이다. 냄새가 지독해서 지니님이 코를 막고 있다.
그랜드 캐년은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그냥 그림 같이 나온다.
땅다람쥐가 나타났다. 어제 플래그스태프 관광안내소에서 인형으로 있던 바로 그 녀석이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데도 관광객들이 준 음식으로 토실토실하다.
꼬불거리는 길을 벗어나면 한동안 완만한 내리막이 계속된다. 그랜드 캐년 내부로 들어가는 길 중에 가장 쉬운 길이니 어렵지않다.
카이밥 트레일은 그랜드 캐년의 가장 밑바닥이자 그랜드 캐년의 모습을 만든 콜로라도강을 지나 그랜드 캐년의 북부 지역인 노스림까지 이어지지만 20여 km의 거리에 해발 고도차도 어마어마한 길 전부를 당일로 왕복하기는 무리다. 우리는 입구부터 2 km남짓의 거리에 고도차 200m 정도인 우아 포인트 (Ooh aah point)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우아 포인트는 말 그대로 여기 도착해서 풍경이 보이는 순간 우아~!하고 감탄이 나오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절벽으로 막힌 골짜기를 걷다가 갑자기 풍경이 확 트이는 곳이니 그럴만 하다.
카이밥 트레일은 눈 앞의 골짜기 사이로 내려가서 콜로라도 강을 지나 반대편 골짜기 사이로 올라간다. 골짜기 속으로 다니는 것인지 여기서는 사람이 다니는 모습은 안 보인다.
우와 포인트의 가장 아찔한 바위 위에서 아래를 바라본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뚱뚱한 땅다람쥐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또 과자를 주니 받아먹고 가버린다.
목표점까지 왔으니 다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길은 내려갈 때보다 두 배는 힘들다. 우아 포인트에서 더 내려가는 것도 좋지만 돌아올 때는 훨씬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잊으면 안된다.
엄청난 절벽이지만 하도 꼬불꼬불하게 길을 뚫어놔서 생각보다는 덜 힘들다. 같은 높이, 같은 거리라면 서울 근처 등산로들이 훨씬 험하고 힘든 것 같다.
카이밥 트레일 입구 근처에 마굿간이 있다. 이 녀석들이 트레일에 똥 무더기를 잔뜩 지려놓은 범인들이다. 매우 온순하고 사람에게 익숙해서 쓰다듬어 주어도 좋아한다.
우아 포인트를 다녀오면 이제 점심시간이다. 그랜드캐년 빌리지 한 가운데에 있는 제네럴 스토어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큼직한 핫도그와 샐러드로 조촐한 점심을 먹는다. 빌리지 안쪽의 식당들은 비싼데다가 특별한 것도 없다고 해서 간단히 먹으려 했는데 생각보다 맛있고 배도 부르다.
오후에는 카이밥 트레일과 함께 가장 유명한 트레일인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Bright angel trail)로 간다. 브라이트 엔젤 롯지 입구 근처에 주차장에서 조금 기다리니 자리가 생겼다.
걸어내려가는데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다. 잘 보니 산양 한 마리가 바위 위에서 쉬고 있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 야생 동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동쪽의 카이밥 트레일과 꽤 떨어져 있긴 하지만 보이는 풍경은 크게 차이나진 않는다.
등산로의 배수로를 공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계 장비 없이 사람들만의 힘으로,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열심히 공사 중이다.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의 특징은 이런 바위 구멍을 두 번 지나간다는 것이다.
브라이트엔젤 트레일은 콜로라도 강을 지나 브라이트엔젤 강에서 노스 카이밥 트레일과 만나는 10여 km의 긴 트레일 코스다. 당연히 여기도 하루에 왕복할 수 없으니 우리는 1.5마일 휴게소까지만 다녀온다.
무언가 알아보기 쉬운 안내판 같은 것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휴게소라고 나오는 푯말과 낡은 건물이 하나 나오는 것이 1.5 마일 휴게소다.
여기엔 식수도 있고...
가장 눈에 잘 띄는 건물은 화장실인데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게 생겼다.
말 그대로 입구에서 1.5 mile(2.8 km)만 가면 되는 초보자 코스지만 해발 고도차도 360미터 정도이니 오전에 다녀온 와후 포인트보다 조금 더 힘들다. 휴게소 밑의 전망 포인트에 가니 네 명의 중국인들이 있다. 네 명만 있어도 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시끄러우니 역시 중국인들이다.
다시 슬슬 올라간다. 360미터의 고도를 올라가면 어지간한 서울 근교 등산 코스만큼 올라가는 것이다. 아까 떠들던 중국인들이 먼저 올라가는데 계속 시끄럽다.
올라가는 길에도 사람들이 뭔가를 보고 있다. 잘 찾지 않으면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면 아까 바위에서 쉬던 산양이 돌아다니고 있다.
브라이트 엔젤 롯지 근처의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우리처럼 오전에는 카이밥 트레일을, 오후에는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오전에는 카이밥 트레일이 그늘이 많이 지고 오후에는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이 그늘이 많이 져서 그렇다.
어제는 투사얀에서 잤는데 오늘은 그랜드캐년 빌리지 안의 야바파이 롯지에서 잔다. 1박 요금이 저렴하지 않은데도 미리 예약해두지 않으면 그랜드 캐년 빌리지 안에 숙소를 구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고 배정받은 숙소에 가본다. 프론트 직원들이 유난히 친절해 보인다. 야바파이 롯지는 프론트와 기념품 가게, 식당이 있는 본관과 숙소가 떨어져 있는 형태다. 여기는 숙박료가 비싼데도 불구하고 본관 건물 로비에서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 관리를 잘 하는 편이라 숙소 자체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아늑하다.
저녁은 간단하게 제네럴 스토어에 가서 핫윙을 사다가 맥주와 함께 먹기로 했다. 근데 점심에 먹은 푸짐한 핫도그에 비해서 핫윙은 영 별로다. 크기만 크고 뻑뻑하고 질긴 닭고기에 소스도 뭔가 입에 안 맞는다.
먹고 나서 숙소 메인 건물의 바에서 맥주를 한 잔 더 한다. 이 바에서 파는 핫윙이 더 싸다... 그냥 여기서 먹을걸...
하루는 투사얀, 하루는 그랜드캐년 빌리지에서 자기를 잘 한 것 같다. 투사얀이 먹을 것이 별로 없다지만 그래도 그랜드캐년 빌리지보다는 저렴하고 다양한 편이다. 그랜드 캐년 빌리지에서 2박 3일의 식사를 모두 올인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2018년 10월 6일
그랜드 캐년의 마지막 아침이다. 알람을 안 맞추고 자면 보통 내가 먼저 일어난다. 심심해서 와이파이라도 하려고 본관 건물에 간다.
본관 건물 근처에 사슴들이 풀을 뜯고 있다. 사람이 근처에 가도 도망도 안 간다. 내가 사슴을 구경하는건지 사슴이 나를 구경하는건지 헷깔린다.
어제 제네럴 스토어 마트에서 아침 먹을 것들을 사놓았다. 우유, 칼로리바, 바나나, 요거트로 아침을 먹는다. 냉장고가 부실해서 안쪽에 넣어둔 요거트가 얼어서 요거트 아이스크림 같이 먹었다.
오늘은 데저트뷰 포인트에 갔다가 플래그 스태프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돌아가야 한다. 데저트뷰로 가는 길에 사슴 무리가 보인다. 뒤쪽 멀리 뿔이 어마어마하게 긴 숫사슴도 있다. 지니님은 아침에 사슴을 못 보았으니 잠깐 멈춰서 구경한다. 지나가던 다른 차들도 대부분 멈춰서 구경하느라 바쁘다.
데저트 뷰 가는 길에도 군데군데 그랜드 캐년을 구경하는 전망 포인트가 있다. 하나하나 다 들르긴 힘드니 하나 걸러 하나씩만 가본다. 어째 날이 점점 흐려진다고 생각했더니 간간히 비가 내린다. 자전거를 렌탈해서 탈까도 싶었는데 안 하길 잘했다.
모란 포인트(Moran point)에 들렀다. 그랜드캐년 빌리지 쪽은 한참 비가 오는 것 같다. 맑을 때와는 또 다른 신비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 모란 포인트는 토마스 모란이라는 그랜드 캐년을 즐겨그리던 화가가 자주 찾던 곳인 듯하다. 그가 그린 그림 중에는 그랜드 캐년을 화사하고 밝게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어제 저녁에 붉게 타오르는 모습과 오늘 안개비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니 토마스 모란이 그랜드 캐년을 왜 이렇게 그렸는지 이해도 되는 것 같다.
안내판의 그림과 그랜드 캐년의 실제 풍경을 비교해본다. 여기서 조금 밑으로 내려가면 저 그림과 같은 풍경이 보일 듯하다.
모란 포인트에서 조금만 더 가면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의 동쪽 끝이라 할 수 있는 데저트뷰가 나온다. 그랜드 캐년 자체만 보면 끝이라 할 수 있지만 콜로라도 강을 따라 가면 글랜캐년이나 캐년랜즈 같은 국립공원이 이어진다. 이 국립공원들은 기회되면 나중에 가볼까 싶다.
이런 데에 사는 거미들은 상당히 무섭게 생겼다. 뭐가 있을지 모르니 외국에서 풀숲에 들어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꽤 큰 기념품 가게도 있고...
이것이 데져트뷰 전망탑이다. 그랜드 캐년의 상징 중에 하나라서 무언가 오래된 역사적인 건물 같아 보이지만 1932년 완공된 관광객용 휴게소 같은 것이다.
탑은 총 4층으로 되어 있고 내부도 구경할 수 있는데 최상층은 아쉽게도 막혀있다.
내부 벽면에는 인디언식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뚫려있는 창 밖으로 사방을 볼 수 있는데 전망대라 하기엔 창이 작고 몇 개 없다.
전망탑에서 나와서 주변을 돌아본다.콜로라도 강과 그랜드 캐년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전망탑이 볼만하다. 이렇게 배경에 잘 어우러지니 현대식 전망대보다 훨씬 운치가 있는 것 같다. 나름 유명한 곳인데다가 그랜드캐년 국립 공원 동문에서 가깝기 때문에 관광객이 많은 편이다.
이제 플래그 스태프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랜드캐년 동쪽 출입구를 통과해 포장한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찻길로 달린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바위 사막 특유의 풍경을 보니 즐겁다.
달리다보니 계곡이 다시 나타나고 전망대 표시가 있다. 낡아서 포장이 다 망가진 길로 들어가본다. 리틀 콜로라도 리버 뷰포인트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콜로라고 강의 지류인 리틀 콜로라도 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발 밑으로 까마득한 절벽 아래 초코쉐이크 같이 누런 흙탕물이 흐른다. 일부러 올 필요는 없지만 이쪽으로 지나간다면 한 번 쯤 들러볼만한 곳이다.
이제 플래그스태프로 돌아가야 한다. 중간에 캐머런이란 곳에 잠깐 들렀는데 별거 없는 동네다. 출입 통제된 낡은 다리와 작은 쇼핑센터 같은 것이 있다.
플래그 스태프로 가는 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여기 날씨도 꽤 변덕스러운 듯하다. 도로 군데군데 큰 물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핸들이 휘청거려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플래그 스태프 시내에서 베트남 식당에 들러 쌀국수와 볶음밥으로 점심 겸 저녁을 때운다. 비는 거의 그쳤다.
시간 넉넉하게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옆에 렌터카 돌려두는 곳이 있다. 자기가 빌린 렌터카 업체의 푯말 앞에 주차하고 키는 공항의 렌터카 카운터에 돌려주면 된다. 주유를 안해도 지정된 휘발유값으로 알아서 주유 처리하는 서비스를 신청했더니 편하다.
짐이 없으니 그냥 발권한다. 대합실 쪽에는 화장실이 없을 것 같아서 조금 천천히 들어간다.
우리가 탈 비행기가 왔다. 우리 자리가 꼬리 쪽인데 꼬리쪽으로 타라고 안내해주니 편하다.
다시 피닉스에서 환승하고 LA공항으로 간다. 피닉스 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어둑해졌다.
LA 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 센터로 가는 셔틀버스를 탄다. 우리는 캐리어가 없으니 이동이 빠르다.
자전거를 포장해서 돌아가야 하니 다시 중형 SUV로 렌트를 해서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방이 바뀌었는데 핑크핑크하다.
이렇게 2박 3일로 간단히 그랜드 캐년을 다녀왔다. 일반 관광객보다는 좀더 많이 둘러보고, 림 투 림 트래킹 하는 사람들보단 조금 덜 본 듯 하다.
일생에 한 번 쯤은 보고 와야 한다는 곳, 그랜드 캐년을 다녀온다면 최소한 해야 하는 것은 다 한 것 같다. 말 그대로 캐년 중에 가장 그랜드한 곳이었다. 이제 내일은 자전거를 포장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