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향기 가득한 가을의 새재길
2018년 10월 20일
가을이다. 그 동안 가을이 오면 가려고 벼르고 있던 문경새재를 다녀오기로 한다. 단풍이 절정이려면 아직 한두 주일 남았지만 지금 가도 충분하겠지.
서울에서 출발해서 문경에 들어가기 전 마을이자 오천 자전거길의 시작점인 괴산군 연풍면에 도착했다. 손칼국수집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칼국수는 안하고 산채비빔밥을 팔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산채비빔밥을 주문했는데 시골 된장으로 끓인 찌개에 근처에서 난 채소를 올린 비빔밥이 나왔다. 기대하지 않은 식사였는데 맛있게 잘 먹었다.
이제 이화령 터널을 지나서 문경새재 도립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예전에 이화령 터널 위로 국토종주 자전거길 문경새재 구간을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문경새재 자전거길은 사실 문경새재를 넘는게 아니라 소조령과 이화령을 넘는 가짜 문경새재 자전거길이니 오늘이야말로 진짜 문경새재를 다녀오는 것이다.
문경 사과 축제날과 겹쳐서 그런지 일찍 온 듯한데도 벌써 입구부터 차가 엄청 막힌다. 주차장이 여기저기 엄청 넓지만 차들이 가득하고 주차비로 1600원이라는 애매한 금액을 받느라 주차장 아르바이트생들도 바쁘다. 어쨌든 주차를 하고 걸어간다.
입구에 문경사과 축제 입간판이 서있다. 새재 너머의 충주도 그렇지만 문경은 사과로 유명하다. 예전에 몇 번 문경에서 사과를 먹었는데 내가 사과를 그리 좋아하지 않음에도 여기 사과는 참 맛있다.
완연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은행나무 단풍이 가득하다.
새재길 입구에 있는 옛길 박물관에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좀 멀리 걸을 생각을 하니 시간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사과축제 행사 때문에 길 가에 행사부스가 줄지어있다. 여러 사과 농장에서 나와서 시식할 수 있도록 사과를 썰어놓았다.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시식하기 바쁘다.
사과의 단맛에 사람만 끌리는 것이 아니다. 벌들도 잔뜩 모여든다.
문경새재 안내판이 있다. 오늘 여기서 문경새재의 정상인 제3 관문까지 다녀올 예정이다.
사과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백설공주다. 지니님이 백설공주의 사과를 먹으려 한다.
사과 축제장에 사과나무도 있다. 파란 하늘에 대비되는 빨간 사과가 이쁘다.
사과 축제장을 쭉 지나면서 사과를 한 조각 씩만 먹어도 농장들이 워낙 많으니 사과 반 개는 먹은 듯하다.
문경새재 산책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문경새재 제1관문이 보인다. 새재는 문경 방향에서 3개의 관문이 있다. 제1 관문이 입구, 제 3관문이 새재길 정상에 있다. 제3관문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오늘 목표이다.
올라가는 길에 서예 동호회원들의 작품을 플랭카드로 출력해서 잔뜩 걸어놨다.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고 길 옆의 계곡도 잘 보이지 않는다.
문경새재는 경상도에서 서울로 가는 주요한 통로였으니 여행객이 하룻밤 쉬어가는 원이 곳곳에 있었다. 올라가는 길에도 조령원터가 있다.
제1 관문에서 제2 관문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서 그런지 사람도 많다.
사람 많은 길에는 항상 돌탑이 있다.
이 돌탑에 돌 하나 얹으려고 보니 근처에는 돌맹이들이 씨가 말랐다. 작은 돌맹이를 하나 찾아다가 쌓았다.
산불됴심이라고 쓰인 바위가 있다. 근현대에 만든 것은 아니고 꽤 오래 전, 조선시대에 세웠다는데 정확한 시기는 모른다고 한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옆으로 작은 폭포가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사람길로 넘치지 않게 배수로를 만들어놨다.
수질을 알 수는 없지만 겉보기엔 매우 맑으니 손을 씻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간단히 손을 씻고 간다.
약간 더 큰 폭포가 있다. 사람들이 여기서 사진 찍겠다고 길을 막고 난리다.
슬슬 걷다보니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에 도착한다.
총 9.1 km라는데 우리도 제3 관문까지만 갈 예정이다.
제2 관문에서 제3 관문 가는 길도 그리 가파른 곳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2 관문에서 발걸음을 돌리고 좀더 걷고자 하는 사람들만 제3 관문으로 향한다.
설렁설렁 완만한 길을 꾸준히 올라가지만 벌써 해발 500m를 넘었다. 제3관문은 해발 600m가 넘으니 완만하지만 꽤 긴 길이다.
일본군이 근처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서 송진을 채취한 소나무숲이 있다. 일본인들의 식민지 수탈의 흔적이 여기에도 남아있다. 전국을 다니다보면 일제가 손대지 않은 곳, 가져가지 않은 것이 없다.
문경새재 안에 있는 세 개의 원 중 하나인 동화원을 지난다. 현재에도 여기엔 매점이 있다.
아직 단풍이 들기에 조금 이르긴 하지만 초록 나무들 사이로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단풍이 보인다.
드디어 오늘 목적지인 제3 관문 조령관이 보인다.
새재의 정상에 도착했다. 고개의 해발 높이는 약 642m로 상당히 높은 곳이다. 해발 1000m가 넘은 조령산, 주흘산은 물론 대부분의 산들이 800m를 넘나드는 이 험한 백두대간을 그나마 쉽게 넘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오랜 통로가 된 것이다.
높은 고개들이 행정 구역의 경계가 되는 일이 많은데 이 새재 정상도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이다. 이 조령관의 서쪽은 충청도, 동쪽은 경상도인 것이다.
충북 괴산 쪽에도 백두대간 조령비가 세워져 있다. 여기는 충북이기 때문에 당연히 괴산군 연풍면으로 쓰여 있다.
조령비의 뒷면에는 백두대간의 그림과 조령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이제 돌아갈 때다. 조령관 옆의 언덕을 넘어서 돌아간다. 언덕 중간에 경상북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올라갈 때와 같은 길로 내려가는데 꽤 많이 올라왔는지 생각보다 멀다. 제1 관문을 지나서 다시 사과 축제장의 시식 코너에서 사과를 조금씩 맛본다.
제3관문까지 왕복해서 총 10 km를 넘게 걸었으니 배가 고프다. 육개장으로 간단히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는다.
다른 곳을 다녀오느라 그 동안 미뤄두었던 가을의 문경새재를 다녀왔다. 문경새재는 백두대간의 일부이자 산새가 험하고 깊은 만큼 가을의 문경새재길은 정말 운치있는 곳이었다. 사실 문경새재를 다루는 여러 여행책이나 우리나라의 관광지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유명하고 그만큼 가볼만한 곳이다. 비록 사과 축제와 맞물려 방문객이 더 많고 혼잡하긴 했지만 맛있는 사과를 먹을 수 있었으니 감수할 만하다.
이화령길과 이화령 터널로 인해서 험한 새재를 넘지 않고 충청도와 경상도를 오가게 되었지만
이 덕분에 새재길이 보존된 것은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앞서 얘기했지만 문경새재 자전거길은 차량들과 마찬가지로 이화령길을 넘어가니 이름만 문경새재 자전거길인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완주한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진짜 문경새재를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