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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Oct 17. 2019

존의 알프스 자전거 여행 6 -해발 2750m 카우나탈

구름 속의 카우나탈

2019년 9월 5일 - Prutz에서 하루 휴식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해발 1800m 오르막길을 두 번 올랐으니 하루쯤은 게으름을 피워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은 하루 쉬어가는 아침이다. 느긋하게 눈을 뜨고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간다.


오늘도 야채가 넉넉하군...


빵 조금, 햄, 소세지, 애그 스크램블 잔뜩, 커피 한 잔, 과일 주스 한 잔을 우선 먹고 야채를 먹으면서 더 먹고 싶은 것들을 좀 더 먹고 마지막으로 요거트와 과일 믹스로 마무리한다.


호텔 한 켠에는 관광 책자들이 많은데 죄다 독일어로 되어 있다.


날씨는 좀 안 좋은 듯한데 오늘은 여기 Prutz에서 이어지는 고산 계곡인 Kaunertal에 가볼까 한다. Kaunertal은 해발 2750m 이상의 고지대로 사계절 빙하와 만년설을 볼 수 있고 겨울에는 스키 리조트가 된다고 한다.


호텔 바로 길 건너에는 관광 안내소가 있는데 오전 9시부터 운영하고 점심시간이 길고 오후에 일찍 닫는다. Kaunertal에 대해서 물어보니 호텔에 묵는다면 프런트에서 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는 섬머 카드를 발급받으라고 한다. Kaunertal 입장료는 7유로라고 한다.


섬머 카드를 발급받으면서 7유 내기 위해 50유로짜리 지폐도 꿔둔다.


일기예보에는 점심부터 비가 온다고 되어 있다. 하늘이 점점 흐려지니 Kaunertal에 가는 게 잘하는 일일까 싶다. 원래는 근처의 바이크 파크에서 산악자전거를 빌려서 타볼까도 했는데 제대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Kaunertal로 가는 것이다.


점심 버스를 타고 가서 오후 4시 버스를 타고 내려올 생각이다. 좀 더 서둘렀으면 오전 버스를 탔을 텐데 시간이 붕 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슈퍼에도 들를 겸해서 Prutz 마을을 산책해본다.


작은 과수원에 납작한 사과도 있고 복숭아도 보이고 무궁화도 있다.


서양 사람들은 젤리를 좋아한다. 슈퍼마다 젤리가 그득하다. 하리보도 독일 쪽 하리보가 더 연하고 쫄깃하다는데 잘 모르겠다.


초콜릿도 있. 나는 쵸코우유나 아이스크림 종류는 좋아하는데 고체 초콜릿은 잘 안 먹는다. 우리나라 제과업체들이 만드는 팜유로 만드는 초콜릿 비스무리한 것들을 잘 안 먹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햄이나 다양한 식재료가 있는데 결국 내가 집은 건 콜라다... 자전거를 타든 안 타든 하루에 콜라 1L를 마시고 있다. 부족한 칼로리 보충과 느끼한 입안을 씻어내기 위한 몸부림이라기엔 너무 중독된 것 같다.


조금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마을 광장의 카페에 앉았다. 젊은 직원들이 초짜인지 부지런히 움직이긴 하는데 효율적이진 않다.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빵이 딱딱한 쿠키 같은 것이 내 스타일은 아니다. 자전거를 안 타니 주도 한 잔 한다.


관광 안내소 뒤쪽에 햄버거집이 있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 광장에 있는 카페에서 햄버거를 먹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 앞에서 Kaunertal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정류장 앞이라고 자판기도 있고 자판기 벽면에 버스 시간표도 있다.


내가 타야 할 4232번 버스가 저건 줄 알았는데 점심 먹으러 갔는지 쉬는 버스다.


시간이 되니 다른 4232번 버스가 나타났다. 버스 뒤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캐리어가 있다. 날씨만 좋았으면 Kaunertal까지 자전거를 싣고 올라갔을 텐데 아쉽다.


호텔에서 발급받은 섬머 카드를 바코드에 찍으면 무료 승차다. 교통비가 비싼 이 동네에서는 굉장한 혜택이라 할 수 있다.


버스는 Prutz 마을 안을 쭉 돌아서 Kaunertal 방향의 거의 모든 마을에 정차한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지만 능숙한 솜씨로 여유 있게 운전하는 기사님이 멋지다.


Kauns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마을에 들르니 산골 마을 구경하기도 좋다. 회도 지나가고 작은 성도 지나간다.


마지막 마을을 벗어나면 주변이 온통 숲이다.


요금소가 있다. 여기에서 버스의 모든 승객이 내려서 각자 입장료 7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이제 버스는 본격적인 산악 구간을 올라간다.


S자 헤어핀 구간을 몇 번 돌면 저수지 둑이 보인다. Kaunertal로 가는 중간에 있는 Gepatsch-Stausee라는 호수다.


이곳을 운행하는데 특화된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부드럽게 올라간다. 호수 근처에도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있고 사람들이 보인다.


산골짜기를 길쭉하게 가득 메운 호수다. 여기만 해도 벌써 해발 1800m에 가깝다.


여기저기에서 모인 하얀 물줄기들이 호수로 쏟아져 내린다.


이 높은 곳에도 풀이 자라는 여름에는 소들을 풀어 방목한다.


호수를 지나가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지도로만 봐도 어마어마한 꼬부랑길이다. 날씨 때문에 완전히 포기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 볼까?라고 생각한 것이 무모하게 느껴진다. 여기서부터 고도는 순식간에 높아져서 해발 2700m까지 1000m를 상승해서 올라가게 된다.


하얀 물줄기가 러내려온다. 이 물줄기가 호수로 흘러드는 가장 큰 계곡이다.


날씨 때문에 더욱 기괴하게 보이는 나무 조각상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헤어핀마다 번호와 해발 고도가 적혀있다. 21번 굽은 길(Kehre)이다. Kaunertal 정상까지 꼬부랑길이 21번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제 호수도 저 아래 보인다. 호수 옆의 긴 줄은 버스가 지나온 길이다.


구름이 보인다. 곧 구름 속으로 들어갈 것 같다.


구름은 바로 머리 위에 있고,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하는 조각상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이곳을 밥먹듯이 올라 다닌 버스 기사님은 여전히 부드럽고 편안하게 버스를 몬다. 올라온 찻길이 바로 아래 보인다.


웬 중장비들이지? 뭔 공사가 있었나 보다 하는 가벼운 생각뿐이었는데 이게 복선이었다.


Kaunertal에서 스키를 타고 계속 내려가면 여기에 도착한다. 다시 올라가기 위한 스키 하우스가 있다.


이제 구름의 경계에 점점 다가간다. 하필이면 딱 Kaunertal의 정상 부분에 구름이 걸쳐 있는 듯하다.


완전히 구름 속으로 들어왔다. 상당히 진한 안개 같지만 늘 있는 일인지 버스는 여전히 매끄럽게 도로를 나아간다. 중간에 쫄딱 젖은 여자 등산객 둘이 귀엽게 생긴 비글 강아지와 함께 탄다.


무언가 굴다리 같은 것을 통과하니 곧 버스 종점이다. 버스에서 내렸지만 그냥 뿌연 안개 속이다. 사람들이 가는 방향에 건물의 실루엣이 보이니 따라간다.


식당이 하나 있다. 현재 고도는 해발 2750m이다. 해발 3천 미터에는 하와이 할레아칼라와 마우나케아, 이탈리아의 에트나까지 세 번 올라가 보았으니 네 번째로 높이 올라온 셈이다. 세 번은 모두 섬이라 바닷가에서 3000m까지 급상승한 셈인데 여기 알프스에서는 해발 700~1800m에서 계속 머물다 올라와서인지 불편한 느낌이 전혀 없다.


식당이 있는 산장 내부에는 여기 Kaunertal (Kaunertaler Gletscher)에서 이어지는 스키 슬로프들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맑을 때 오면 여름에도 녹지 않은 빙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밖에 나가 한 바퀴 걸어본다. 구름 때문에 조금만 멀리 가도 근처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자세히 보면 조금 외곽 쪽에 쌓여 있는 빙하를 볼 수 있는데... 하얀 구름 안갯속에 하얀 눈이니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해발 3500m의 Weißseespitze 근처까지 올라가는 곤돌라가 보인다. 곤돌라 매표소에 지금 정상이 가면 보이는 게 있는지 물어봤는데 역시나 정상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정상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경계이다. 아... 오늘은 꽝이다.


산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화면을 보니 겨울의. 맑은 날에는 여기가 어떤지를 볼 수 있다.


산장 뒤쪽에는 스키장 관리에 쓰이는 차들이 여러 대 있다.


여기까지 나를 데려다준 4232번 버스의 내려가는 시간표도 있다. 버스에서 내려서 곤돌라를 타고 정상까지 갔다 돌아와서 오후 4시 차를 타면 빠듯하게 딱 맞는 스케줄이다.


곤돌라 승강장 옆으로 큰 건물 하나가 공사 중인데 하필 빙하가 있는 구릉 근처라 빙하 보러 가기도 힘들다. 그 건물 말고도 여기저기가 보수 공사 중인 것 같다. 여기저기에 폐자재들이 널려있다.


이제 오후 4시가 다 되었다. 내가 돌아다니는 동안 버스 기사님은 버스의 청소와 간단한 점검을 하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버스는 내려가는 길에 쫄딱 젖은 등산객들을 몇 명 태운다. 맑은 날에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


풀 뜯던 소들이 도로 근처로 나왔다.


호수도 지나고... 마을들도 지나서 Prutz까지 내려간다. 유럽이나 미국의 버스는 우리나라처럼 급하게 운행하지 않는다. 항상 느릿느릿 안전하게 운전하면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멈춰서 확인하고 무리한 운행을 하지 않는다.


Prutz로 돌아왔다. 이제는 여기도 비가 내린다.


슬슬 출출하니 호텔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으러 간다. 오늘은 그냥 샐러드와 슈니첼이다.


먼저 나온 샐러드와 맥주를 먹고 있으니 감자가 가득한 슈니첼이 나왔다.


슈니첼은 돈가스와 닮았는데 얇은 돈가스보단 두껍고 일식집의 두꺼운 돈가스보다는 얇다. 어찌 보면 꿔바로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고기의 식감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두께라고 생각한다. 고기 양도 많지만 감자튀김의 양도 상당하기 때문에 다 먹으면 칼로리가 상당한 음식이다. 난 얇은 돈가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슈니첼은 여행 내내 잘 먹었던 듯하다.


호텔 여행 브로셔가 있는 칸에 내일 날씨 예보가 붙어있다. 자전거를 타야 하는 내일도 가뜩 흐리고 비도 올 수 있고...


여행 출발하기 한 달 전부터 티롤 인스브루크의 날씨를 계속 확인했는데 지독하리만큼 매일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일주일에 6일은 비가 오는 정도... 실제로 티롤로 넘어오니 나도 이 흐리고 비 오는 날씨를 겪고 있다.


여행에서 가장 어쩔 수 없는 것이 날씨다. 그리고, 여행의 기분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도 날씨다. 아무도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알프스로 출발하면서도 가장 걱정했던 것이 날씨인데 오늘 제대로 꽝을 만났다.


서실 Kaunertal은 맑은 날에도 눈과 바람으로 삭막해 보이는 곳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내일은 자전거를 타고 인스브루크로 가야 한다. 맑아야 할 텐데... 최소한 비는 오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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