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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Dec 02. 2019

존의 알프스 자전거 여행 14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보힌즈에서 블레드 호수 지나서 류블랴나까지

2019년 9월 13일


오늘은 보힌즈(Bohinj)에서 블레드 호수를 지나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까지 약 90km를 달린다. 레드 호수는 율리안 알프스의 끝이라 할 수 있다. 류블랴나에 들어가면 이제 알프스를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셈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안개가 자욱하다. 개가 꽤 진하지만 오늘 날씨는 맑다고 했으니 기온이 오르면 걷힐 것 같다.


안개는 별 문제없고 비만 안 오면 된다. 아침부터 먹으러 간다.


매일 먹는 호텔 조식이지만 매일 즐겁다. 원래 아침은 이것저것 가볍게 먹다 보니 매일 이런 것들만 먹어도 충분히  좋다.


출발하려니 날이 개이고 있다. 오늘도 맑을 것 같다.


짐을 꾸려서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잠깐 보힌즈 호수에도 가보고... 아마 다신 안 올 것 같으니 보힌즈 호수 입구 근처 위주로 좀 더 둘러본다.


아침에 자욱했던 안개가 빠르게 물러가고 있다. 리포니아에서 자욱한 해무로 오전 내내 이슬비 같은 공기를 치고 달렸던 것에 비하면 정말 금세 사라지는 안개다.


기분 탓인지 트리글라브 산도 더 가깝게 보인다.


교회 앞다리는 뭔가 작업을 하는 중이다.


다시 블레드 호수 쪽으로 가야 한다. 여기부터어제 한 번 와본 아는 길이다. 보힌즈 호수도 아름다운 호수였지만 보힌즈에 왕복 60km를 투자할 가치가 있었는가라고 묻는다면 차라리 크란스카 고라에서 Vrsic pass로 율리안 알프스를 올라가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어제 그냥 지나쳐갔던 자전거 통행금지구간을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우회한다. 자전거 통행금지 표시 앞의 인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된다.


차도를 우회하는 작은 길은 한적하고 조용하다. 주민들도 거의 안 보인다. 차가 다니긴 하는 단선 기찻길 옆으로 마을길이 계속 이어진다.


마을길이 다시 209번 차도와 합쳐지면 곧 블레드 호수 입구다. 그리 긴 거리가 아니었는데 어제는 정말 길게 느껴졌던 구간이다. 어제는 정말 지쳤었나 보다.


블레드에 다시 돌아왔다. 날씨가 좋으니 어제보다 더 맑고 환해 보인다. 이번 행에서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호수는 암제, 밀스타트, 그리고 여기 블레드 호수다.


선착장에서 잠시 쉬다가 어제 가지 않은 블레드 호수 반대편 길의 남은 반 바퀴를 돌기로 한다. 렇게라도 블레드 호수를 완전히 한 바퀴 돌면서 즐기고 싶다.


블레드섬의 성모승천 성당과 블레드 성이 보이는 곳 어디서 찍어도 사진이 한 폭의 화보가 될 만큼 블레드 호수의 풍경은 아름답다.


나룻배로만 들어갈 수 있는 블레드섬 선착장에는 성모승천 성당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 결혼을 하는 커플은 이 계단을 신부를 업고 끝까지 올라야 한다는 전통이 있다는데... 나는 혼자 온 데다가 자전거를 두고 갈 수도 없으니 구경만 한다.


어제 가지 못한 나머지 길로 블레드 호수를 천천히 한 바퀴 돈다. 행자들도 많으니 적당히 끌고 가기도 하면서 천천히 간다.



블레드 호수를 떠나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겠다. 내 성격 상 지금 안 먹으면 나중에 고생할 것이 분명하니 이왕이면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점심이래 봐야 간단한 샌드위치 세트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자꾸 빵조각을 뿌리니 참새들이 점점 모인다. 웨이트리스가 주의를 주고 나서야 멈춘다.


이제 블레드 호수를 떠날 때다. 다르게 말하면 알프스를 떠날 때라고도 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로 가야 한다. 블레드의 출구 쪽으로 자전거길이 잘 나있다.


빨간색 자전거길 표지판을 따라간다. 중간중간에 지도도 있으니 길을 알기 편하다.


자전거길은 이정표나 방향 표시가 잘 되어 있지만 고속도로 위를 건너기도 하고 불구불한 길을 달리기도 하다 보니 방향감각을 점점 상실하는 것 같다.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그런지 느릿느릿 달리는데 노란 옷을 입은 자전거 아저씨가 나를 추월해간다. 아무 생각 없이 이 아저씨만 한참 따라가니 오르막길도 나오고 좀 힘들었지만 길 찾기에 시간을 끌지 않고 편하게 달렸다.


갈림길이 얼마 없지만 길이 구불구불해서 방향 감각이 없어진다. 앞에 달리던 노란 옷 아저씨도 안 보일 때쯤 언덕을 올라 Podbrezje라는 마을을 지나간다. 노란 옷 아저씨 덕분에 망설임 없이 잘 달린 것 같다.


고속도로 옆으로 난 길을 계속 달린다.


큰길 옆에 비포장길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비포장길로 달리니 점점 큰길에서 멀어지면서 공장지대 같은 곳을 지나게 된다. 공장 구역의 끝에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결국 큰길과 다시 합쳐진다. 


자전거길로 달리다 보니 얼마 안 가서 Kranj라는 도시가 나타났다. 차량 통행이 많은 좁은 길 옆에 자전거길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Kranj라는 마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데 조용하고 길에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탈리아의 시골에서 사람 거의 안 보이는 마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좀 더 심한 것 같다.


별생각 없이 그냥 길을 따라 쭉 달리니 교회가 있는 막다른 길이 나온.


쉴 때가 되었는데 마침 카페도 있으니 앉아서 음료도 한 잔 한다. 렇게 사람이 거의 없더니 여기에 여러 명이 모여 있다. 아이들도 뛰어노니 이제야 정상적인 마을로 보인다. 느긋하게 앉아서 여기서부터 류블랴나로 가는 길을 확인한다. 실 여기서부터는 코스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아보지 않았으니 좀 더 주의해서 달려야겠다.


막다른 길 끝에는 유리로 된  전망대가 있다.  경치는 별거 없만 여기까지 왔으니 잠시 보고 가야지...


되돌아 나가다 보면 자전거길 표시와 함께 자전거를 끌고 가라는 표시도 있다. 끌고 가라면 끌고 가야지... 타고 내려가긴 조금 위험한 경사로를 끌고 내려와서 사바강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한동안 사바강을 따라 달린다. 자동차 전용 도로가 있는 근처의 일반 도로는 장거리로 이동하는 차량들은 안 들어오니 한적한 편이다.


한적하던 길은 Medvode라는 조금 큰 마을부터는 큰길과 합쳐지는데...


큰길을 따라 달리는데 Medna라는 마을에서 갑자기 자전거 통행금지 구간 표시가 나타난다. 슬로베니아에서 이런 경우에는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우회로가 있는데... 그 자전거길이 포장도로라는 보장은 없다.


역시나 류블랴나로 가는 길이 비포장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


샛길로 류블랴나까진 왔는데 계속 길을 잘못 든다. 남동쪽으로 류블랴나로 바로 들어가는 길은 교통량이 너무 많아서 우회하려 했더니 류블랴나 북쪽의 Jezica라는 마을까지 완전히 빙 돌아서 가게 된다.


아이고 모르겠다. 마침 시내로 가는 자전거들이 있으니 그대로 따라간다.


유럽의 도시에서는 자전거길이 끊기는 구간은 이렇게 쇠로 된 자전거길 라인을 따라가면 된다.


어찌어찌 꾸불꾸불하게 달려서 류블랴나의 중심가에 도착했다. 숙소 근처인 드래곤 다리 앞에 도착했으니 오늘 여정도 거의 끝이다.


오늘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기로 한다. 시설도 안 좋고 느낌도 별로지만 관광지 한가운데에서 저렴하게 묵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예약했다.


구질구질한 방에 있기 싫으니 간단히 씻고 시내 구경 나온다.


여기는 강 위로 다리들이 볼거리다. 드래곤 다리에서 조금 더 가면 도살자의 다리가 있다. 다리에 악마스러운 분위기의 동상들이 있다.


최중심가라 할 수 있는 프레세렌 광장 앞에는 다리 세 개로 이루어진 삼중교가 있다.


프레세렌 광장에는 프레세렌 동상이 있고 그 앞으로는 악사들이나 공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광장 한 켠에는 시내의 미니어처 모형이 있다. 아이들이 만지거나 올라가서 놀아도 뭉개지지 않게 애초부터 튼튼하게 만든 듯하다.


근처 대형 슈퍼마켓에서 간식과 내일 아침에 먹을 것들을 산다. 생각보다 싸지 않다.


저녁은 노점상들의 모임인 Odprta Khuna(Open kitchen)이라는 곳에 가본다.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돼지 바베큐와 참치 보울을 골랐는데...


음... 최악이다. 양도 적은 게 비싸고 사람이 너무 몰리다 보니 근처에 먹을 자리도 없다. 맛도 별로다. 바베큐 돼지는 우리나라 등산로 입구 식당의 것이 훨씬 맛있고 참치 보울은 밥할 줄도 모르면서 음식을 판다고 하네...

지금까지 중에 가장 맛없는 저녁 식사였다.


류블랴나는 입구부터 차량들에 시달리면서 빙빙 우회하고 숙소도 구질구질한데 슈퍼마켓에서 사 온 음식이나 저녁 식사까지 맛이 없으니 나같이 맘에 드는 구석이 없다.


오스트리아나 스위스에 비하면 모든 것이 낙후되고 도로도 거칠고 차들도 조금 불친절한 슬로베니아. 여행은 안 좋은 곳에서 좋은 곳으로 가는 편이 여러모로 좋은데 이 코스는 반대로 크로아티아에서 시작해서 스위스로 달렸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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