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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Dec 09. 2019

존의 알프스 자전거 여행 15 - 슬로베니아 사바강

사바강 따라서 세브니차까지

2019년 9월 14일


내일 저녁까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도착해야 한다.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가는 루트를 몇 가지 생각해둔 것이 있는데 이왕이면 사바강을 따라가기로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슬로베니아로 넘어오자마자 만났던 사바강은 슬로베니아를 서에서 동으로 흘러 가로지른 후에 크로아티아로 넘어가는 강이다. 이 강을 따라 가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까지 160여 km 정도 되니 중간에 하루 쉬기로 한 곳이 세브니차(Sevnica)다. 오늘은 세브니차까지 85 km를 달린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보안 문제로 밤에는 문을 잠그나 보다. 술에 취한 게스트 하우스 투숙객이 한밤 중에 들어오려고  한참 동안 문을 두드리고 소란을 피워서 잠을 설쳤다. 어제저녁에는 대마에 찌든 것 같은 룸메이트가 뭘 잃어버렸다고 경찰을 불러서 소지품 검사까지 했다. 끔찍한 저녁 식사에 끔찍한 룸메이트에 끔찍한 잠자리였다. 어제 사다 놓은 아침 식사도 보기에 비해서 너무 맛이 없다. 왜 하필 이런 걸 골랐을까... 리 좋은 기억이 없는 류블랴나에서 빨리 떠나고 싶다.


체크아웃하고 보관 맡겨둔 자전거도 꺼내서 출발 준비한다. 아로자에서 산 빨간 스위스 쇼핑백을 아직도 요긴하게 쓰고 있다.


슬슬 출발한다. 아침 안개로 찌뿌둥하니 구질구질한 동유럽스러운 느낌이 물씬 드는 날씨다. 사실 루트에 대한 공부가 부족해서 이제부터 류블랴나까지 가는 길을 잘 모른다. 른 것보다 갑자기 나타나는 자전거 통행금지 차도만 없었으면 좋겠다.


유럽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이 스프레이 낙서인데 낙후된 지역일수록 낙서가 심하다. 류블랴나도 스프레이 낙서로 엉망이다. 보고 있으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조화롭게 그려진 작품을 만나면 기분도 좋아지는데 이런 것은 완전한 시각 공해다.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시내를 가로지르는 기찻길을 류블랴나 역을 통과하는 지하도를 이용해서 넘어가야 사바강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슬로베니아는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에 끼어 있는데 20세기 말까지 유고슬라비아라는 공산 국가였던 것 때문인지 동유럽 느낌이 강하다. 래서인지 바로 옆 나라인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보다 대충 사는 듯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운전도 거친 듯하 자전거길이나 한적한 도로로 안전하게 달리고 싶다.


큰길 옆으로 난 자전거길을 따라 달는데... 큰 로터리를 지나가니 갑자기 자전거길이 없어지고 자전거 통행금지 표지판이 나타났다. 근처 계단을 올라가서 산책로 같은 것을 가로지르니 커다란 공동묘지 입구다. 지도 확인하고 적당히 빠져나간다. 어째 초반부터 길 찾는데 를 먹는 것 같다.


H3번 고속도로 옆의 한적한 길을 따라가다가 644번 도로를 따라 고속도로를 건너간다. 이 644번 도로는 아까 류블랴나 역 근처에서 이어지는 도로다. 그렇다. 쉬운 길 놔두고 한참 빙 돌아가는 삽질을 한 것이다.


여기서 돔잘레 방향으로 직진해서 큰 도로인 108번 도로로 쉽게 가려했더니 자전거 통행금지 구간이다. 직전의 작은 사거리로 돌아와서 오른쪽의 마을길로 가야 한다. Litija로 가는 이정표를 보면서 따라가야 할 것 같다.


슬로베니아의 한강이라 할 수 있는 사바강을 따라가는 길이라 그런지 자전거길 표시가 되어 있다. L043자전거길이 안내해주는 대로 따라간다. 제 좀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동네는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고양이들이 넋 놓고 다니는 것 같다. 멍 때리면서 슬슬 돌아다니다가 날 보고 깜짝 놀라 도망가는 도도한 바보들...


아침 내내 안개 낀 날씨로 우울하더니 슬슬 파란 하늘이 보인다.


돌스코(Dolsko)라는 마을에서 자전거길 표시를 따라서 우회전하여 Laze로 간다.


기찻길 옆으로 작은 찻길을 따라간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하고 자꾸 비교되는 것이... 기차도 낡았다.


여기도 여유만만한 고양이 한 마리...  작은 마을길 같은 곳이라 짧은 오르막길이 조금씩 나타난다.


여행 짐 자전거 부부와 비슷하게 달린다. 둘이서 별 힘 들이지 않고 꾸준히 달리나 싶어서 보니 전동 자전거들이다. 나도 크게 체력 소모하면서 빠르게 달릴 수 없는  태이다보니 속도가 비슷하다.


사바강을 따라가는 길이지만 사바강은 잘 안 보일 때가 많다. 딱히 이쁘거나 볼만한 강은 아니지만 풍경 자체는 나쁘지 않다.


음... 길이 점점 안 좋아지더니 결국 면이 거의 망가진 비포장 급경사 오르막이 나온다. 슷하게 달리던 전거 부부는 짐 때문인지 뒤쳐지고 혼자 끙끙거리며 올라간다.


고개를 넘어가니 소 풀 먹이는 농장 지난다.


초반에 이정표에서 보았던 Litija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근처에선 꽤 큰 마을데 강 건너에 있으니 시내에 들를 일은 없다. 러다보니 점심시간에 되었는데도 딱히 들를만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 108번 도로로 가야 하는데 마침 자전거길이 있다.


좀 달리다 보니 자전거길은 없어진다. 마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슬슬 점심을 먹어야겠는데 마침 식당이 하나 있으니 들어가 본다.


메뉴판을 받았는데 여긴 시골이다 보니 영어 메뉴판이 없다. 쓰여있는 글자는 영어 알파벳인데 뜻은 거의 모르겠다. 일단 음료를 하나 주문하고... 점심은 가볍게 저녁은 무겁게라고 생각하고 스파게티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런 동네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해봐야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으니...


뭔가 초록색 면이 나왔다. 보기보단 정말 맛있다. 그런데...


다른 손님이 주문한 고기와 소세지가 맛있게 구워지고 있다. 아... 이걸 미리 봤으면 점심도 무겁게 먹을걸...


어쨌든 점심을 먹었으니 힘을 내서 다시 달린다. 참 달려도 식당이 보이지 않으니 아까 식당에서 스파게티라도 먹은 것이 다행이다.


사바강을 따라 달리는데 어마어마한 높이의 굴뚝이 보인다.


Power Plant Trbovlje이라는 이 발전소는 현재는 가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저 굴뚝은 높이가 360m나 되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굴뚝이라고 한다.


차들이 대부분 좌회전하는 길이 나타났다. 잠시 멈춰서 경로를 확인해보니 진을 해도 자전거길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포장길이라는 보장이 안 된다. 나도 건너가서 강 반대편 길로 달리는 게 좋을 것 같다.


건너편을 보니 대충 느낌이 온다. 저 건너편에 철교 밑으로  길을 따라가야 하는구나.


다리를 건서 삼거리에서 우회전한 후에 철로 밑 굴다리를 지나면 된다.


차 두 대가 다니기엔 좁지만 노면도 깨끗하고 한적한 길이다.


자전거 타는 현지인을 만났다. 달리면서 영어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눴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 어디서 출발했냐 같은 얘기들이다.


자동차를 가득 실은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가 어찌나 긴지 한참을 지나간다. 유럽 내륙에 거미줄 같이 연결된 기찻길이 있으니 이런 대규모 수송도 가능한가 보다.


계속 강을 따라가는 길이니 편하게 달린다.


Zidani most라는 곳의 역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매점 같은 것도 없는 작은 역이다. 역 플랫폼 옆에 오래된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1913년에 만들어진 기차니 100년이 넘었다. 런 증기기관차 말고 카페라도 운영하지 좀...


강을 따라 달리는데 남한강 자전거길 양수철교가 생각나는 철골 다리가 나타났다. 냥 지나가도 되지만 구경하고 싶어 져서 잠시 멈춘다.


바닥이 다 낡아 빠진 오래된 다리지만 화분을 이쁘게 가꿔놨다.


나는 이런 다리를 보면 건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살살 건너본다.


다리를 건너 아이들을 태운 부부 자전거들이 지나간다. 이쪽이 아까 다리를 건넜던 삼거리에서 연결되는 자전거길인가보다. 비포장일 것 같지만...


자전거길 표시를 따라서 달리다가 다시 사바강을 건너게 된다. 분명히 차도 쪽은 저 멀리까지 평지길인데 자전거는 왜 이리로 가는 거지?


사바강에는 많은 댐들이 있어 수력발전으로 전력을 충당한다.


약한 오르막 내리막이 낙타 등 같이 반복되는 길이다. 높지 않은 오르막길 꼭대기에 낑낑거리면서 올라갈 때마다 강 반대편의 평지 도로가 보인다.


언덕길을 올라가려다가 지도를 확인해보니 자전거길이 다시 사바강을 건너간다. 지금까지 왜 이 고생을 한 거지...


사바강을 따라가는 평지길인데 나는 이미 지쳤다.


인라인이 가능한 보행자 겸용 도로가 있다. 인라인이 다닐 수 있는 이런 길이 가장 평평하고 자전거 타기 좋은 길이다.


드디어 세브니차가 보인다. 오늘은 유난히 힘들었다.


세브니차(Sevnica) 입구로 들어가니 슈퍼마켓이 보인다. 예약해둔 숙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목도 마르고 지쳤으니 슈퍼에 들른다.


마땅히 먹을 게 없어서 쵸코 우유를 하나 집었다. 분명히 쵸코 우유가 맞는데 쵸코맛이 하나도 안 나는 것 같다. 껍데기에 그려진 흑우의 표정이... 난 흑우(호구)당한 건가...


마을 중심은 역이다. 역 근처에 숙소도 있다. 얼마 안 남았다.


오늘 숙소는 3성 호텔이다. 아무래도 숙박객이 얼마 없어서 그런지 직원은 호텔 일보다 레스토랑에 더 신경 쓴다. 조금 기다려서 체크인을 하니 자전거는 방에 두라고 한다.


바로 2층이 숙박시설인데 2층 건물이라 그런지 엘리베이터도 없다. 자전거를 들고 한 층 올라가니 깔끔한 방이 있다.


씻고 좀 쉬다가 저녁도 먹을 겸 동네 나들이 나간다. 동네 안내 책자를 보니 초등학교까지 표시되어 있을 만큼 볼거리가 없는 동네인 듯하다. 의외로 자전거 코스 안내 브로셔는 자세하게 나와있다. 걸 보면서 내일 갈 길을 연구해야겠다.


상점가의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는다. 이스크림 먹을 때의 법칙으로 과일 샤베트 스타일의 새콤한 아이스크림과 커피나 초코맛처럼 우유가 들어가는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섞어먹지 않는다.


동네를 돌아다녀보니 아이스크림 가게만 세 개 있고 피자집이 하나 있는데 딱히 피자나 파스타가 먹고 싶진 않다. 재미있는 것은 우유 자판기. 집에서 우유병을 가져오거나 우유병 자판기에서 우유병을 산 다음에 우유 자판기에 돈을 넣고 신선한 우유를 받아간다.


괜히 별거 없는 세브니차 역도 구경하고... 여기도 오래된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역 앞 광장에는 흉상이 하나 있는데 대충 보니 사바강에 수력발전 시설들을 세운 사람인 듯하다.


피자집 말고 꽤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이미 알고 있다. 호텔 레스토랑... 슬로베니아 맥주를 한 잔 시키고 스테이크 어쩌고 되어 있는 것도 주문했는데 슈니첼 같은 게 나왔다. 스테이크 먹을 생각이 가득했는데 슈니첼이라니... 그래도 맛있다.


후식으로 카푸치노도 여유 있게 마셔준다.


사바강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 여행이었다. 알프스 쪽과 얼마 안 떨어진 곳이라 할 수 있지만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로 치면 알프스가 강원도라면 여기는 경기도의 시골 정도의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충분히 경치도 좋고 볼거리도 잔잔하게 있지만 알프스의 풍경에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 그래서, 이 여행은 크로아티아에서 알프스 방향으로 거꾸로 달리는 게 더 좋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이제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까지 80km 정도 남았다. 내일은 이번 자전거 여행의 종착지인 자그레브에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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