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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Dec 16. 2019

존의 알프스 자전거 여행 16 - 자그레브 도착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이번 여행의 종착지

2019년 9월 15일


알프스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도착점인 자그레브까지 70km 남았다. 제 하루 남은 자전거 여행이지만 별 생각이 없다. 여행에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고 하나하나에 감동하기에는 너무 많이 나돌아 다닌 듯하다.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날씨 확인이다. 안개가 잔뜩 낀 찌뿌둥한 하늘이지만 일기 예보에 비 소식은 없다.


날씨를 확인했다면 적당히 씻고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3성 호텔답게 종류가 많지 않고 평범하면서도 정갈한 차림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대충 다 있다. 우유, 치즈, 버터와 햄 종류가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기에 즐거운 것 같다.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나오니 안개도 걷히고 있다. 맑은 하늘이 보이니 기분이 좋다.


호텔의 관광 안내 브로셔 중에 정말 유용한 것을 발견했다. 이 근처의 자전거 코스를 자세하게 소개해놓은 지도다.


사바강을 중심으로 훑어본다. 이 코스대로 가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한 번 봐 두는 게 좋다.


뒷면에는 각 코스별 설명과 고도표가 나와있다. 사바강을 따라가는 코스는 거의 평지라는데 만족한다.


체크아웃하고 출발한다. 세브니차를 빠져나가는 길에서 언덕 위로 세브니차 성이 보인다. 이 마을처럼 딱히 대단하거나 멋지게 생기지 않은 성이다.


마을에서 나가자마자 신호에 걸렸다. 화물을 잔뜩 실은 열차가 한참 지나간다.


도로보다는 강변길!이라고 강변을 따라가다가 비포장길이 나타나서 되돌아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종종 나타나는 수력 발전소는 우리나라 사대강이 떠오르게 한다.


자전거길이 많다. 자전거 표시가 있는 쪽이 옳은 길이겠지...


자전거와 보행자들만 다닐 수 있게 해 놓은 터널도 있다. 호기심이 생기지만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전혀 아니니 가보진 않는다. 도를 보면 그리 긴 터널은 아닌 것 같다.


사바강과 기찻길을 따라 가는데 기찻길 건너깨끗하고 한적한 길이 생겼다. 나도 저기로 가고 싶은데... 기찻길을 건널 방법이 없다.


크르슈코(Krsko)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차도는 사바강에서 점점 멀어진다. 만나는 로터리에서 우회전하니 기찻길을 건너서... 사바강까지 건너게 될 것 같다.


강을 건너지 않고 그대로 강을 따라가고 싶으니 어느 소방서 앞 보행로 계단으로 내려간다.


무슨 행사가 있는지 소방서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고가 사다리차를 타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여기서부터 강을 따라가는 길에 자전거길이 분리되어 있다.


낡은 공장 지대를 지나서 그대로 가니 원자력 발전소가 보인다. 여기서 그냥 원자력 발전소 쪽으로 갔어야 했다...


자전거길 표시를 따라서 강을 건너간다. 강 건너면  자전거길은 강에서 멀어지긴 하지만 들판 사이의 농로로 계속 잘 이어진다.


브레게(Brege)라는 마을까지 자전거길로 잘 왔다.


계속 한적한 찻길을 따라 작은 마을들을 지나간다.


별 어려움 없이 마을들을 계속 지나면서 지도도 확인 안 하고 그냥 흘러가듯이 달렸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차도는 점점 좁아지더니 차선도 없어지고 비포장같이 변했다.


잠시 멈췄더니 안내판이 보인다. 핏 보니 쓰인 말은 모르겠지만 사진을 보아하니 강을 건너는 배가 있나 보다. 아래쪽에 자세하게 4개 국어로 설명이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는 관광 안내판이 독일어 투성이인 오스트리아보다 나은 것 같다.  댐으로 뱃길이 막혀버린 슬로베니아 사바강에서 마지막 남은 나룻배라고 한다. 그리고, 건너가면 레스토랑도 있다고 하고... 배 운행 시간도 조금 쉬면서 기다릴 법한 12시다. 한 번 가볼까?


자갈밭 오솔길로 자전거를 끌고 선착장에 갔더니 변경된 시간표가 붙어있다. 오후 1시... 여기서 한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다.


배는 건너편에 정박해 있고 뱃사공도 아무도 안 보인다. 노인 관광객 한 팀이 잠깐 왔다가 시간표를 보고 그냥 가버린다. 실 저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건너와도 딱히 할만한 건 없어 보인다. 나룻배가 없어지지 않은 게 용하다.


선착장의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쉰다. 느긋하게 흐르는 사바강, 느긋하게 앉아서 강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실 차분해할 때가 아니다. 도를 보니 여기서부터 길이 없다.


되돌아 나갔어야 했다. 자전거길이라고 되어 있는 길은 비포장 풀밭 길인데 이마저도 반대편 길로 제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이 길은 곧 끊겨서 차가 다닌 흔적만 있는 풀밭이 나타난다. 로드바이크를 타고 풀밭을 달려서 없는 길을 헤쳐 나왔더니 개조심 마크가 있는 집 마당에서 개들이 마구 짖는다. 어쨌든 다시 도로를 보니 날 보고 짖는 개들도 반갑다. 여기가 원래 갔어야 하는 길인데 무작정 달리다 보니 들판을 가로지르게 되었다.


이제 고속도로 옆으로 작은 길을 따라간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드디어 크로아티아로 넘어가는 관문인 오브레제(Obrezje) 마을에 도착했다. 심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 적당한 식당이 없다. 마을 자체가 가게도 안 보이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이정표는 다 오른쪽으로 가라고 되어 있는데... 지도를 보니 크로아티아로 이어지는 길이 있어 보여 좌회전을 했다. 역시 국경이라 그런지 길은 울타리로 막혀 있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인형 같은 여자아이에게 물어보니 영어를 할 줄 안다. 저 울타리는 주민증이 있어야 갈 수 있다고 한다. 이쁘고 귀여운데 영어도 잘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네, 땡큐!


친절한 아가씨가 알려준 대로 다시 삼거리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니 국경 검문소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로베니아와 같이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 독립한 나라로 럽 연합의 회원국이지만 유로를 쓰지 않고 쿠나(Kuna)라는 자국 화폐를 쓴다. 유럽 연합의 회원국인데... 검문한다면서 내 여권을 가져가서 30분이나 걸려서 돌려준다. 너무 오래 걸리는 듯해서 물어보니 기다리라고만 한다.


어쨌든 검문소를 통과해서 크로아티아 입성이다.


오오! 크로아티아! 오오! 자그레브! 길바닥은 슬로베니아보다 거지 같고, 갓길도 우회길도 없는데 차들은 내 옆으로 미친 듯이 쌩쌩 달린다. 명히 자그레브로 가는 주요 길목 중에 하나인 듯한데 도로가 이 모양이라니...


좀 큰 마을에 들어오면 자전거길이 있는데 마을을 벗어나면 싹 사라지고 끔찍한 누더기 길을 차와 함께 달려야 한다.


지쳤다. 밥이나 먹어야겠다. 마침 사람들이 모인 식당이 있어서 들러본다.


아... 테라스 쪽은 좋은 날씨에 밴드가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도 많은데 자리가 없다고 한다. 실내에 들어왔더니 어둡고 우중충하다. 그래도, 이 식당이 근처에서는 알아주는 맛집인가 보다.  


샐러드와 고기 모둠을 주문했다. 스니아식 음식점이라고 한다. 엄청 맛있는 것은 아니고 좀 짜지만 먹을만했다.


음식점에서 나오자마자 자그레브 경계로 들어간다. 드디어 자그레브인가!


예약해놓은 숙소는 자그레브 남쪽에 있다. 마을길을 달리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조금씩 남쪽으로 내려간다.


남쪽으로 가다 보면 큰 도로를 만나는데 도로 자체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만큼 인도와 자전거길이 잘 되어 있다. 자전거길을 따라서 마지막 남은 체력으로 달린다.


그리고 드디어 숙소 앞에 도착... 겉보기에는 슬로베니아 게스트하우스보다 조금 좋아 보이는 낡은 호텔이다. 어째 엄청 싸더라니...


이 호텔을 예약한 가장 큰 이유는 박스를 구해달라고 부탁해놓은 자전거 가게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이기 때문이다. 크인하러 들어가니 자전거 모양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는 방에 두라고 한다. 자전거를 두어도 넉넉하게 방이 넓다. 낡긴 했지만 화장실도 리모델링한 지 오래되지 않은 듯하고 나 혼자 편안하게 며칠 묵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자전거 여행이 끝났느니 자전거에서 안장 가방을 떼어낸다. 자전거 안장 가방을 매달았던 줄이 늘어져서 타이어와 마찰하면서 다 망가졌다. 끊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아직 날이 밝으니 나가서 슬슬 돌아다니다가 저녁도 해결하고 와야 한다. 큰길을 건너면 자그레브의 중심에 Sveučilišna livada 공원이 있고 북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자그레브 중앙역이라 할 수 있는 Glavni Kolodvor 기차역이 있다. 기차역 지하상가에 깨끗하고 다양한 가게들이 있다.


지하상가를 따라 역을 건너왔다. Glavni Kolodvor 역의 건물이 보이고 트램과 택시와 차들로 혼잡하다. 이 역에도 오래된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아무래도 큰 역인 만큼 좀 좋은 차량을 전시했다.


역 앞에는 King Tomislav 광장이 있고 그 뒤로 계속 공원이 이어진다. 역을 중심으로 자그레브의 한가운데에 남북으로 길게 공원이 이어지는 구조다.


이제 저녁을 먹어야지... 좀 좋아 보이는 건물에 깔끔해 보이는 레스토랑 테라스에  앉았다. 어... 음... 정장을 입은 웨이터가 유창한 영어로 메뉴판을 들고 와서 안내한다. 말끝마다 써(sir)! 를 붙이는데 부담스럽다. 별생각 없이 앉은 테라스가 5성 호텔 레스토랑이네... 어째 좋아 보이더라니...

문제는 메뉴판에 가격이 적혀있지 않다는 것이지만 까짓 거 혼자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맥주 한 잔과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맥주와 부터 빠르게 나오고... 맥주는 조금 더 쌉싸름한 맛이 강하다.


빵은 평범하게 맛있다.  오른쪽 덩어리는 빵에 발라먹는 치즈 같은 것이다.


애피타이저로 치즈가 나왔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이라 그런가? 스테이크랑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뭐가 계속 나온다.  


샐러드도 먹을만하다. 그리고, 대망의 스테이크도 잡부위 없이 무난하게 부드럽고 맛있다. 뭘 갖다 줄 때마다, 뭔 주문할 때마다 정중하게 써! 써! 하니 부담스럽긴 하다.


알프스 자전거 여행을 큰 문제없이 끝낸 것을 자축하는 저녁 만찬인데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가격을 모르니 얼마나 나올지 궁금했는데 계산서를 받아보니 56유로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단 싸군.


저녁 식사를 끝내니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고급 5성 호텔과 좀 비교되긴 하지만 그래도 저렴한 내 숙소로 돌아온다.


이렇게 알프스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종점인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자그레브가 마지막 종착지인 이유는 그냥 직항 항공권 프로모션으로 자그레브 항공권을 조금 저렴하게 구입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스트리아 빈이나 이탈리아 쪽의 직항이 있는 노선으로 갔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쪽의 알프스 풍경이 대단했던 반면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쪽은 율리안 알프스와 블레드 호수를 벗어난 순간부터 조금 심심한 코스였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이 글을 보고 알프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코스를 반대 방향으로 달리거나 율리안 알프스에서 블레드 호수를 지나  이탈리아 쪽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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