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존과 지니 Dec 23. 2019

존의 알프스 자전거 여행 17 - 여행 끝, 자그레브

자그레브에서 돌아올 준비

2019년 9월 16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도착한 날부터 비행기를 타는 날까지 2박 3일을 머문다. 어제는 도착했으니 쉬고 월요일인 오늘은 자전거 박스 포장을 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일요일에는 자전거 가게든 어디든 쉬는 곳이 많으니 자전거 포장은 주중에 해결할 수 있도록 여행을 계획해야 한다. 그리고, 내일 오후에 비행기를 탄다.


자전거 포장 문제가 어찌 될지 모르니 자전거 여행의 마무리는 항상 여유 있게 해야 한다. 약에 일요일에 비행기를 탄다면 토요일에는 오전에만 문 여는 곳이 많으니 금요일에는 자전거 포장을 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이번 숙소는 시내 치고는 저렴한 가격에도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숙소가 워낙 낡아서 별 기대하지 않고 내려갔더니 기본적인 것은 갖추어놓았다.


늘 먹던 대로 먹는다. 뭉글뭉글한 치즈 같은 건 입에 잘 안 맞고 커피는 정말 맛이 없다. 오믈렛이나 간단한 계란 요리를 해준다기에 계란 후라이를 주문했다. 계란후라이가 있으니 나름대로 훌륭한 아침식사다.


아침 먹고 잠시 쉬다가 시내 구경하러 나간다. 어제는 역 앞까지만 갔는데 오늘은 반 옐라치치 광장까지 가볼 거다.


시내 중심까지는 걸어가기엔 조금 거리가 있으니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짐을 모두 떼어낸 자전거는 날아갈 듯이 가볍다. 중앙 역을 넘어서 북으로 가는 길이 계속 공원이라 좋다.


자그레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반 옐라치치(Ban Josip Jelačić) 광장에 도착했다. 른 유럽 대도시의 유명한 광장들처럼 넓고 여유 있는 광장을 생각하고 왔더니... 생각보다 작은 데다가 무슨 행사가 있는지 천막과 부스 작업으로 난리다. 작업하는 곳을 피해서 옐라치치의 동상 앞에 갔다. 옐라치치는 크로아티아 역사에 매우 중요한 장군이자 정치인이라고 한다. 이 동상은 공산주의가 들어오면서 치워졌다가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국처럼 녹여 없애버리지는 않았나 보다.


옐라치치 광장에서 오른쪽 뒤로 돌아 언덕을 올라가면 자그레브 대성당이 있다. 유럽의 다른 대성당들과 비슷하게 한쪽 첨탑이 보수 공사 중이다.


이 대성당 앞에서 이번 여행의 인증샷을 찍고 싶은데... 근처에서 혼자 소심하게 셀카질을 하고 있는 동양인 아가씨가 있어서 중국인인가 하고 가서 영어로 물어보니 후다닥 도망간다. 알고 보니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 중 한 명이었데 그렇게 당황해서 도망갈 것까지야... 국 사진은 안 찍어줬다.


혼자서 분수대에 걸쳐놓고 자전거 사진도 찍어보고... 이래저래 찍어보는데 영 흥이 안 난다.


서양인들은 사진을 잘 못 찍는 사람들이 많다.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했더니 이렇게 찍어놨다. 에잉...


귀찮아졌다. 그냥 혼자 셀카 찍는다. 이렇게 이번 여행 마무리 인증샷을 찍었다.


여기도 언덕에서 내려가는 길에 도시 모형이 있다. 가운데에 공원이 쭉 늘어서 있고 그 끝에서 한 블록 가면 옐라치치 광장이다.

옐라치치 광장 서쪽에 갔더니 시장이 거의 철수 중이다. 물건을 사지 않으면 사진도 못 찍게 한다. 꽃을 주로 파는 시장인데 나는 꽃을 사도 줄 사람이 지금 옆에 없다.


우리나라에 잘 안 들어오는 청바지를 저렴하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청바지 매장에 들어가 보았더니 우리나라에서 파는 가격보다 비싸다. 어휴...


이제 슬슬 자전거를 포장할 시간이다. 미리 이메일로 자전거 박스를 구해달라고 부탁해놓은 자전거 매장에 갔더니 아직 문을 안 열었다. 유럽 사람들을 보면 보통 문 여는 시간에서 30분은 늦게 여는 게 일반적이다.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자전거 가게를 찾아갔다.


자전거 가게 주인에게 박스를 받았고 고맙다고 했다. 좀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는데 그게 다였다. 이 동네 남자들은 어째 하나같이 좀 소심하고 첨 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자전거 박스를 들고 돌아왔다. 꽤 큰 박스다. 자전거 가게 주인장 나름대로 신경 써서 어지간한 자전거는 넣을 수 있을만한 짱짱한 박스를 챙겨둔 것 같다. 고맙다.


자전거 박스를 받았다면 이제 완충재를 구해야 한다. 자전거 가게에서 박스를 구할 때 완충재를 챙겨주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박스만 받았다. 주변의 슈퍼, 선물가게, 잡화점 모두 닥치는 대로 뒤져봤는데 내가 찾는 것은 없다. 지니님과 메시지로 대화하니 우체국으로 가보라고 한다. 그래! 우체국이면 박스 포장용 완충재를 팔만 하지!

그리고, 정말 우체국(Posta)에서 팔고 있었다. 버스 터미널 쪽의 우체국이 가까워서 들렀더니 팔긴 하는데 재고가 얼마 없다고 한다. 더 필요하다면 중앙역 근처에 중앙 우체국이 있으니 그리로 가라고 한다.


철길 옆으로 걸어서 중앙 우체국에 도착했다.


완충재 비닐을 팔긴 하는데... 여긴 카드 결제가 안되고 쿠나만 받는다고 한다. 우체국 내부에서 환전이 가능하니 유로 일부를 환전해서 완충재를 충분히 구매했다.


완충 비닐들이 부피가 꽤 되니 숙소에 가져다 놓는다. 자전거를 안전하게 포장할 완충 비닐들이 줄지어 있으니 뿌듯하다. 좀 힘들게 구하긴 했지만 구했으니 다행이다.


지금 자전거 포장을 하면 자전거를 쓸 수 없으니 포장은 내일 하기로 하고 자전거를 타고 시내 구경을 나간다. 공원에서는 햄버거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빵은 먹기 싫다.


반 옐라치치 광장은 오늘도 뭔가 부산하다.


타요 버스를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전차가 지나가는데... 기괴하게 생겼다. 이런 서양식 센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 전차도 있는데 자전거가 있으니 탈 수는 없고...


이 동네가 옥수수 노점상이 유명하다고 해서 하나 사 먹어봤다. 반 옐라치치 광장을 기준으로 거리가 멀어질수록 싸다. 삶은 옥수수를 하나 사서 근처 벤치에 앉아서 먹는데 옆에 노인 부부가 앉는다. 우리나라 찰옥수수와 조금 다른, 잘 뭉개지는 옥수수라 깔끔하게 먹기가 쉽지 않지만 맛은 있다. 열심히 먹어치웠더니 옆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잘 먹는다고 좋아한다.


날이 슬슬 어두워지니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서 이것저것 사다가 저녁은 적당히 때웠다. 이제 내일 자전거를 포장해서 집에 가야 한다. 호텔 프런트에 콜밴이나 박스를 실을만한 택시를 물어보니 호텔 주인아주머니가 저렴한 요금으로 자기 차로 옮겨주겠다고 한다. 아! 엄청 고맙다. 스위스에서부터 여기까지 여행을 하면서 계속 느끼는 것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게 잘 도와주는데 남자들은 엄청 무뚝뚝하고 낯가림이 심하다는 것이다.





2019년 9월 17일


오늘도 똑같은 아침 식사를 먹는다. 똑같으니 먹는 요령이 좀 생기긴 했다.


자전거를 포장해서 1층 로비 앞에 내려놓고 체크아웃하면서 자전거 운반 이야기를 하니 마침 호텔 주인아주머니가 들어온다.  


주인아주머니의 차에 자전거를 실었다. 자그레브 공항까지는 차로 30분이 안 걸리는 거리인데 택시를 부르면 엄청 비싸게 부르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만 받고 운반해준다고 한다. 마운 마음에 늘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면 어제 바꿔둔 크로아티아 화폐인 쿠나는 쓸 일이 없으니 운반료로 남은 동전 하나까지 그냥 싹 털어줬다. 그래 봐야 몇 푼 안 되지만...


주인아주머니 덕분에 공항에 아주 편하게 도착했다. 그레브 공항은 카트 사용이 무료다.


공항에서 체크인하고 대형 수하물 보내는 곳에 가서 짐 부치는 것까지 별 다를 게 없으니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람이 많지 않은 평일 오전 시간대라 그런지 출국 수속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넉넉하게 일찍 왔으니 공항에서 마지막 여흥을 즐기자. 게이트 근처의 바에 앉아서 간단하게 배를 채울 겸 맥주와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가 생각보다 비싸네?


라고 생각했더니 풀 사이즈 피자다. 그래도 맛있으니 다 먹었다. 분에 배가 불러서 맛없는 기내식을 거의 안 먹게 되었다.


면세점에 들러서 선물도 좀 산다. 크로아티아산 초콜릿들이다. 념품이나 선물을 살 때는 항상 원산지를 확인한다. 옆에 친절한 직원이 있어 이것저것 물어보고 선물을 고르니 장바구니 담을 때마다 자기 스티커를 하나씩 붙인다. 인센티브나 매출 평가 용인가보다.


맥주까지 마셨으니 비행기 안에서 잘 잤다. 어차피 기내 영화도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직항으로 다니니 이렇게 편하구나. 인천 공항에서 자전거를 찾아서 옆의 한적한 공간에서 조립한다. 자전거도 이상 무.


평일에 자전거를 가지고 인천 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방법이 애매하다. 공항전철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 공항전철로 서울 시내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미리 문의하면 확인증을 발급해주는데 다른 전철로 환승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공덕에서 오랜만에 들른 순댓국집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자전거로 한강을 따라 집에 돌아간다. 선물로 산 쵸코렛들이 걸리적거린다. 이래서 외국 나갔다가 돌아올 때 선물을 많이 못 산다..


알프스 자전거 여행에 끝났다. 지니님이 함께 하지 못해서 여행 내내 아쉬웠지만 께 갔다면 많이 힘들었을 듯하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1100km 정도를 달렸지만 언덕들이 기본 1000m에 1700m, 2500m까지 올라가야 하므로 훨씬 힘이 들었다. 알프스의 경치는 작년에 다녀온 그랜드캐년과 비견될 정도로 감탄사가 절로 나오니 다른 코스로 다시 달려보고 싶다. 다음번에는 MTB로 가야지...


이번 여행의 아쉬운 점은 용두사미 코스라는 것이다.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가 알프스 산 속보다 좋을리는 없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부터 크로아티아 자그레브까지는 상대적으로 재미없는 코스였기에 알프스의 절경에 잔뜩 올라있던 기분이 다운되어버렸다. 반대로 자그레브에서 출발해서 블레드 호수에서 경치를 한 번 즐기고 오스트리아로 넘어가서 스위스로 갔다면 훨씬 멋진 코스가 되지 않았을까?


이번에는 알프스라는 특성 상 여러 변수를 고려해서 며칠 더 길게 다녀왔다. 이렇게 길게 휴가를 내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베니스나 밀라노, 비엔나나 뮌헨을 출발지 혹은 도착지로 하면 좀더 짧게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에도 새로운 자전거 여행을 가기 위해서 계획 중이다. 지금까지 다녀온 곳들 만큼이나 대단한 곳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러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존의 알프스 자전거 여행 16 - 자그레브 도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