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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Nov 16. 2020

성인봉 -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곳

울릉도 여행 3일 차

2020년 10월 1일


어제 독도를 다녀왔으니 이제 울릉도를 둘러볼 차례다. 오늘은 나리분지에서 식사를 한 후에 성인봉에 올라갔다가 저동 쪽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나리분지에 가려면 천부에 가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울릉도의 버스 노선은 꽤 합리적이고 직관적으로 되어 있다. 도동에서 출발해서 섬을 시계방향으로 도는 1번,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2번, 그리고 반대편인 천부에서 출발하는 11번과 22번 일주 노선이 기본이고 여기에서 각각 섬 안쪽으로 가는 짧은 버스 노선들이 있다. 낙 버스 노선이 잘 되어 있고 대부분의 관광지에 정차하기 때문에 차량 렌트를 안 해도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다.


도동에서 출발해서 저동을 지나 천부 방향으로 가는 일주 노선의 버스를 타기 위해 저동 약국 건너편 정류장에서 기다린다. 직 버스 시간이 좀 남아서 바로 아래 저동항을 구경한다. 오늘도 저동항은 오징어배가 들어와서 분주하다.


날씨는 맑은 편인데 구름이 많다. 높은 산 쪽은 구름에 싸여 있다. 버스 시간이 되었으니 정류장 근처에서 서성거리다가 버스를 탄다. 도동에서 출발한 버스인데 사람들이 엄청 많이 타고 있다.


2번 일주 노선 버스는 구불거리는 해안도로를 달반시계 방향으로 울릉도를 한 바퀴 도는 버스다. 두 개의 긴 터널인 내수전 터널과 와달리 터널을  지나 관음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리는 오늘 나리분지와 성인봉만 가는 것도 빠듯하다.


관음도에서 출발하면 세선녀 바위가 보인다.


버스는 바위틈을 지나기도 하고 이번 태풍에 무너져서 공사하는 구간을 지나기도 하면서 달린다. 그냥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부 해중전망대를 지나면 천부항에 도착이다.


우리가 타고 온 2번 버스는 천부에서 잠시 쉬어간다. 도동에서 15km도 안 달려왔기 때문에 기사님이 힘든 것은 아니고 버스 시간을 어느 정도 맞추는 목적인 듯하다. 널이 뚫려 섬 일주도로가 완성되기 전에는 천부가 버스 종착지였기 때문인지 지금도 버스노선은 도동과 천부가 중심이 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나리분지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아직 버스 시간이 남았으니 천부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나리분지 방향으로 구름이 잔뜩 끼었다...


천부항을 둘러본다. 천부가 방파제가 잘 되어있어 스노클링하기 좋다고 한다.


원래 울릉도의 끝마을이었던 천부항 정말 작고 조용하다. 이런저런 그림이 그려진 천부항 방파제 근처에 천부 마을의 유래가 적혀있다. 주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끝 마을이었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개척민들이 당도한 첫 마을이넜다고 한다.


천부에서 나리분지 가는 버스를 탄다. 섬 일주 노선에 비해 승객이 적으니 이런 지선 버스들은 작다. 정시 출발에 운행 시간이 팍팍하지 않아서 그런지 버스 기사님들이 다들 여유롭다.


천부에서 나리분지 가는 길은 꼬불꼬불한 급경사길이다. 이 길에 익숙한 버스 기사님 덕에 험한 길을 순식간에 올라간다.


나리 전망대를 넘어가면 나리분지가 보인다.


나리분지에 도착했다. 버스는 우리를 내려주고 다음 운행시간까지 쉰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평지인 곳이라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만, 화산암 지대라 물 빠짐이 좋아서 논농사는 하지 못하고 밭농사를 주로 한다고 한다. 무리 쌀이 안 난다고 해도 식당 공기밥이 2천 원인 것은 좀 너무한다.


여기 나리분지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몇 년 전에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울릉도 나리분지를 2회 연속으로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주인공이 하는 식당이다.


이 주변에서 나는 나물들로 만든 산채비빔밥이다. 기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내 입맛에도 그리 나쁘지 않다. 나물을 좋아하는 지니님 맘에 드는가 보다.


나리분지에는 예전의 생활양식인 투막집이 있다. 겨울이 오고 이 일대가 몽땅 눈으로 뒤덮여도 생활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집이다.


지붕이 너와로 된 집과 억새로 된 집이 있는데 나리분지에서는 두 형태 모두 볼 수 있다.

너와 투막집의 창고에는 지붕 보수를 위해 만든 너와들이 쌓여있다.


마을 아래로 내려가면 나리분지 관광지가 있다. 나리분지에 대한 지질학적 정보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추산항까지 이어지는 추산-나리 탐방로가 있는데 우리는 반대편인 성인봉으로 갈 것이다.


다시 돌아 나와서 안내판을 따라 성인봉 방향으로 간다.

나리분지에는 길이 크게 4개 있다. 버스를 타고 천부마을에서 내려온 길과 추산항으로 이어지는 나리 탐방로, 나리 분지 안에서 다시 화산 활동으로 융기한 알봉의 둘레를 걷는 알봉 둘레길, 그리고 우리가 갈 성인봉 등산로다.


여기 나리분지에는 군부대가 있다. 등산로 안내판이 군부대 쪽으로 되어 있는데 군부대 앞에서 서성거리지 말고 군부대 울타리를 옆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로 들어가면 된다.


이제 나리분지 숲길을 걷는다. 다니는 사람이 얼마 없어 조용한 산길을 천천히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깨끗한 비포장길을 슬슬 걷는다.


오래된 숲의 향기가 진하다. 나무 밑동에는 이끼와 버섯들이 소박하게 피어있다.


표지판이 하나 나타났다. 울릉국화와 섬백리향 군락이 있다고 한다.


울릉국화가 이쁘게 피어있다. 울릉국화는 딱 지금이 개화 시기인데 섬백리향은 분홍 꽃이 6월에 피니 지금은 꽃을 볼 수 없다.


울릉국화는 나무 그늘이 없이 해가 잘 드는 곳에 사니 시야가 확 트인다. 울릉국화들 뒤로 미륵산이 보인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숲이 잠시 끝나는 억새밭이 보인다.


이 억새로 지붕을 한 억새 투막집이 여기에도 있다.


이 억새 투막집 앞에서 성인봉 등산로와 알봉 둘레길이 갈라진다. 알봉 둘레길은 나중에 추산나리 탐방로와 합쳐진다. 우리는 성인봉으로 간다.


나리분지를 둘러싼 산들이 여기서 잘 보인다.


갈림길에서 500m 정도만 가면 신령수 약수터가 있다. 나는 이런 약수터에 오면 물맛을 한 번씩 보고 간다. 깔끔한 물이다.


성인봉까지 2km가 조금 넘는다고 나오는데... 해발 1000m 가까이 되는 산봉우리에 올라가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나리분지에서 1.6km를 걸어왔지만 사실상 여기가 출발점이나 마찬가지다.


여기부터 성인봉 원시림이 시작되나 보다. 극성맞고 시끄러운 산악회들이 온 나라 산을 들쑤시고 있지만 울릉도만큼은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여기는 조용하다.


시작부터 계단이다. 이미 각오한 상황이다. 2km의 거리 동안 해발 1000m 높이로 올라간다면 계단 투성이일 것이다.


태기산 정상에서 만났던 양치식물들이 여기는 훨씬 더 밀도 높게 산을 덮고 있다.


올려다봐도 계단, 지나온 길을 내려다봐도 계단이다.


길 옆에 쓰러진 고사목에서 작은 숲을 발견했다.


성인봉 원시림을 그대로 축소해놓은 것 같은 또 다른 작은 세계 같다.


낑낑거리며 한참을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나리분지와 알봉이 보인다.  알봉 바로 아래 아까 지나갔던 투막집 삼거리도 보인다.


많이 올라왔나 보다. 이제 성인봉까지 1km 남았다. 이제 능선에 올라왔는지 경사가 조금 완만해진다.


나무들의 심재 부분은 죽은 세포들로 이루어진다. 오래된 나무들의 심재들은 분해되어 속이 비게 되는데 성인봉 올라가는 길에 이런 속 빈 나무들이 여럿 있다.


죽은 나무가 있면 버섯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 원시림에서는 다양한 버섯들을 볼 수 있다.


날이 조금 맑아지나 했는데 갑자기 구름들이 산을 넘어 몰려온다. 힘들어도 날씨가 맑아야 즐거운데...


성인봉 300m를 남겨두고 다시 계단이 잔뜩 나온다. 이게 마지막 계단길이길...


갑자기 몰려든 구름으로 근처는 온통 안개로 뒤덮인다.


성인봉 0.02km 표지판이 보이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바위 위로 올라가면 성인봉 정상석이 나타난다.


성인봉 정상은 그리 넓지 않은데 시끄러운 남자 둘이 계속 떠들면서 죽치고 서성댄다. 정상석 사진도 조금 옆으로 갔을 때 얼른 찍었다. 구름에 가려 경치도 잘 안 보이니 얼른 내려가야겠다.


내려가려던 찰나에 바다 쪽으로 구름이 살짝 없어진다. 내수전 쪽이 보이는 듯한데 생각했던 만큼 경치가 잘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대원사, 중계소 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지금까지 왔던 것만큼 가야 할 것 같다.


이슬을 잔뜩 머금은 이끼가 나무를 덮고 있다. 여기도 여전히 사람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원시림의 한가운데라는 게 느껴진다.


중간에 갈림길이 가끔 나오지만 길 찾기가 어렵지는 않다. 일단은 꾸준하게 도동 쪽으로 가면 된다.


중간 정자에서 잠시 쉰다. 상당한 강행군으로 지니님이 많이 지쳤다.


저 밑에 저동이 보이는데 표지판은 자꾸 도동으로 표시되어 있다.


도동까지 2.8km, 들어가면 안 되는 등산로는 금지 안내판이 잘 보이게 설치되어 있다.


중간에 빨간 다리도 있다. 다른 사람들 하산하는 오후 시간에 거대한 등짐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은 다 백패킹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도 백패커를 만난다. 요즘 나가서 텐트 치고 자는 게 전국적으로 유행이다 보니 등산할 때는 거의 반드시 백패킹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다.  


계속 도동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봉래폭포 방향의 표지판을 만난다. 조금 고민하다가 저동에서 가까운 봉래폭포 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봉래폭포 쪽으로는 사람이 많이 안 다니는지 길이 안 좋다.


저동은 안 보이지만 대저바위가 보이는 걸 보니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정표는 있으니 계속 가본다.


여기저기 나무들에 호스를 끼워놓은 고로쇠 수액 채취장이 나오면 거의 다 내려온 것이다.


봉래폭포 아래쪽으로 나왔다. 아직 숙소까지 좀 더 가야 하지만 등산로를 빠져나왔으니 살 것 같다.


드디어 저동 도착. 아주 힘든 하루였다.


오늘 저녁은 오징어 볶음이다. 울릉도가 식사비가 비싸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오징어 요리는 푸짐하게 잘 나온다.


숙소 옥상에서는 저동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오늘은 추석이라 큰 보름달이 떴지만 아침부터 줄곧 흐렸기에 달도 구름에 숨어있다.


추석 명절의 저녁이지만 울릉도 앞바다에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가득하다. 해외에서 비행기를 타고 밤에 귀국할 때 컴컴한 바다를 건너다보면 가장 먼저 반겨주던 것이 이 오징어잡이 배들이었다.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성인봉에 다녀왔다. 추석 전에도 계속 활동을 해서 피로가 쌓이고 있었는데 오늘 등산으로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지니님에게 울릉도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나리마을에서 신령수까지의 숲길이라고 했을 만큼 울릉도 안쪽의 깊은 숲은 아름다웠다.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울릉도의 숲 속이지만 짧은 일정으로 오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독도와 성인봉을 다녀왔으니 제일 중요한 것은 다 달성한 듯하다. 내일부터는 느긋하게 울릉도를 둘러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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