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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Dec 28. 2020

한양도성 성곽길 나들이

개방된 북악산 성곽길

2020년 11월 15일


2020년 11월 1일, 한양 도성길 백악 구간인 북악산 성곽길이 개방되었다. 1968년 북한 간첩들이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내려온 김신조 루트가 68년 만에 일반에 개방 것이다.

자세한 코스 정보는 아래 서울한양도성 사이트에 잘 나와 있다.

http://seoulcitywall.seoul.go.kr/front/kor/sub01/course.do?gubun=A001


북악 스카이웨이를 자전거 타러 가본 적이 종종 있지만 그때마다 길 안쪽의 철조망 구역이 궁금기에 지니님과 함께 걸어보기로 하였다. 이번에 개방된 북악산 성곽길 자체는 2km 남짓이라 이것만 걷기에는 너무 짧으니 3호선 경복궁역에서부터 걷기로 했다.


경복궁역에서 나오면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가 있다. 인 골목 자체는 술집 투성이라 점심 먹으러 가기엔 그리 좋지 않은 곳이다.


성곽길로 가려면 창의문으로 가야 한다. 창의문 방향으로 골목길을 구경하며 슬슬 걸으면서 점심 먹을 곳을 둘러보다가 결국 통인동 근처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유명한 집들은 손님들이 줄 서서 북새통이라 피하고 간단히 점심 먹을 곳이 생각보다 마뜩잖다. 밥 먹는데 몇십 분씩 줄 서서 기다리는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다. 근처 적당한 분식집에서 심을 간단히 먹는데 깔끔하게 맛있다. 님이 하나도 없더니 리가 나갈 때쯤에는 여기도 만석이다.


이제 겸재길이란 이름이 붙은 길을 걷는다. 겸재 정선의 출생지이자 그의 진경산수화들이 탄생한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크게 굽어가는 길인데 길 가운데에 노란 은행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풍성하지 않지만 노란 은행잎이 가을의 끝을 장식하는 듯하다.


여기에는 농학교와 맹학교가 있다. 학교 담장에 점자와 수화로 된 작품들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뒷골목이 막혀 있으니 큰길인 자하문로로 나와서 은행나무길을 걸어간다. 행잎이 잔뜩 떨어져 가을을 밟고 가는 느낌이다.


여기는 사미인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 선생 출생지라고 한다. 한, 이 근처 경복고 안에는 겸재 정선의 출생지가 있다. 인왕산의 풍경을 담은 유명한 국보인 인왕제색도부터 실제 경치를 담은 경 산수화들이 이 부근에서 탄생했기에 진경산수화 길이라 할만하다.


여기서 자하문 터널로 가지 않고 양도성 성곽길로 바로 올라가려면 경기상고 앞에서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바로 올라가는 길보다는 청운공원 쪽으로 돌아가는 길로 가기로 한다. 스팔트가 아닌 거친 콘크리트 길답게 각보다 가파르다.


오르막길의 끝은 청운공원에서 인왕산길과 만난다. 인왕산 숲길은 나중에 걷기로 한다.


창의문로로 건너가기 직전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서울에서 살던 시절의 시인 윤동주는 인왕산에 종종 올랐다고 하는데 이때 그의 대표작들이 탄생했다도 한다. 그래서 버려져 있던 수도 가압장을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온 김에 잠시 들어가서 구경해본다. 문학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젊은 시인이 남긴 것은 얼마 되지 않기에 전시물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감성 가득한 대표작 몇 점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만으로도 들러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생체 실험의 희생자가 된 젊은 시인의 죽음을 애도하게 되는 곳, 다양한 곳을 여행하다 보면 역사를 되새김할 수밖에 없고 특히 국내 여행은 한국의 슬픈 근현대사를 만나는 통로가 된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길을 건너면 북악산 도성 구간이 출입 금지된 원인인 남파 간첩들과 격전을 벌이다 순직한 경찰관들을 기리는 동상이 있고 그 위로 걸어가면 창의문이 나타난다.


창의문 앞에서 인왕산로는 북악산로로 바뀌고 서울의 자전거 동호인들이 자주 다니는 북악 하늘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오늘은 한양도성길을 걸으러 왔으니 성곽길 입구를 찾아간다. 창의문에서 성곽길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데 우리는 다른 출입구로 들어간다. 암동에서 백석동길을 따라 순 카페라는 곳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한양도성길 가는 길이라 표시된 굴다리가 나온다.


들어가면 바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만들어진 등산로라 그리 어렵지 않다.


조금 걷다 보면 출입 관리소가 있다. 신분증은 필요 없이 출입할 때 표찰을 지참하도록 한다. 태그를 받아서 단말기에 찍고 들어가면 된다.


계단을 올라가서 군견 훈련장 터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한양 성곽이 나타난다.


일단 성곽을 따라 좀 더 올라가 본다. 그리 길지 않은 곳이라 성곽을 따라 바로 내려가면 아깝다.


북악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한양 성곽이다.


북쪽으로는 북한산 줄기 아래 세검정 쪽이 보인다. 서울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사대문 바로 근처에 있지만 서울에 살아도 어지간해서는 가볼 일 없는 서울의 가장 깊은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계단으로 성벽을 넘으면 청운대다. 삼청동 쪽으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지만 오늘은 미세먼지가 있어 뿌옇게 보인다.


이제 성벽 안쪽으로 슬슬 걸어간다. 하늘은 뿌옇지만 성벽을 따라 걷는 숲길은 나쁘지 않다.


곡장을 지나 계속 성벽을 따라 걸어간다. 성벽을 따라 는 길이라 어려울 것도 없다.


걷다 보니 숙정문이 나타났다.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인 숙정문은 현재 공사 중이다.


좀 더 걸어가면 말바위 안내소에서 가지고 있던 표찰을 반납하고 나가게 된다. 출입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너무 늦게 와서 출입을 못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말바위에서 표찰을 반납했다고 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성곽을 따라 계속 걸을 수 있다.  


원래 가려던 방향은 와룡 공원 쪽인데 삼청공원 쪽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성곽을 계속 따라가서 와룡 공원으로 가려면 계단으로 성곽을 넘어가야 했는데 그대로 걸어갔다.


어어 이 길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상당히 내려왔기에 삼청공원으로 내려가게 된다.


삼청공원에서 내려오면 북촌이다. 지니님과 예전에 왔었던 기억이 있다.


온 김에 북촌 한옥마을로 내려간다. 옥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라 은근히 인기가 많은 곳이지만 인파가 몰리는 곳을 피해서 한적하게 걷는다.


이렇게 한양도성 성곽길의 북악 구간을 다녀왔다. 방송이나 신문 기사로도 많이 나왔지만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생각만큼 붐비지는 않았다.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도읍이라 그런지 무심코 걷다가 역사와 마주치는 일이 많다. 오늘도 조선의 겸재 정선, 송강 정철, 일제 강점기의 윤동주, 60여 년 전의 남파 간첩의 흔적을 만나게 되었다. 이렇듯 역사와 여행을 뗄 수 없는 사이라 역사를 알면 여행에서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이 의미를 갖게 된다.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외우기만 했던 것들이 현장에서 살아나는 감각은 여행의 묘미 중에 하나다.


나도 여행을 하며 전국을 둘러보러 다니지만 가끔은 정작 내가 사는 서울은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싶다. 한양도성이 개방된 김에 다녀왔지만 경복궁 주변의 청운동, 효자동, 북촌동 등도 한 번쯤은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와룡공원까지 제대로 걸어가서 만해의 심우장에도 들렀다 왔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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