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우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해발 3055mm의 화산인 할레아칼라에서 자전거 다운힐을 한다. 9시까지 파이아의 자전거 투어 업체를 찾아가야 한다.
맞바람에 힘들게 달리면 파이아까지 체력 소모도 크고 시간 맞추기도 힘들 듯해서 키헤이에서 카훌루이로 가는 버스를 시간 맞춰서 탔다.
하와이를 포함한 미국의 시내버스는 자전거를 두 대까지 실을 수 있는 거치대가 달려있지만 숙소가 키헤이의 출구 부분이라 이전 정류장에서 자전거가 한 대라도 실리면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다행히 거치대가 빈 버스가 왔다.
카훌루이에서 파이아(Paia)까지는 맞바람이긴 해도 거의 평지라 탈고갈만했다.
서둘러서 출발하고 버스를 탄 덕분에 투어 출발 시간보다 5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가이드 겸 운전수가 자전거를 차량에 싣고 준비하고 있다.비어있는 두 칸은 우리 자전거를 실을 곳이다.
우리 자전거도 그동안 제대로 정비할 시간이 없었는데 자전거 가게이니 펌프와 체인 오일을 빌려서 긴 다운힐에 앞서 간단히 정비한다.
다른 업체들이 자기 자전거를 가져오는 것은 허가를 안 해줬는데 이 업체에서도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7년 동안 자기 자전거를 가져와서 이용하겠다는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업체에서 이용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다운힐 후에 반드시 사무실에 들렀다 가야 한다고 한다. 원래 내려오면서 반시계 방향으로 마우이 동편을 일주하려 했는데 그냥 숙소가 있는 하이쿠까지 바로 가기로 한다.
원래 계획은 마우이도 완전히 일주를 하려 했지만 계속적인 현지 사정으로 일정이 완전히 변경되었다.
우리 자전거까지 모두 싣고 출발 준비 완료다. 우리 미니벨로는 안 그래도 작은데 29er MTB 들 사이에 있으니 정말 작아 보인다. 우리 자전거가 워낙 가볍다보니 가이드도 지붕에 실으면서 편하다고 좋아한다.
해발 3,055m 할레아칼라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일출 때 가면 사람도 많고 그렇게 춥다는데 우리는 그냥 아침에 올라갔다.
할레아칼라 산 꼭대기에서만 자란다는 특이한 식물인 아히나히나(Haleakala silversword)가 주차장 한 가운데 심어져 있다. SF 영화에 나오는 외계 생물 같은 느낌이다.
바닥의 은색 뭉치가 자라나서 꽃이 피게 되면 커다란 초록색 기둥같은 꽃다발이 솟아 오르고 꽃이 시들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바닥의 하얀흔적들처럼 없어지는 특이한 식물이다. 너무 특이해서 이 식물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시설이 근처에 있다.
꼭대기에서 둘러보니 멀리 카훌루이 시내가 보인다.
근처에는 화산과 일대의 환경 그리고 천문을 연구하는 과학연구센터가 있다.
여기가 정상의 관측소다. 1만 피트, 해발 3000미터의 정상입니다.
어느 정도 어지간한 무거운 구름들은 다 발 밑에 있으니 해발 3천 미터라는 높이를 실감하게 한다.
관측소에서 할레아칼라 분화구도 보인다.
해발 3000m이지만 태평양 한가운데 바다 바닥에서 올라온 산이라 바다 속에 6000m가 잠겨있다고 한다. 융기된 높이 자체를 따지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한다.
할레아칼라 분화구 쪽으로 좀 더 내려가본다.
이 지역은 지구 같지 않은 황량함과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실제로 여기서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 몇몇 SF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얼마 없으니 기념샷도 찍어본다.
정상은 쌀쌀하기 때문에 옷 하나 정도 챙겨가야 한다고 해서 어제 마우이 후드티를 구입해서 챙겨놨는데 낮에 올라가니 바람막이 하나 정도면 되었을 듯하다. 부바 검프 맥주잔에 이은 하와이 기념품 2탄 마우이 후드티다.
이제 정상 구경은 충분히 했으니 자전거 다운힐을 시작할 때가 왔다.
개별적으로 자전거로 업힐 해서 올라온 사람들은 상관없지만 우리는 업체를 통해서 왔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가드레일이 잘 되어있는 조금 아래에서 자전거 다운힐을 시작한다. 그래도 구름 위에서부터 40km 정도를 다운힐 해야 하니 한참을 내려간다.
고도도 높고 바닷바람을 막아줄 것도 없으니 바람이 심하다. 다운힐 도중 거친 측풍에 자전거가 크게 휘청이더니... 지니님은 하이림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자전거 통행자가 많기 때문에 경고판이 계속 있다. 내려가는 길에 목축 시설들이 있는데 얇은 자전거 바퀴는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구조물이 도로 중간중간에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중간에 몇 군데 갈림길이 있는데 차로 올라갈 때 가이드가 무조건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지니님은 한참 자느라 못 들었는데 내가 사진 찍느라 잠깐 멈춘 사이에 길을 잘못 들어서 다른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 두 대 모두 망가트려서 연락할 방법조 없는 우리가 생이별할 뻔한 순간,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많이 내려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침 9시에 출발해서 구경하고 한참을 내려오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운힐만 2시간 이상 한 거다.
슬슬 배가 고프니 바로 근처의 유명한 파이아 피쉬 마켓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름만 시장이고 그냥 해산물 위주로 파는 식당이지만 푸짐하고 맛있다.
생선 버거와 생선 플레이트... 생선 종류가 다른데 생선 이름을 까먹었다. 생선을 영어 이름이 아닌 아히나 마히 같은 하와이 현지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 더욱 헷깔리고 기억하기 힘들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하나로드를 따라 숙소가 있는 헤이쿠(Heiku)로 간다.헤이쿠까지 가는 동안 엄청난 맞바람에 진짜 천국으로 갈 뻔했다.
중간에 경치가 좋은 해안 절벽 전망대인 호오키파 포인트에도 들른다. 어마어마한 바람에 파도가 높으니 서퍼들이 신나게 파도를 탄다. 여기는 파도가 높고 거칠어서 상급 서퍼들이 주로 온다고 한다. 파도를 타는게 아니라 파도가 서퍼들을 하늘로 날려버린다.
헤이쿠의 숙소에 도착했다. 여긴 정말 시골이다.
저녁은 먹어야 하는데 근처에는 식당도 없고 가져온 음식물도 거의 없으니 자전거를 타고 '근처'의 슈퍼마켓에 가서 먹을 것을 사오기로 한다. 슈퍼 갔다 온다고 하니 주인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태워줄까? 배낭을 빌려줄까? 하고 물어보는데 괜찮다고 했다. 그 걱정스러운 눈빛의 이유는... 여기서 제일 가까운 슈퍼가 오르막길로 5km 떨어져 있었다. 열심히 오르막길을 올라가서 슈퍼에 들렀더니... 마우이는 환경 보호 차원에서 가게에서 비닐백을 사용하지 않고 종이백에 담아주는데 손잡이가 없어서 간신히 가져온다. 내리막길에서 한 손으로 비닐봉지를 잡고 한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위태위태하게 내려가니 주인아저씨가 왜 배낭 얘기를 했는지 알 것 같다.
날씨가 맑았다면 환상적인 밤하늘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오늘 저녁은 아쉽게도 구름이 많다.
구름이 많으니 일몰은 멋지다.
하와이에는 도마뱀이 정말 많다. 여기도 한 마리가 화장실 유리창 너머에 붙어있다가 불빛을 보고 모이는 벌레들을 잡아먹는다. 도마뱀들이 모기나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주민들도 도마뱀을 싫어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즐길 수 없는 40km의 순수한 내리막을 자전거로 질주하는 기분은 즐겁다. 계속 브레이크를 조절하면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브레이크 패드와 자전거 바퀴의 과열이 걱정될 정도였다.
재미있고 신나는 것과는 별개로 오아후를 일주하면서 다양한 것을 즐겼더니 슬슬 체력이 고갈되어 이제는 자전거를 타면 금방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