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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May 15. 2023

존과 지니의 뉴질랜드 남섬 자전거 여행 14

밀포드 사운드 2 - 밀포드 트랙

2023년 1월 5일 - 밀포드 트랙


밀포드 사운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이다. 여기를 오기 위해서 우리도 렌터카를 빌렸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를 타고 둘러본 후에 그냥 떠나버리는데 교통이 불편한 구석까지 와서 겨우 크루즈만 타는 것은 아깝다. 뉴질랜드는 트래킹의 천국인데 그중에서 최고의 트래킹 코스를 뽑는다면 테 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밀포드 트 코스이다. 밀포드 트랙 코스는 원래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가는데 우리는 충분한 장비도 옷도 없으니 당일치기로 간단히 맛보기만 하기로 한다.


오늘은 보슬비가 계속 내리는 날씨다. 아침 먹고 준비하고 출발한다. 테 아나우는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가장 가까운 관문 마을이지만 여기서도 꼬불거리는 길로 120km를 더 달려야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한다.

밀포드 사운드는 가는 길부터 굉장하다. 뉴질랜드의 가장 깊은 숲 속을 뚫고 산악지대에 도착하면 협곡 사이에 갇힌 수증기는 비가 되어 내리고 절벽을 따라서 수많은 폭포를 만든다.


여러 번 말하지만 여행은 날씨가 중요한데 밀포드 사운드는 비가 자주 오는 곳이다. 날씨가 좋을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비가 오는 그 자체 만으로 장관을 만들어낸다. 아직 밀포드 사운드 근처에도 못 갔는데 이런 경치라니...


이 산은 크리스티나 산이라고 한다. 실오라기 같은 물줄기들이 처음 보는 독특한 경치를 만들어 낸다.


꼬부랑길을 열심히 운전해서 가다 보면 차들이 막히는 구간이 있다. 차 한 대만 갈 수 있는 1차로 터널인 호머 터널이다. 이 호머 터널이 생기기 전까지는 밀포드 사운드는 밀포드 트랙을 걸어서만 갈 수 있는 숨겨진 명소였다.


길고 긴 일차로 터널이라 청신호가 들어오면 출발해서 갈 수 있다. 그래서 차들이 많이 밀린다. 그리고 터널이 길다 보니 밀포드 사운드 방향으로는 내리막임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는 한 신호 안에 터널을 반 정도밖에 갈 수 없어 중간에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을 피해야 한다. 그러니, 자전거는 통행이 힘들다. 이런 사정으로 터널 입구에 안전요원이 있는 경우엔 자전거 통행을 못하게 한다고도 한다. 만약 자전거로 터널을 지나 넘어간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때는 내리막길이던 이 길이 획득고도 900m의 오르막길로 변하기 때문에 더더욱 자전거로는 지나가기 힘든 곳이다. 또한 여기 오는 편도 120km 구간에 보급할 곳도 거의 없으니 우리는 자전거로 오는 것을 포기하고 렌터카를 선택한 것이다.


온통 물이 떨어지는 컴컴한 긴 터널을 지나면 구불구불한 급경사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여기서 케아라는 새들이 터널의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는 음식물을 먹고 산다.


뉴질랜드는 대도시를 제외하면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가 대부분이다. 이런 길에서 앞차가 느리게 가고 추월하기도 힘들면 교통 체증이 발생하는데 이럴 때 앞차가 갓길로 들어가서 뒷 차들에게 통행을 양보한다. 우리 앞에 가던 차도 교통 체증이 생기니 갓길로 피해 준다.


밀포드 사운드는 크게 프래쉬 워터 배이슨(Freshwater basin)과 딥워터 배이슨(Deep water basin)의 두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프래쉬 워터 배이슨에는 크루즈 터미널과 관광시설, 숙박시설 등이 있는데 오늘 목적지는 딥워터 배이슨이다. 딥워터 배이슨 입구에 이 구역의 유일한 무료 주차장이 있어 여기에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크루즈 터미널로 갈 수도 있다. 우리는 일단 차를 주차하고 딥워터 배이슨 안쪽으로 간다.


이런저런 안내판이 잔뜩 붙어있다. 여기는 허가된 배들 외엔 띄울 수 없고 해안 200M 거리부턴 5 노트로 천천히 다녀야 한다.


여기 온 이유는 여기서 수상택시를 타야 밀포드 사운드 트랙의 입구... 정확히는 출구인 샌드플라이 포인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없는 오래된 건물 하나 앞에 닭같이 생긴 새만 기웃거리고 사람이 안 보인다. Weka라고 하는 이 새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주워 먹는 야생 조류다.


그래도 예약한 시간쯤에 뭐가 오겠지... 하고 기다리니 차 한 대가 와서 수상택시를 물에 띄운다.


이 시간에 우리 둘 뿐인가 보다. 아저씨가 우리 이름을 확인하더니 바로 출발 준비를 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더 심해지고 수상택시의 창에도 물방울이 맺혀 보이질 않는다.


수상택시 기사님은 이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니 여유 있게 운전한다. 처음 나루터를 벗어날 때는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벗어나고 나니 금방 반대편 목적지에 내려준다.


우리를 내려주면 여기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싣고 돌아간다. 밀포드 사운드 트래킹은 허가제로 운영되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사전에 허가가 된 사람들이다. 트래킹 복장을 갖추고 비와 피곤에 절어 있는 이 사람들은 3박 4일의 긴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드디어 뉴질랜드 최고의 트래킹 코스인 밀포드 사운드 트랙의 종착점에 도착했다.


이 종착점의 이름은 정확하게는 샌드플라이 포인트다. 샌드플라이는 초파리와 비슷하게 생긴 까만 파리인데 밀포드 사운드 쪽부터 뉴질랜드의 구석진 해안가에 많이 산다. 아직까지는 이 쪼그만 날파리들의 무서움을 몰랐다. 미리 말하지만 내가 뉴질랜드를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단 하나 있다면 이 샌드플라이들이다.

틈만 나면 샌드플라이들이 달라붙는다. 가만히 살갗에 붙어서 혈관을 찾은 다음에 물면 따끔한데 고통을 느끼는 순간은 이미 모든 것이 끝나고 모기 물린 것처럼 부어오른다. 그리고 1주일 정도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렵고 계속 긁다 보면 흉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쨌든 우리는 3박 4일의 트래킹을 할 수는 없으니 오늘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서 되돌아온다. 미리 조사한 정보로는 여기서 자이언트 게이트 폭포까지 5km 정도이며 완만한 평지다. 왕복 10km 정도니 늦어도 3시간 안쪽으로 다녀올 수 있는 짧은 코스다.


뉴질랜드 최고의 숲이 여기에 있다. 비를 머금은 원시림은 그 자체로 경이적이다.


길은 아주 잘 되어 있다.


길 옆으론 빽빽하게 이끼와 양치식물들이 우거져 있다.


일단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초행길을 왕복해야 하니 부지런히 걸어간다. 5km는 생각보다 긴 거리다.


고사리가 여기저기 올라온다. 왜 흔해빠진 고사리가 뉴질랜드의 상징인지 뉴질랜드의 숲을 걸어보면 알 수 있다. 온통 고사리 천지일 만큼 흔하다.


날이 살짝 개이면 나무숲 사이로 경치가 보인다. 하지만 여기는 워낙 무성한 숲 속이라 딱히 날씨가 안 좋고 비가 부슬부슬 내려도 멋질 만큼 숲 자체가 대단하다.


눈앞에 커다란 폭포가 보인다. 오! 이것이 자이언트 게이트 폭포인가?.... 지니님이 위치를 검색해 보더니 더 가야 한다고 한다.


음... 이 정도면 자이언트한 게이트한 폭포 아닌가?


어쨌든 열심히 또 걸어간다.


비가 오는데도 생각보다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엄청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보인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가이드의 인솔 하에 걷는 사람들은 비싼 가이디드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고 식량이나 필요한 것들을 가이드가 짊어지고 제대로 된 식사와 샤워, 숙소를 이용한다. 혼자 큰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 사람들은 개인 트래커들이다. 이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모든 먹을 것과 침구를 자기가 가지고 걸어야 한다. 지붕과 벽이 있는 대피소 같은 곳에서 잔다고 한다.


앞에 출렁다리가 보인다. 자이언트 게이트 브리지. 드디어 자이언트 게이트 폭포에 도착했다.


다리의 상류를 보면 커다란 바위가 엄청난 물줄기로 갈라진 것이 보인다. 자이언트 게이트 폭포다. 비가 와서 그런지 물줄기가 어마어마하다.


요 다리 건너편에 쉼터가 있다고 하니 가본다.


자이언트 게이트 대피소 안내판이 있다.


대피소라고 해봐야 우리나라의 정자만도 못한 지붕과 밴치가 있고 근처에 웨카가 사람들이 먹을 걸 주는 걸 기대하면서 기웃거린다. 바닥은 온통 물바다다.


일단 5km를 걸었으니 좀 쉰다. 가이디드 투어로 온 사람들이 여기서 쉬고 있는데 지쳐있어도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당일치기로 짧게 온 우리를 보니 여정의 끝이 얼마 안 남은 게 보이나 보다.


이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아까는 바쁘게 가느라 지나쳤던 아다 호수 표지판 쪽으로 가본다.


뭐 사실 이 안내판부터 자이언트폴 지나서 전부 한쪽에 보이는 호수는 아다 호수고 여기는 그냥 배를 띄울 수 있는 공간이라고 이렇게 안내판을 붙여놓은 것뿐이다.


아까 자이언트 게이트 폭포인 줄 알았던 폭포도 지나간다.


샌드플라이 포인트에 다시 도착했다. 샌드플라이 포인트의 글씨가 시뻘건 색인 것은 샌드플라이가 끔찍한 흡혈 곤충이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당일치기로 건너와본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우리처럼 자이언트 게이트 폭포까지 가진 않고 근처만 간단히 걸은 듯하다.


샌드플라이를 피해서 대피소에 앉아있으니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아까 마주친 당일치기 커플이 수상택시가 왔다고 알려준 것이다. 수상택시를 타러 후다닥 달려 나간다. 우리가 수상택시를 놓칠 리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를 챙겨준 커플이 고맙다.


아직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이르지만 수상택시는 여기서 타고 싶은 사람들을 태워서 돌아간다. 우리와 다른 당일치기 커플이 승객이다.


끔찍한 샌드플라이의 공격 때문에 빨리 이곳을 탈출하고 싶다.


밀포드 트랙 출구에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수상택시는 금방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번에는 건너편에 예약한 사람이 있는지 수상 택시는 우리를 내려주고 바로 다시 샌드플라이포인트로 가버린다.


이제 다시 테 아나우로 되돌아가야 한다. 120km... 이 길은 내일 또 와야 한다. 왕복 240km, 세 시간 정도는 낭비다. 다음부터는 이런 경우엔 비싸더라도 그냥 최대한 가까운 숙소에 묵어야겠다.


다시 깊은 숲을 뚫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폭포가 줄줄 흐르는 엄청난 산이 나타난다.


아까 지나왔던 호머터널이다.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반대로 오르막길이다.


터널을 지나고 120km를 달려서 테 아나우로 돌아오니...


중간부터 날씨가 맑아진다.


방금 전까지 우중충한 하늘이 물러가고 푸른 하늘이 나타난다.


테 아나우 호수도 멋지다.


120km의 길을 달려왔더니 꽤 늦은 시간이다. 마트에서 사둔 네오구리로 저녁을 먹는다.


드디어, 지옥 같은 뉴질랜드의 악몽인 샌드플라이들에게 물어뜯겼다. 샌드플라이는 블랙플라이라고도 하는데 뉴질랜드 남섬의 서쪽 해안가에 많이 산다. 생긴 것은 초파리와 비슷하지만 사람의 피부를 뚫고 피를 빨아먹는 곤충으로 일단 물리면 아픈데 물리고 나면 2주 정도는 미친 듯이 가렵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 해충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벌레 기피제들이 듣지 않으니 샌드플라이가 많은 지역에 갈 때는 그 지역의 샌드플라이 기피제를 약국에서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을 권한다. 아니면 정말 지옥에 온 것 같은 경험을 할 것이다. 물렸을 때는 항히스타민 연고를 바르면 그나마 조금 빨리 낫는데 이 역시 그 지역 약국에서 구할 수 있다.  


밀포드 트랙 트래킹을 조금 맛만 보았다. 3박 4일로 진행되는 54km의 트래킹 코스 중에 고작 5km를 왕복해서 걸었다. 비까지 내린 날씨였지만 그리 심하지 않은 비라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로 인해 생긴 무수한 폭포들의 향연은 대단한 경치였으며 비를 머금은 오래된 숲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니님도 지금까지 걸어본 트래킹 코스 중에 가장 좋았다고 한다.


내일은 밀포드 사운드에 다시 간다. 내일은 날이 개일 것 같으니 몇 군데 중요한 명소를 둘러보고 트래킹도 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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