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8일(일)
[15일 차] Mondolfo ~ Porto Sant'Elpidio 87km / 누적 거리 1,104km
7시 반에 조식을 준다고 해서 시간 맞춰 일어났는데 밤새 계속 비가 왔는지 땅이 젖어있고 아직 흐리다. 어제 거대한 저녁식사의 여파로 아직 배가 부르지만 늘 먹던 넉낌대로 조식을 챙겨 먹고 나갈 준비를 해본다.
비가 안 와서 일단 출발을 했는데, 달리기 시작한 조금 뒤에 바로 비가 오기 시작한다. 다양한 자전거 도로가 나와줘서 일단 계속 달린다. 마을을 벗어나고부터는 해안에 붙어가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니 하늘은 어둡고 바다는 성이 났다. 빗물에 발이 젖을까 봐 살살 달리는데 아무래도 바닥에서 튀는 물이 영 불안하다.
바다를 벗어나서 큰길을 타야 할 때쯤 비가 아주 쏟아진다. 건물의 처마 밑에서 잠시 쉬어간다. 바닷가에 있는 수많은 카페를 다 지나와서 왜 이 길거리에 이러고 있는 걸까..
비가 조금 잦아들어서 다시 출발한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릴 때마다 쉬게 되면 그날은 달리는 거리가 짧아져버리니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는 오히려 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가는 편이다.
날이 점점 개이니 후덥해진다. 카페에 들어가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카페에 가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보다가 보다가 결국엔 주유소에 딸린 그냥 빵집으로 들어왔다... 참치가 들어간 깔조네와 라떼마끼야또를 먹었는데 3-4유로 밖에 안 한다. 화장실은 바깥 주유소 쪽에 있는데, 그것도 카페에서 원격으로 문을 열어줘야 갈 수 있게 해 놨다. 카페 영업이 1시에 마감인지 슬슬 청소를 하고 정리를 시작하길래 다 먹자마자 바로 나왔다.
이곳 앙코나(Ancona)부터 남쪽으로 가는 해안은 큰 곶으로 돼있어서 구글이 알려주는 내륙으로 우회할 예정이다. 사실 내륙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카페를 들르려고 주유소의 빵집에 급히 들어간 거였다.
해안길은 꾸불꾸불한 업다운인데, 안전상의 문제도 있지만 지금 팔이 않으니 오르막에서 상체를 못쓰는 불편함이 너무 커서 가지 않기로 했다. 내륙도 어제처럼 업다운이 다소 있으리라고 물론 예상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오르막이 너무 심했다. 내려서 끌바를 하는데도 경사가 너무 세니 종아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조금 올라가니 탈만한 업다운이 계속계속 나와서 1단으로 살살 타고 갔다. 밑에서 먹은 빵은 벌써 소화가 끝났다.
나름 꼭대기로 보이는 곳에 꼬뽀(Coppo)라는 마을이 나왔고 바다 전망이 아니지만 땀이 나서 잠시 쉬어간다. 커스타드 크림이 들어간 크로아상과 레몬소다를 먹고 있다가 물을 사러 들어온 동네 로드 아저씨와 영어로 간단한 대화를 했다.
충분히 쉬고 내리막을 따라 해안까지 내륙으로 질러가는 샛길로 출발~ 했는데, 길이 점점 안 좋아진다. 어쩐지 아저씨는 큰길을 따라서 해안까지 둘러가는 듯했다.
업다운이 한동안 계속 됐지만 노면이 별로라 다운힐이 즐겁지만은 않다. 타다가 끌다가를 반복해서 겨우 다시 바다를 만났다.
잠시 날이 개이면서 바다를 따라 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가 없어졌다가 철길 밑 굴다리를 지나기도 했다. 나중에는 SS 도로를 타야 하는 일이 있어서 긴장을 했지만 오늘은 큰 도로를 자주 탔더니 차에 신경을 조금 덜 쓰게 되었다. 마을이 계속 이어지니 차들이 속도를 많이 못 낸 탓도 있다.
그러다가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서 대로변 카페에 들어가 라떼마끼야또를 시켰다.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다. 여자라 노상방뇨가 좀 어려워서 식사시간에도 마트를 이용한 적은 거의 없다. 1.2유로짜리 부담 없는 커피를 마시면서 3km 앞의 숙소를 예약했다.
마을로 들어와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벨을 눌러도 사람이 나오지를 않는다. 결국 호스트에게 전화를 하니 남편이 도와주러 올 거니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에 비가 갑자기 쏟아졌는데, 발코니 밑에 서있었더니 하나도 안 맞았다. 럭키~
곧 체크인을 하게 됐는데, 자전거가 있으니 1층 방을 쓰고 거기에 자전거를 넣어두라고 했다. 고마워여..
샤워&빨래를 하고 시내 구경을 했다. 주말이라 차량 통행이 금지된 도로를 지나 광장을 가로질렀다. 번화가의 식당과 술집에는 DJ가 흥겹게 음악을 털어서 그런지 젊은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딱히 특별한 풍경은 없었다. 큰 도시를 피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로컬의 모습을 더 자주 접하는 것 같다.
아까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봐뒀던 오스테리아를 갔다. 매일 해산물만 먹으면 지겨울 수 있으니 오늘은 고기를 먹는다. 트러플이 올라간 스파게티와 송아지 등심(Lombata)을 주문했다. 사실 티본이 먹고 싶어서 간 건데, 직원이 나 혼자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해서 대안을 준 것이었다. 나를 무시하다니, 나 진짜로 다 먹을 수 있는데.. 어제 배가 터지게 먹지만 않았어도 고집을 부려보는 건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참았다. 이 집에서 밀고 있는 로컬 레드와인 미니병을 추천해 줘서 주문해 봤다.
파스타는 맛나긴 한데 광고 사진만치 주먹만 한 트러플은 아니고 엄지손톱 크기다. 크림소스를 베이스로 해서 향이 진하게 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송아지 등심은 마치 미니 티본처럼 나와서 너무너무너무 행복했다. 고기양만 300g 이상은 될 것 같이 양이 많고 부드럽게 맛있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나를 말려준 아저씨 그라찌에.. 그리고 빵도 일반 바게트뿐 아니라 잘라서 튀겨낸 러스크 같은 크루통이 함께 나오는 게 아주 별미였다.
숙소에 돌아오는데 밤바람이 차다. 이제 비가 그만 오면 좋겠다. 다행히 아직 신발은 젖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