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0일(화)
[17일 차] Francavilla al Mare ~ Campomarino 96km / 누적 거리 1,316km
숙소에서 어제 준 조식 쿠폰으로 근처 바에 가서 아침을 먹어야 한다. 철로 건너편의 바에 가려면 지하도 계단으로 철길을 건너야 해서 오늘은 그냥 출발 준비를 다 하고 짐을 챙겨서 나왔다. 양치를 하려고 그동안 숙소에 들렀다가 나왔는데, 시간 관리는 오늘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라떼마끼야또와 아몬드 크로아상을 후딱 먹고 출발해 본다.
출발은 어제저녁을 먹었던 광장 옆 자전거 도로로 매끈하게 시작했지만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금방 없어졌다. SS 도로로 나가서 다리를 건넌 다음, 업다운이 심한 오르토나 (Ortona)를 우회하기 위해 다음 마을까지 큰길을 달려야 한다.
오르막을 천천히 가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네 로드 청년이 옆에 따라오면서 말을 건다.
"너 몇 살이야?"
'나 41살!'
"어우, 너 25살처럼 보여~"
'어, 고마워ㅋ'
"너 너무 이쁜데, 혹시 결혼했어?"
'ㅇㅇ 했어, 잘 가~"
"남편은 지금 뭐 하고 있는데, 너 혼자 타는 거야?"
'어, 일하는 중. 잘 가~'
"이탈리아에서 일해?"
'응, 맞아. 빨리 가~'
하.. 차도 많이 다니고 햇빛 쨍쨍한 오르막에 힘든데, 자꾸 말을 걸어서 짜증 날 뻔했으나!! 사실은 고마워여, 젊은이.. 오르막이 아니었으면 사진이라도 하나 남겼을 테야..
차들과 부대끼며 가다가 오르토나(Ortona)를 지나서 마을의 해안으로 빠졌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그쪽으로 따라갔더니 자전거 도로가 갱장히 잘 돼있다. 매끈매끈한 초록색 길을 따라가다 보니.. 엄청난 바다뷰가 나온다.
구글 지도에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비포장일까 걱정했던 이 길이 아주 아름다운 자전거 도로였다니.. 단언컨대 내 자전거 인생 15년 중 가장 멋진 풍경이었다.
물론 차 없는 매끈한 길이 완벽한 점수에 한몫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 이곳을 지나가서 정말 다행이다. 중간중간 터널이 있고 평지에 가까운 경사를 보니 더 이상 쓰지 않는 구 기찻길을 개조해서 꾸민 것 같다.
최고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길에는 놀랍게도 무료 공중화장실이 있다. 이번 여행 중 유일한 곳이었다. 안에는 화장지와 물비누도 구비되어 있어서 나름 기나긴 길에서 쉬어 가기 안성맞춤이었다.
자전거 도로는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갈 수 없는 비포장 도로가 됐다. 옆으로 살짝 지나가서 끌바를 할까 했는데, 비포장 구간이 좀 길 것 같아서 SS 도로로 나갔다. 으아, 정신없어..
5km 정도 달리다가 샛길로 빠졌더니 다시 자전거 도로가 시작됐다. 길이 좀 애매한 곳이 있었지만 살살 따라가니 해안과 같은 레벨에 도달했다. 바다가 더 가까이 잘 보여서 좋다.
마을이 끝나기 전에 식당에 들어갔다. 이 비스트로는 점심식사가 12시부터나 가능한 곳이라 늘 먹던 라떼마끼야또, 크로아상, 코카제로를 먹었다. 좁은 도로 건너편으로 바다가 보여서 좋다. 앞뒤로 패니어 꽉꽉 매단 할머니 자전거 여행자도 이곳에서 머물렀다. 머시쒀..
한참을 쉬다가 다시 출발하는데, 역시나 도로가 아주 예술이다.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 바다와 숲을 번갈아가며 지나갔더니 드디어 자전거 도로가 끝났다.
이제는 긴장의 SS 도로를 타야 한다. 그런데 넓은 차도에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다고? 말도 안 돼.. 룰루랄라 타고 갔더니 저 사진에 보이는 길이 끝이다. 그럼 그렇지, 말이 안 된다. 차도로 내려왔다.
로드 아저씨들도 가끔 지나가는 이 길은 중간에 공사구간이 있어서 단일 차선의 신호를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길지 않은 거리였고, 일단 지나가서 잠시 기다리다가 차들이 모두 지나간 다음에 다시 출발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도로를 뒤로 하고 말이다. 그러다 신호를 받아 다시 차들이 몰려오면 사이드에서 좀 쉬었다 가는 편이 낫다. 이곳은 갓길이 좁고, 화물차가 많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날씨가 맑다. 주유소가 딸린 바에 들어가서 초코크림이 들어간 도넛과 레몬소다를 마시면서 충분히 쉬었다. 근처 현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나 화물차 운전자들의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운영하는 여자 사장님 두 명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매우 친절해서 나까지 흐뭇하게 만들었다.
SS 도로는 두 갈래로 나뉘면서 내가 따라간 길은 자연스레 다음 도시로 합류됐다. 초입부터 새로운 자전거 도로가 잘 깔려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야 할 때쯤 급경사가 나와서 탈까 말까 고민하던 중 클릿이 순간적으로 빠지지 않아서 넘어질 뻔했다. 더 이상 다쳐서는 안 돼..
라운드어바웃으로 도시를 빠져나와 숙소를 예약해 둔 다음 마을로 가기 위해 큰길을 다시 탔는데, 그리 완만하지 않은 오르막이 오늘의 마지막을 지치게 한다. 하필 골라도 언덕에 있는 마을을 골랐다.
마을에 들어가서 숙소를 찾았는데, 간판도 없고 뭔가 이상하다. 알고 보니 숙소 이름이 헷갈려서 다른 집을 간 거였다. 벨을 안 눌러서 천만다행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주소를 보고 제대로 찾아갔는데, 주인 아줌니가 오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고 연락을 했다.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 보니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꾸며놔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짐만 놓고 근처에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바(bar)라고는 꼴랑 2개밖에 없는 동네에서 가까이 있는 하나는 문을 닫았다. 다른 한 군데를 갔더니 생맥주가 없다고 해서 페로니 한 병을 시켜 먹었다. 옆에 손님 중 영어를 찌끔 하는 아저씨가 주문을 도와줘서 고마웠다.
숙소에 돌아와서 샤워&빨래를 했다. 이곳엔 식당이 별로 없고, 내가 원하는 곳은 더더욱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에 걸어갔다. 마트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현지인들을 위한 곳인지 즉석식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뭐든 먹어야 하니 고민하며 이것저것 골랐다.
밥·채소·콩이 들어간 리오마레 매콤 참치캔, 비프맛 아시안 컵누들, 로션을 거의 다 써서 얼굴에 바르는 크림과 마스크팩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먹어보니 그럭저럭 괜찮다. 이 식단에 김치만 있어도 참 좋겠다. 그리고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과일주스, 토스트 비스켓&버터를 주워 먹으니 꽤괜~ 과일은 안 사길 잘했어!!
전에 샀던 진통제(이부프로펜)를 다 먹은 지 이틀 정도 지났는데, 심리적 원인인지 모르겠으나 팔의 통증이 다시 심해지는 것 같아서 새로 하나 샀다. 흡수 속도가 빠른 걸 골랐더니 12유로나 한다. 하루에 1-2번 복용하는 나는 일반으로 샀어도 됐는데, 당장 팔이 아프니 이걸 선택했다. 효과는 나쁘지 않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