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일(금)
[20일 차] Bari ~ Gioia del Colle 43km / 누적 거리 1,585km
자기 전에 이른 아침의 알람을 모두 꺼버리고 잤는데 알람 소리에 깼다. 뭐지? 10시 체크아웃을 느긋하게 준비하기 위해 맞춰둔 8시 알람이 울린 것이다. 원래도 잠을 잘 자는 편인데, 매일 자전거를 타니까 잠이 더 솔솔 온다.
테라스에 나가보니 오늘도 바람이 장난 아니다. 바리에서 하루를 쉬고 갈지 바로 풀리아주 일주를 시작할지 어제부터 계속 고민했는데 일단 이동하기로 했다. 지금 숙소에서 하루 더 머물기에는 예약이 이미 차버렸다. 그렇다고 이런 날씨에 이 복잡한 바리에서 숙소까지 옮겨가며 머물고 싶지 않다. 어느 방향으로 돌지 고민하다가 타란로(Taranto)로 내려가서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좋아 보인다. 풀리아에서는 나도 해변과 더 가깝게 달리고 싶다. 게다가 날씨를 찾아보니 내가 어제 생각했던 대로 북북서 방향의 바람이 불고 있어서 뒷바람을 제대로 타고 갈 수 있다.
오늘 숙소는 조식이 제공되지 않는 곳이라 일단 이 복잡한 곳을 먼저 벗어난 다음에 먹기로 한다. 준비를 하고 나섰다. 바리는 오늘도 복잡하다. 차도 양 옆으로 주차되어 있는 차들, 수많은 신호등에서 꼬리물기를 하며 경적을 울리는 풍경 등 정신이 하나도 없다.
바리를 벗어나는 길에 드디어 자전거 도로를 발견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것처럼 도로 중앙에 위치해 있었는데, 뭔가 억지로 조성한 듯한 것이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 매끄럽게 연결되지는 않았다. 차도와 자전거 도로를 애매하게 왔다 갔다 했더니 10km를 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음 마을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 카페를 찾는데, 춥고 흐린 날씨 때문에 테라스 좌석을 다 치워놔서 썩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겨우 한 군데에 들어가서 누텔라를 바른 크로아상과 라떼마끼야또를 주문했다.
먹는 와중에 가게로 과일 상자가 잔뜩 들어온다. 메뉴를 다시 보니 과일 관련 된 것이 많아서 3유로짜리 모듬 과일을 주문해 봤다. 하얀 멜론, 노란 멜론, 사과, 파인애플, 배 등 풍성하게 나와서 아주 잘 먹었다.
오늘은 원래 쉬려던 것을 가는 날이니까 거리를 아주 조금만 갈 예정이다. 게다가 바람이 세서 해안보다는 내륙에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다시 출발하려니 비가 살살 온다. 오늘 원래 비 소식이 있기는 했지만 막상 빗방울이 떨어지니 기분이 좀 그렇다. 다행히 비는 조금씩만 내렸다가 말았다가 한다. 이제부터는 샛길로 간다. 도로가 엊그제처럼 엉망일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사방에 포도밭과 올리브 나부가 그득한 게 농사를 위해 사용하는 아주 작은 도로인 듯했다.
으악,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큰 올리브 나무 밑으로 피신했다. 바람이 옆으로 불어서 비를 안 맞기도 쉽지 않다. 잠시 쉬는 김에 숙소를 예약했다. 포도나무에는 보라색, 초록색 포도가 각각 잔뜩 열렸다. 와인과 올리브유에 미쳐있는 민족이라 열심히 키워야겠지..
다시 달리는데 이번에는 물 웅덩이가 몇 군데 나타났다 가시풀 때문에 피하기 힘든 곳은 가장자리의 잔디와 돌덩이 위로 올라가기도 했는데, 아픈 팔로 이런 곳을 지나는 일이 힘들다. 신발은 또다시 엉망이 됐다.
설렁설렁 달리다가 마을에 도착했다. 오늘의 숙소는 4시부터 쳌인이 가능하지만 아까 예약하면서 좀 더 일찍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봤었다. 일을 하는지, 3시에 올 테니 그 앞에서 만나자고 답장이 왔다.
시간이 남아서 숙소 근처 카페에서 라떼마끼야또와 초코가 들어간 패스츄리를 먹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이 부니 너무 추워졌다. 추우니 몸이 덜덜 떨리고, 손은 시리다 못해 저리다. 커피잔에 손을 대고 있어 보지만 좀처럼 나아지지가 않는다. 오늘은 이만큼만 달리길 잘했다.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슬슬 숙소로 갔는데 뭔가 이상하다. 이런, 또또또 비슷한 이름의 숙소를 찍어서 다른 곳으로 왔다.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진짜 숙소로 끌바를 해서 걸어간다. 여기 는 돌바닥과 일방통행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걸어가는 게 빠르다. 미끄러질까 봐 종종걸음으로 가는데,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서더니 Kim이냐고 물었다. 자전거가 있다고 얘기했더니 관광객이라고는 없는 이 도시에서 동양인&자전거 등으로 나를 추측한 것 같다. 숙소 앞에서 보기로 하고 골목으로 들어가니 호스트가 면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서는 소파에서 한 시간 넘게 그냥 퍼져있었다. 오늘은 원래 휴식의 날이니까.. 이탈리아는 보통 냉난방이 같이 되는 에어컨을 설치해 놔서 들어가자마자 방과 거실의 난방을 모두 켰다.
쉬고 있자니 몸이 노곤해진다. 그래도 샤워는 해야지. 옷은 바지만 빨았다. 자켓을 벗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쌀쌀해서 땀이 날 겨를이 없었다. 욕실의 어메니티 덕분에 이번 휴가기간 동안 유일하게 린스를 사용하기도 했다.
씻고 나서 또 소파에 퍼져버렸다. 내일 가야 하는 길을 검색하니 애매하지만 갈 만한 것 같다. 타란토(Taranto)에서 잘 계획을 하고 있다. 존의 조언대로 그나마 큰 도시에서 자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 그리고 풀리아에 왔으니 조금 느긋하게 돌면서 이곳저곳 둘러보고 싶다. 비바람이 멈춘다면 말이지..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서 작은 테라스로 나가보니 바로 앞에 성당이 보인다.
비가 계속 와서 나갈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갔다. 계속 숙소에만 혼자 있으니 비도 오는데 우울한 것 같다. 중심가에 봐둔 식당으로 다다다다 걸어갔다. 슬리퍼도 돌바닥에서 미끄럽긴 매한가지라 조심해야 한다.
이 근방에 뭔 빨간 파스타를 많이 팔던데, 그게 궁금해서 이 식당으로 왔다. 이너넷으로 찾아보니 아주 매운 원팬 파스타, 스파게티 알 아싸시나(Spaghetti all'Assassina)라는 음식이다. 미리 삶지 않은 건면을 소스와 함께 넣고, 태우듯이 기름에 볶아서 만드는 음식이다. 음, 증말이지 하나도 안 맵군; 역시나 파스타 하나로는 부족하니 문어구이도 주문했다. 풀리아에 있는 동안 1일 1 문어 할 거니까! 여기에 맥주 2병까지 해서 34유로 밖에 안 나왔다. 관광지와 현지의 물가 차이가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그럭저럭 맛나게 먹었다. 직원들은 영어를 잘 못했지만 어떻게든 나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려고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상당히 친절하게 느껴졌다.
다시 모자를 뒤집어쓰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은 비가 안 와야 할 텐데.. 날씨를 찾아보니 풀리아는 현재 강풍 경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