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이탈리아 종단 자전거 여행 19일 차

by 존과 지니

2025년 10월 6일(월)

[23일 차] Taranto ~ Gallipoli 109km / 누적 거리 1,728km


오늘은 방 안에 미리 차려놓은 조식을 셀프로 먹는 시스템이다. 어젯밤 찌끔 까먹은 걸 제외하고 나머지 음식을 먹어본다. 아메리카노도 딱 내리고~ 오늘처럼 조식을 방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숙소에서는 방마다 커피머신(대부분 캡슐)을 제공해 준다. 카페에 가서는 차마 메뉴에도 없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날은 무적권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이탈리아 쉽지 않군...

사실 아침부터 뭔가 입에 잘 들어가지 않지만 달리는 중에 배고프지 않기 위해 의무적으로 먹을 뿐이다. 뻑뻑한 빵들을 뜨수운 커피로 넘겨본다.


어제저녁에 비가 왔지만 기온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 그래서 어제 페페의 가족이 준 옷을 깜빡하고 숙소에 두고 나왔다. 이것도 나중에 호스트가 메시지를 보내줘서 알게 된 것...ㅠㅠ 이미 몇십 킬로를 달린 시점이라 아쉽지만 포기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날이 따뜻해지니 이제 후리스같은 긴팔 옷은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 않다는 것.


헤안으로 나가서 자전거 도로를 따라간다. 음, 깔꼼하고 정돈된 도시라 자전거도로도 잘 돼있군.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해안도로를 따라갔는데 큰 도시의 나들목답게 차가 많아서 에둘러 가길 잘한 것 같다. 타란토(Taranto)에서 멀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바다를 만나니 차가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도로는 생각보다 바다에 아주 가깝게 달렸다. 날이 맑을 때 해안도로를 타니 기분이 아주 꿀맛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의 바다란 이런 것인가... 자꾸 멈춰서 사진을 찍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오늘은 뒷바람에 가까운 측풍이라 그나마 탈 만하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만큼 짤짤한 업다운이 있긴 해도 엉덩이 아프게 평지만 달리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것 같다.


40km를 넘게 달리다가 적당한 카페가 나와서 라떼마끼야또와 크로아상을 먹었다.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곳에서 먹고 싶었는데 배고프거나 쉬고 싶어질 때는 뭔가 골목의 로컬 장소만 만나는 것 같다. 나도 관광객이에요..ㅠㅠ 친절하고 편안한 카페에서 레몬소다까지 하나 마시니 든든해졌다.


다시 해안을 따라 출발! 어제 비가 내려서 그런지 가을 하늘이 더 높고 공활해 보인다. 항구도시 같은 곳이 나와서 일부러 마을로 빠졌는데, 그놈의 일방통행 때문에 바다에 붙어갈 수가 없어서 다시 SP도로로 나와버렸다. 바다에 붙어가지 못할 때는 황량한 풍경, 나무숲, 소나무 그늘 등을 지나간다. 반도의 특성상 해안 곳곳에는 다 무너져가는 성벽 터가 자주 나왔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 공사구간이 있었는데 마을 주민과 관계자 외에는 통과하지 말라고 초입에 표시를 해놨다. 여기를 못 지나가면 나는 어떡하냐구요..ㅠㅠ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아서 자전거를 끌고 가장자리로 슬금슬금 걸어가는데, 누가 소리치면서 나를 부른다.

'네? 뭐라구여?' (긴장, 당황.. 여기 지나가지 말라고 하면 어떡하지? 얼마나 더 돌아가야 하지?ㄷㄷ)

"너 여기 조심해서 지나가라고!!!!"

'고마워..힝힝'


그러다가 다시 바다가 나오고 사람들이 좀 있는 멋진 휴양 마을이 나왔다. 여름이 지나서 해안의 상점은 거의 다 닫아버리고 유령도시와도 같은 이 풀리아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었다.


적당한 곳을 골라 테라스에 앉았다. 배가 막 고픈 건 아니라 버팔로 치즈와 토마토 등이 들어간 샐러드, 착즙 오렌지 쥬스를 주문해서 먹었다. 이탈리아는 정말이지 이런 하얀 치즈들이 남다르긴 하다. 아주 우유 100배 농축해 놓은 진한 맛.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바로 출발하지 않고, 해안의 벤치에 앉아서 풍경을 감상해 본다. 숙소까지는 13km 밖에 남지 않아서 천천히 달려도 시간이 넉넉하다.


갈리폴리(Gallipoli) 입구에 도착했는데, 아주아주아주 거센 바람이 분다. 도시는 마치 곶처럼 빼죽 나온 형태라 사방에서 부는 돌풍을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철도와 일방통행을 피하느라고 조금 돌아서 숙소에 겨우 도착했다. 풀리아는 지난주부터 강풍 경보가 발령됐는데, 아직 안 끝났을 줄은 몰랐다.


숙소에 짐과 자전거를 놓고 근처의 바로 갔다. 며칠 늘어지게 쉬다가 자전거를 탔으니 이 날씨에도 나는 맥주를 먹어야겠다. 바에서는 생맥주가 안 된다고 해서 어제처럼 스프리츠 아페롤과 깜빠리를 한 잔씩 마셨다. 테라스에 비닐을 둘러놨는데도 문으로 바람이 엄청 들어와서 모든 것이 날아갈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마신다. 오늘은 팔 통증이 한결 나아졌는데, 매일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게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다 나았을지도 모른다.


숙소로 들어와서 샤워&빨래를 하고 잠깐 쉬었다. 체크인을 할 때 추천 식당 세 군데를 알려줬는데, 그중 제일 땡기는 곳이 하필 오늘 쉬는 날이다. 나머지 두 군데는 올드타운이 있는 섬에 있어서 구경도 할 겸 다리를 건너 걸어갔다. 식당 오픈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섬을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데, 다리를 건널 때 노을이 이미 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해가 저물어갔다. 이놈의 바람은 왜 이렇게 부는 건지 모르겠다. 모자를 뒤집어써서 꽁꽁 싸맸다. 이런 날씨에도 비닐조차 없는 생짜바리 테라스에 앉아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니 놀랍다.


식당에 가니 직원들이 간단한 영어로 친절하게 맞아줬다. 생새우, 문어, 해산물 오르키에떼를 주문했다. 먹고 싶은데 더 많았는데, 고르고 고르다가 참고 딱 3개만 시켰다. 맛있게 다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것 같아서 커피도 마시지 못했다.


다시 모자를 뒤집어쓰고 섬을 마저 구경하다가 바람을 맞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날씨를 검색해 보니 이틀은 이런 바람이 더 불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경로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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