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이탈리아 종단 자전거 여행 20일 차

by 존과 지니

2025년 10월 7일(화)

[24일 차] Gallipoli ~ Otranto 103km / 누적 거리 1,831km



바람이 얼마나 불던지 밤새 창밖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늘은 간만에 차려주는 조식을 먹는 날이다.

8시에 아침을 먹으러 가니 직원이 오븐에서 갓 구운 크로아상을 꺼내 세팅하고 있다. 따끈한 크로아상에 버터까지 챱챱 발라서 먹는데 넘모 맛있다. 빵은 역시 갓 구운 것이 최고다. 손으로 갈라서 버터를 바르면 사르르 녹아서 풍미가 더해지니 5개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라떼마끼야또도 두 잔이나 먹고, 시리얼에 요거트도 비벼 먹었다. 과일, 계란, 햄, 치즈까지 먹으니 매우 든든하고 만족스러운 식사가 됐다.


바람은 엄청나게 부는데 날씨는 또 짜증 나게 맑다. 그래도 비가 안 오는 편이 훨씬 나으니 일단 출발. 오늘도 풀리아의 바다는 아주 아름답다. 마을의 자전거 도로가 끝날 무렵 차가 많지 않은 해안도로가 나왔다.


이런, 또 공사구간이 나왔다. 옆 골목의 비포장 샛길로 돌아서 나갔더니 거기까지도 공사 중이다... 더 돌아갈 수는 없는 데다가 곧 멀쩡한 길이 나오는 것 같아서 살살 자전거를 끌고 걸어갔다. 직원이 막 부르길래 또 긴장했는데, 조심해서 지나가라고 말해줬다. 고마워여...


오늘 지나는 동네도 거의 유령도시가 대부분이다. 달리다가 해변에 카페가 하나 보이는데 바람이 넘모넘모 불어서 그냥 지나쳤다.

계속 달리는데 카페가 말도 안 되게 안 나와서 거길 갔어야 했나..하고 내내 후회하다가 결국 다음 마을에서 일부러 빠져서 굳이 굳이 바닷가의 카페를 갔다. 아침을 하도 든든하게 먹어서 찌끄만 초콜렛 디저트와 라떼마끼야또를 먹으며 잠시 쉬었다.


오늘은 조금만 달릴 예정이라 아주 그냥 여유만만에다가 카페에서도 밍기적거리면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땅끝마을 루카(Leuca)까지 50km 정도 달리고 그곳에서 자려고 한다. 오늘의 업다운은 어제보다 심한데 해안길은 원래 이게 정상이다. 어제는 해안 같지 않게 이상하리만큼 평지에 가까웠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을 잠시 달리다 보니 어느새 풀리아 최남단에 도착했다. 특별한 표식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서 지도를 보고 땅끝에 도착했음을 알아차렸다. 아주 성스럽구만... 아드리안해와 이오니아해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하더니만 바람도 더 사납다.


숙소를 잡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아서 조금만 더 달려볼까 한다. 뷰가 예쁜 카페에서 쉬어가려고 찾다가 마을이 곧 끝날 것 같아서 급하게 골목(...) 식당에서 레몬소다를 마셨다. 오늘의 목적지가 계속 고민이다. 약간 내륙으로 들어가서 사람이 좀 살 것 같은 트리카세(Tricase)로 가든가, 그냥 해안을 따라서 카스트로 마리나(Castro Marina)로 가든가... 묵어가기 확실한 곳은 트리카세인데 나는 어쨌든 바다로 다시 나와야 하니 카스트로 마리나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땅끝마을 산타 마리나 디 루카(Santa Marina di Leuca)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맞바람이 시작된다. 업다운과 맞바람의 콜라보는 아주 죽을 맛인데, 바다는 왜 이렇게 이쁜지... 기암절벽 같은 협곡도 나타나고, 오른편에는 항상 바다가 있다.


풀리아에 들어온 이후 자전거 여행자를 꽤 자주 마주치면서 내가 먼저 손들어 인사해 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는 점에서 동질감이 들었다. 힘든 업다운과 맞바람 속에서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나 하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모두들 서로 무언의 격려를 하며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업다운이 계속되니 지친다.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해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바에 직접 찾아가서 아란치니와 코카제로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나보다 늦게 온 테이블에서도 주문한 커피와 간식이 나와서 다들 먹고 있는데, 내가 주문한 것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홀을 돌아다니는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지도 않는다. 인종차별인지, 단순한 망각인지 모르겠지만 먹을 것에 예민한 나는 갑자기 신경질이 나는 바람에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와서 다시 출발해 버렸다. 그리고 맞바람에 분노의 페달질을 하면서 오트란토(Otranto)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늘은 큰 도시에 가서 자본주의의 친절이라도 기어이 받아야겠다.


안 좋은 기분으로 맞바람을 치고 달리다 보니 저 멀리 예쁜 바다가 보였다. 그래, 화를 내봐야 나만 손해다. 마음을 다 잡으며 괜히 해안이 보이는 사진을 한 번 찍었다. 분노를 다스리며 계속 달리는데 오늘 맞바람이 진짜 장난 아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바람이면 아예 안 탔을 텐데 나는 이동을 해야 하니 무조건 달려야 한다.


관광버스가 서 있는 어떤 마을의 카페를 들어갔다. 바다가 저 멀리 보이는 카페에는 3명의 자전거 라이더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해줘서 화딱지 났던 마음이 풀려버렸다. 크로아상, 라떼마끼야또, 코카제로를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3명은 떠날 때도 아주 밝게 인사를 하고 갔는데, 그들이 있던 자리에 쪼르륵 남아있는 에스프레소잔 3개가 왠지 귀엽다.


18km 남은 오트란토(Otranto)까지 이제 열심히 가야 한다. 오늘 절대로 오트란토까지 가지 않을 줄 알고 오전에 너무 여유를 부린 것이 후회됐다. 큰길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우회도로는 아주아주 심한 바람이 이리저리 불었다. 차가 거의 없는 게 천만다행일 정도. 10월이 되면서 점점 해가 짧아지는데 동부로 오기까지 하니 달리며 노을을 보게 되는 날도 생긴다. 1단이 맞나 싶어서 몇 번이나 기어 변속레버를 누르게 되는 오늘은 참 잠이 잘 올 것 같다. 원래도 매일 잘 자지만...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어마어마한 계단이 있어서 걱정했는데 근처에 전용 창고가 있다고 해서 자전거는 그곳에 보관했다. 창가에 미니 빨랫줄이 있었는데 빨래집게를 걸더라도 거센 바람에 옷이 다 날아가버릴까 봐 불안해서 잠시만 이용했다.


샤워&빨래를 하고, 트립어드바이저에 상위권으로 나온 해변의 식당으로 갔다. 해산물 리조또와 오늘의 생선 중 도미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는데 맛에 비해서 가격은 쪼꼼 비싼 것 같다. 오늘 저녁식사 비용은 86유로로 지금까지 중 제일 많이 나왔지만 영어를 잘하는 친절한 직원들 덕분에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샐러드도 주문하려고 했는데, 사이드로 샐러드가 조금 나오니 먹어보고 결정하라고 말해줬다.


생선은 내가 발라먹겠다고 했는데, 굳이 굳이 해준다고 가져가서 살 다 으깨지고 가시가 많았던 점은 좀... 어쨌든 1인 손님인 나를 극진히 대해준 덕분에 오늘 낮에 화가 났던 마음은 모두 누그러졌다.


밥을 다 먹고 나왔더니 소나기가 내렸는지 바닥이 엄청 젖어있다. 비가 오면 바닥이 미끄럽고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차라리 힘들 뿐인 바람이 낫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비가 왔다니... 시간은 늦었지만 근처를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보면서 숙소로 돌아간다. 이곳은 엄청나게 큰 성이 있던 터인데, 지금은 그 안에 상점이 그득한 것이 신기하다. 드디어 내일 오후 2시에 강풍경보가 종료된다.


매거진의 이전글지니의 이탈리아 종단 자전거 여행 19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