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8일(수)
[25일 차] Otranto ~ Lecce 46km / 누적 거리 1,877km
차려주는 조식을 먹기 위해 8시에 일어났다. 느즈막히 나갔더니 오븐에서 갓 구워진 크로아상이 나왔다. 오예~ 1인당 2개를 구운 것 같았는데, 옆에 아저씨가 하나도 안 먹어서 내가 총 4개를 먹었다. 크로아상 하나에 포션버터를 하나씩 먹는 게 나의 방식인데 이거 진짜 맛있다. 특히 빵이 뜨듯하니 버터가 살살 녹아서 아주 꿀맛이다. 씨리얼을 요거트에 비벼먹고, 라떼마끼야또와 바나나, B&B 가족이 직접 만들었다는 누텔라 팬케익까지 먹었다. 아침식사를 하는 게 습관이 되고 있다.
마을을 나가는 길에 저녁을 먹고 어슬렁거렸던 구시가지를 슬슬 걸어봤다. 어제는 어둡고 비가 오는 바람에 잘 안 보였는데 아침에 보니 성벽이 웅장하고 압도적인 느낌이다.
성의 일부분에서 상점과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보기 드문 풍경이다.
오늘도 맞바람을 뚫고 달려야 한다. 강풍경보를 찾아보니 16m/s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레체(Lecce)에 들어가서 쉴 예정이니 힘을 내서 간다. 바다에 아주 붙어서 가는 길은 아닌데, 오늘은 바람이 너무 세게 부니 차라리 이게 낫다. 육지 안쪽도 바람이 엄청나긴 마찬가지다. 이 바람에도 자전거를 타겠다고 요 며칠 아침마다 썬크림을 바르면서 현타가 좀 왔는데, 오늘도 나와 같은 방향으로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사는 게 다 비슷한 것 같다. 바람은 바람이고 내 갈 길은 가야지..
바닷가와 카페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몰려있는 동네가 나왔다. 으아, 바다에 붙어서 가니 바람이 아주 장난 아니다.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페달질을 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지도를 보니 무슨 동굴과 전경이 유명한 것 같았는데, 바람 때문에 얼른 해안을 벗어나고 싶어서 가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전거를 두고 안쪽 트레일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Cave of Poetry라는 관광명소였다. 이제는 침식으로 인한 안전상의 이유로 물에 들어갈 수 없고, 3유로의 입장료도 생겼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그런 곳을 사진으로 배웠다.^_^
오늘은 해풍까지 겹쳐서 자꾸 도로 안쪽으로 밀려나버리는 위험한 순간이 많다. 다행히 차가 거의 없거나 차가 좀 다닌다 싶은 마을에는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다.
바닷가에서 쉬고 있는 단체 자전거 여행 그룹을 봤는데 행색이 깔끔한 걸 보니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거의 쉬지 않고 달려서 레체(Lecce)에 도착했다. 동굴이 있는 관광지를 지난 후 아무런 마을도 나오지 않아서 쉴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들어간 크로아상과 라떼마끼야또를 먹으며 숙소를 검색했다. 가격과 연식이 좀 있지만 호텔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오래된 도시는 숙소가 1층에 위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자전거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체크인을 바로 한 다음 레체를 빨리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호텔로 가니 3시 체크인 시간이 딱 맞았다. 1층에 로비와 리셉션이 있다니.. 이거이 마 호텔이군! 직원은 영어를 아주 잘하고 친절했다.
일단 자전거와 짐을 두고 다시 나왔다. 구시가지로 슬슬 걸어가는데 하늘이 흐려진다. 대단한 레체성 안에도 들어가 보고, 큰 광장을 지나 두오모 성당으로 가서 그곳이 보이는 바에 앉았다.
창가에 앉으니 딱 내 자리에서만 성당이 보여서 기분이 좋다. 생맥주를 물어보니 작은 잔만 있다고 해서 그걸로 주문했다. 두 모금 컷이다. 스프리츠 깜빠리와 아페롤을 한 잔씩 마시니 취기가 돈다. 이 성스러운 곳에서도 나는 술을 마신다. 호텔로 돌아가면서 쿱에 들렀는데 너무 작은 곳이라 원하는 게 없어서 그냥 나왔다.
호텔에서 짧은 시에스타를 가지고 나서야 샤워&빨래를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나가면서 코나드 마트에 들렀다. 치약, 칫솔, 썬크림, 마스크팩을 장바구니에 야무지게 담아가지고 봐뒀던 일식당으로 갔다.
구글 메뉴에서 비빔밥을 보고 간 건데 반응이 영 그랬는지 없어져버렸다. 쌀밥이 먹고 싶어서 온 거라 해산물 볶음밥, 스프링롤, 모듬 사시미를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벌써 8시 반이라 배고픈디.. 드디어 음식이 나왔는데 맛은 서양의 일식당치고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그런데 볶음밥에 간장이 많이 들어갔는지 너무 짜서 750ml짜리 물을 하나 더 시킨 것까지 총 2병을 다 먹었다. 직원들은 되게 바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테이크아웃과 배달을 많이 하는 식당이라 그랬던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구시가지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술을 마시지 않은 제정신으로 한 번 돌아봐야겠다. 빗방울이 살짝 떨어져서 기온이 낮아졌다. 이놈의 비는 다 온 게 아니었나 보다. 구시가지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아까 보지 못했던 바실리카 성당과 원형극장을 둘러보고 두오모의 야경도 보니 레체에 오길 잘 한 듯하다.
뒷골목에 예쁜 식당이 많던데, 뭐 대단한 걸 먹겠다고 일식당을 갔나 싶다. 아쉬운 대로 광장의 카페에 앉아서 뜨듯하게 라떼마끼야또를 마시며 쿠키도 주문했다. 호텔로 돌아오는데, 바람이 조금 잦아든 것 같다. 강풍경보는 오늘로 끝났지만 드라마틱하게 바람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보가 해제될 정도의 한계점 밑으로 내려간 수치일 듯하다. 그래도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가끔 메시지로 안부를 묻는 페페의 가족에게 고마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