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이탈리아 종단 자전거 여행 21일 차

by 존과 지니

2025년 10월 8일(수)

[25일 차] Otranto ~ Lecce 46km / 누적 거리 1,877km



차려주는 조식을 먹기 위해 8시에 일어났다. 느즈막히 나갔더니 오븐에서 갓 구워진 크로아상이 나왔다. 오예~ 1인당 2개를 구운 것 같았는데, 옆에 아저씨가 하나도 안 먹어서 내가 총 4개를 먹었다. 크로아상 하나에 포션버터를 하나씩 먹는 게 나의 방식인데 이거 진짜 맛있다. 특히 빵이 뜨듯하니 버터가 살살 녹아서 아주 꿀맛이다. 씨리얼을 요거트에 비벼먹고, 라떼마끼야또와 바나나, B&B 가족이 직접 만들었다는 누텔라 팬케익까지 먹었다. 아침식사를 하는 게 습관이 되고 있다.


마을을 나가는 길에 저녁을 먹고 어슬렁거렸던 구시가지를 슬슬 걸어봤다. 어제는 어둡고 비가 오는 바람에 잘 안 보였는데 아침에 보니 성벽이 웅장하고 압도적인 느낌이다.


성의 일부분에서 상점과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보기 드문 풍경이다.


오늘도 맞바람을 뚫고 달려야 한다. 강풍경보를 찾아보니 16m/s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레체(Lecce)에 들어가서 쉴 예정이니 힘을 내서 간다. 바다에 아주 붙어서 가는 길은 아닌데, 오늘은 바람이 너무 세게 부니 차라리 이게 낫다. 육지 안쪽도 바람이 엄청나긴 마찬가지다. 이 바람에도 자전거를 타겠다고 요 며칠 아침마다 썬크림을 바르면서 현타가 좀 왔는데, 오늘도 나와 같은 방향으로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사는 게 다 비슷한 것 같다. 바람은 바람이고 내 갈 길은 가야지..


바닷가와 카페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몰려있는 동네가 나왔다. 으아, 바다에 붙어서 가니 바람이 아주 장난 아니다.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페달질을 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지도를 보니 무슨 동굴과 전경이 유명한 것 같았는데, 바람 때문에 얼른 해안을 벗어나고 싶어서 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전거를 두고 안쪽 트레일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Cave of Poetry라는 관광명소였다. 이제는 침식으로 인한 안전상의 이유로 물에 들어갈 수 없고, 3유로의 입장료도 생겼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그런 곳을 사진으로 배웠다.^_^


오늘은 해풍까지 겹쳐서 자꾸 도로 안쪽으로 밀려나버리는 위험한 순간이 많다. 다행히 차가 거의 없거나 차가 좀 다닌다 싶은 마을에는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다.


바닷가에서 쉬고 있는 단체 자전거 여행 그룹을 봤는데 행색이 깔끔한 걸 보니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거의 쉬지 않고 달려서 레체(Lecce)에 도착했다. 동굴이 있는 관광지를 지난 후 아무런 마을도 나오지 않아서 쉴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들어간 크로아상과 라떼마끼야또를 먹으며 숙소를 검색했다. 가격과 연식이 좀 있지만 호텔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오래된 도시는 숙소가 1층에 위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자전거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체크인을 바로 한 다음 레체를 빨리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호텔로 가니 3시 체크인 시간이 딱 맞았다. 1층에 로비와 리셉션이 있다니.. 이거이 마 호텔이군! 직원은 영어를 아주 잘하고 친절했다.


일단 자전거와 짐을 두고 다시 나왔다. 구시가지로 슬슬 걸어가는데 하늘이 흐려진다. 대단한 레체성 안에도 들어가 보고, 큰 광장을 지나 두오모 성당으로 가서 그곳이 보이는 바에 앉았다.


창가에 앉으니 딱 내 자리에서만 성당이 보여서 기분이 좋다. 생맥주를 물어보니 작은 잔만 있다고 해서 그걸로 주문했다. 두 모금 컷이다. 스프리츠 깜빠리와 아페롤을 한 잔씩 마시니 취기가 돈다. 이 성스러운 곳에서도 나는 술을 마신다. 호텔로 돌아가면서 쿱에 들렀는데 너무 작은 곳이라 원하는 게 없어서 그냥 나왔다.


호텔에서 짧은 시에스타를 가지고 나서야 샤워&빨래를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나가면서 코나드 마트에 들렀다. 치약, 칫솔, 썬크림, 마스크팩을 장바구니에 야무지게 담아가지고 봐뒀던 일식당으로 갔다.


구글 메뉴에서 비빔밥을 보고 간 건데 반응이 영 그랬는지 없어져버렸다. 쌀밥이 먹고 싶어서 온 거라 해산물 볶음밥, 스프링롤, 모듬 사시미를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벌써 8시 반이라 배고픈디.. 드디어 음식이 나왔는데 맛은 서양의 일식당치고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그런데 볶음밥에 간장이 많이 들어갔는지 너무 짜서 750ml짜리 물을 하나 더 시킨 것까지 총 2병을 다 먹었다. 직원들은 되게 바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테이크아웃과 배달을 많이 하는 식당이라 그랬던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구시가지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술을 마시지 않은 제정신으로 한 번 돌아봐야겠다. 빗방울이 살짝 떨어져서 기온이 낮아졌다. 이놈의 비는 다 온 게 아니었나 보다. 구시가지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아까 보지 못했던 바실리카 성당과 원형극장을 둘러보고 두오모의 야경도 보니 레체에 오길 잘 한 듯하다.


뒷골목에 예쁜 식당이 많던데, 뭐 대단한 걸 먹겠다고 일식당을 갔나 싶다. 아쉬운 대로 광장의 카페에 앉아서 뜨듯하게 라떼마끼야또를 마시며 쿠키도 주문했다. 호텔로 돌아오는데, 바람이 조금 잦아든 것 같다. 강풍경보는 오늘로 끝났지만 드라마틱하게 바람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보가 해제될 정도의 한계점 밑으로 내려간 수치일 듯하다. 그래도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가끔 메시지로 안부를 묻는 페페의 가족에게 고마움이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지니의 이탈리아 종단 자전거 여행 20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