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이탈리아 종단 자전거 여행 22일 차

by 존과 지니

2025년 10월 9일(목)

[26일 차] Lecce ~ Brindisi 68km / 누적 거리 1,945km



호텔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뷔페식 조식이다. 사람이 많아서 미처 사진을 다 찍지 못한 음식들을 몇 번이고 가져와서 대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어제 레체(Lecce)로 들어왔던 공항 옆길이 괜찮아서 다시 그 도로를 타고 동부 해안으로 나갔다. 레체 공항은 수년 전부터 이미 운영을 하지 않아서 차들은 거의 옆의 큰 도로를 이용하고 여기는 차들이 뜨문뜨문 다녀서 노면도 좋다. 어제 강풍경보가 종료된 이후로 확실히 바람이 줄긴 했다. 며칠간 누가 뒤에서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참을만한 맞바람이다. 가는 길은 바다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차라리 이게 낫다. 게다가 오늘은 자전거 여행자 부부, 동네 로드 오빠, 차 운전하는 아저씨까지 모두 인사를 잘해줘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딜리다가 좀 쉬고 싶어서 마을 방향으로 빠져나갔더니 바다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는 카페에서 라떼마끼야또와 코카제로를 주문해 놓고 존에게 톡으로 연락을 시도했다. 갑자기 기어 변속이 잘 안 되는 이유를 묻고 나서야 뒷변속기와 연결된 케이블의 겉피복이 터져버린 걸 알게 되었다. 고질적인 문제라 존이 1년에 한 번씩 교체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체인오일, 튜브의 공기압, 타이어 교체, 브레이크 패드 등 모든 관리를 존이 매일 같이 하고 있었다. 난 그냥 타기만 해서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줄 몰랐다.


주문한 커피와 음료가 나왔는데, 테라스의 테이블은 사람이 앉아있는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보수 중이라 앉을 곳이 없었다. 바로 앞 광장의 벤치에 앉아서 마시는데 다른 자전거 여행자가 옆에 앉았다.

"나도 앉아도 돼?"

아주 많은 짐을 지고 다니는 영국 여행자는 동유럽까지 아주 온 나라를 몇 달간 들쑤시다가 이제야 이탈리아를 달리고 있다...

"너 짐이 진짜 가볍네?"

'난 캠핑 절대 안 해. 저거 다 못 가지고 다녀'

"그럼 맨날 숙소 잡아서 자는 거야? 그거 비싼데.."

'난.. 뭐, 그냥 한 달이잖아"

영국인이 내 앞에서 이탈리아 물가를 논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음료를 다 마신 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출발했다.


오늘 브린디시(Brindisi)까지 가서 그곳에 있는 자전거 수리점을 들러야 한다. 날이 맑아지고 기온이 차츰 높아지니 맞바람을 타고 온 벌레들이 자꾸만 얼굴에 부딪힌다. 그래도 모래가 싸대기로 날아오는 어제보다는 훨씬 낫다. 발전소와 노란 멜론이 있는 밭을 몇 개나 지났다. 변속을 거의 못하고 달렸지만 시간이 낭낭해서 그냥 천천히 갔다. 무리하게 변속을 시도하니 체인이 끊어질 것 같은 소리가 나기도 했고..


브린디시(Brindisi)에 도착하니 바다에 큰 크루즈가 떠 있다.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서 라떼마끼야또와 작은 햄치즈빵 두 개를 점심으로 먹고 숙소를 예약했다. 해가 따뜻해서 정면으로 맞고 있자니 온몸에 온기가 돌았따. 리모네타라는 새로운 레몬소다도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체크인 시간이 돼서 숙소를 찾아갔더니 호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큰 이 숙소는 무려 세탁기가 있다. 넘모 햄복해.. 어제 늦게 잤던 게 좀 피곤해서 소파에서 30분가량 낮잠을 잤다.


자전거 가게는 1시에 잠시 문을 닫았다가 5시부터 다시 열기 때문에 4시 반에 숙소에서 출발했다. 여긴 구시가지에 있는 숙소라 근처가 모두 돌바닥이다. 신발이 미끄러질 수 있어서 자전거를 끌고 살살 걸어갔다. 1km도 안 되는 거리라 너무 일찍 도착해서 20분이나 기다렸다. 문을 열 시간이 가까워지니 나처럼 수리가 필요한 자전거를 끌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몇 명 더 늘었다.


다행히 정시에 문을 열어서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갔다. 아저씨는 레버가 이상하다면서 고무후드를 뒤집어까고는 기름만 잔뜩 뿌리고 있다. 케이블을 봐달라니까요? 아저씨는 영어를 못하고, 쿨시크한 아주머니가 짧은 영어로 나와 소통하며 내용을 전달해 줄 뿐이었다. 나가있으라고 해서 밖에서 한참을 기다렸더니 테스트를 해보라고 내 자전거를 가지고 나왔다. 변속이 잘 되길래 원인을 물어보니 피복이 터지다 못해 케이블이 거의 끊어진 걸 가져와서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그러게 처음부터 그걸 봐달랬잖아요... 저러니까 레버가 낭창거리지!! 존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수리를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15유로에 케이블 교체와 피복 보강을 완료해서 기분이 한결 낫다.


숙소에 자전거를 가져다 두고, 얼른 바닷가로 나갔다. 노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에 항구를 걸어가니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길거리에는 각종 식당과 카페가 반짝반짝 빛난다. 시내 중심가로 걸어갔더니 아까 체크인 전에 쉬었던 카페가 나왔다. 어쩐지 사람이 많았다.


예쁜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걷다가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봐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곳의 생맥주는 아주 시원했고, 안티파스티는 먹고 싶은 모든 메뉴가 조금씩 다 나와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직원이 통치즈를 내 앞에 가져와서 즉석으로 만들어준 치즈휠 파스타, 카치오에페페(Cacio e Pepe)도 풍미가 그득했다. 손님들이 사진/영상을 찍어주는 것이 익숙한지, 아저씨는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멈추지 않았다. 이 식당의 따뜻한 친절함 덕분에 돌체도 주문했다. 여기엔 판나코타가 있으니까...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니 또다시 입을 옷이 없다. 내일부터 어느 루트로 갈지 계속 고민 중이다. 바리(Bari)로 바로 가기에는 시간이 좀 남아서 내륙을 잠시 둘러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