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0일(금)
[27일 차] Brindisi ~ Alberobello 84km / 누적 거리 2,029km
오늘의 조식은 역대급으로 부실하다. 보통 젊고 마른 여자가 호스트로 있는 숙소는 이런 경우가 많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서 초코가 들어있는 싸제빵 3개를 겨우 먹고, 마무리로 슈가제로 주스를 마셨더니 끝이다. 페페에게 오늘 알베로벨로(Alberobello)에 간다고 톡을 했더니 가는 길에 오스투니(Ostuni)도 들러보라고 한다. 계획에 없던 곳이라 준비를 다 한 상태에서 30분 정도 들여서 지도를 한참 찾아보고 출발했다. 그 사이에 배는 다 꺼져버렸다.
대도시의 진출입로는 항상 복잡하다. 차가 엄청 막혀서 매연을 계속 맡으며 기다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자전거를 끌고 인도로 올라갔는데, 차들은 기찻길 밑 굴다리에서 신호를 받아 교대로 통행하고 있었다. 이러니까 막히지... 바닷가로 빠져나오니 차량 통행이 훨씬 줄어들었다.
지금 달리는 도로는 고속도로 바로 옆에 붙어있다. 로드 아재들도 종종 다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인사를 해준다. 노면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차피 이 길이 아니면 갈 수 있는 곳도 없다.
저 멀리 하얀색이 가득한 오스투니(Ostuni)가 보인다. 언덕이다.. 쉬거나 보급하러 동네를 들르려면 도로에서 벗어나 마을로 일부러 들어가야 하는데, 거리를 단축하기 위해 계속 달렸더니 그 부실한 아침을 먹고 50km나 달렸다. 저 하얀 건물들은 문화재 쯤으로 생각해서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을 중심가의 광장이 그곳에 있어서 결국 올라가게 됐다. 아 배고파...
오스투니 마을 입구부터 관광버스와 렌트카가 잔뜩 있더니 사람들이 이곳 중심가 광장에 다 모여있는 것 같다. 뭔가 느낌이 오는 풀리아식 식당의 테라스에 앉았다. 풀리아에서 유명하다는 홍합밥을 골랐는데 제철이 지나서 지금은 안 된다고 했다. 그거 먹으려고 간 건데... 다른 건 거의 빵 종류라 타파스와 오늘의 수프를 주문했다. 단호박수프는 짠단의 균형이 아주 예술이었는데, 타파스는 빵이 너무 딱딱한 게 나와버려서 먹기 힘들었다. 위에 내용물만 긁어먹으니 짜고.. 차라리 문어버거를 먹을 걸 그랬나. 치아 교정을 하고 있으니 딱딱한 식감을 피하기 위한 음식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식당이 많은데 좀 아쉽다.
오스투니(Ostuni)에서 벗어나는 길도 가파른 업힐을 올라가야 했는데 아주 좁은 일방통행 도로라 뒤에 자꾸 차가 밀려서 그냥 끌고 갔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끌지 말고 타고 가라고 했다. 아저씨가 타보세요...
내륙으로 들어온 뒤 자잘한 업다운이 계속됐는데, 어제 자전거 수리점에 다녀온 뒤로 아침부터 변속이 매끄럽지 않은 것 같다. 존에게 연락을 하니 사진을 보내줘서 혼자 조정을 시도했다. 풀리를 두 바퀴 반이나 돌리고 나서야 변속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전 내내 찌그덕거리면서 온 것 때문에 짜증이 났었는데 진즉 점검했어야 했나 보다. 자전거 수리점 아재의 실력이 걍 그런 것 같다. 레버에 잔뜩 묻혀 놓은 오일이 아직까지도 묻어나는데, 지금은 고무후드가 완전 찢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15유로만 받은 건가;
페페가 들러보라고 추천해 준 로코로톤도 (Locorotondo)에 도착해서는 영업 중인 카페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지도에 나온 곳을 찾아가도 모두 문이 닫혀 있길래 젤라또 가게에 겨우 들어가서 레몬소다와 코카제로를 주문했다. 오늘은 날씨가 더워서 빨대로 2-3번 흡입하면 음료가 없다. 그래서 커피 그라니따를 추가로 먹었는데, 얼음은 거의 없이 진하게 녹아있는 아이스크림 맛이었다. 젤라또 가게라 그런가 이게 제일 맛있다. 다 먹고 나오니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알베로벨로(Alberobello)는 트룰리라는 고깔 모양의 회색 지붕에 하얀 벽으로 된 건물이 유명하다. 알베로벨로로 가는 길은 SS 도로라서 옆의 샛길을 탔는데 군데군데 이미 트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 입구에는 공사 구간이 있어서 차는 통과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 사람은 다닐 수 있게 길을 내놔서 거기로 자전거를 살살 끌고 갔다.
숙소에 도착해서 호스트에게 전화를 하니 15분 내로 온다고 했다. 바로 옆 식당에서 페로니 레드 작은 병을 하나 마시고 왔더니 호스트가 급히 뛰어왔다.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만 있는 4층의 숙소인 줄은 몰랐네..
1층 창고에 자전거를 넣어두고,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갔다. 오늘 숙소는 5-6인 가족이 머무를 수 있을 만한 넓은 곳인데, 조식포함+평점높음+세탁기있음+가격저렴 등의 이유로 어제부터 찜해놨다가 예약한 곳이다.
일단 세탁기를 급속으로 돌리고 샤워를 했다. 트룰리 마을을 구경하려면 얼른 나가야 하는데 이 나라의 세탁기는 몇 분 남았는지 나오는 화면이 없다. 자전거 옷은 빨리 말라서 나중에 널면 되니 일단 나갔다. 숙소는 아주 완벽한 위치에 있는 덕분에 트룰리 마을까지는 걸어가니 금방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정말 스머프 마을 같아서 귀엽다. 요리조리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다들 사진 찍느라 바쁘다. 여름이 아닌데도 많은 관광객이 있다. 알베로벨로(Alberobello)에 와서야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한국사람을 봤다.
식당이 여는 시간을 맞추려고 해 질 무렵까지 돌아다녔는데 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니 또 다른 멋이 있다.
트룰리만 촘촘하게 밀집해 있는 구역은 생각보다 넓지 않아서 주변까지 돌아다니다 보니 전망대라는 곳을 발견했다. 고도가 높지 않고 나무가 앞을 가리지만 지붕이 모여있는 모습은 색다른 풍경이었다. 한국사람들은 엄청난 전망 포인트를 잘 알고 찾아가던데, 슬리퍼 밖에 없는 나에겐 사실 이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숙소에 잠시 들어가서 아까 돌려놨던 빨래를 꺼냈다. 빨랫대도 없고, 적당히 걸만 한 곳이 없어서 등에 옷걸이를 걸어놨는데 호스트가 이걸 보면 참 싫어할 것 같다. 집이 좀 추워서 난방을 켜놨다. 이곳은 냉난방기뿐 아니라 각방의 라디에이터를 중앙난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 아주 귀한 숙소다.
호스트에게 추천받은 식당과 트립어드바이저에 구글까지 보며 고심고심 끝에 식당을 골라서 다시 나갔다. 그런데 금요일&관광지 버프로 예약을 안 하면 자리가 없다고 두 군데 다 퇴짜를 맞았다. 혹시나 몰라서 두 곳을 골라놨었는데...
지나가다가 우연히 막 열고 있는 식당을 들어갔다. 다들 나처럼 식당 여러 군데를 들렀다 왔는지, "N명이고요, 예약은 안 했어요. 식사할 수 있나요?"라는 말을 했다. 나도 들어가서 부라타 치즈, 홈메이드 파스타, 안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트룰리로 지어진 식당 내부를 살펴보니 왠지 흥미로웠다.
풀리아에 들어온 이후에는 식당에 가면 빵과 함께 타랄리라는 이 지방 전통 과자가 같이 나온다. 스낵을 냠냠 먹으며 기다리니 정어리를 올린 부라타 치즈와 토마토 베이스의 파스타가 나와서 괜찮게 먹었다. 마지막 안심 스테이크는 미디엄 레어보다 훨씬 더 익혀 나와서 직원을 불러서 얘기했더니 영어를 잘 못해서 미디엄으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새로 해서 가져다준 안심은 내가 원하던 완벽한 굽기로 나왔지만 질긴 힘줄이 포함된 부위가 많아서 반도 못 먹고 그냥 나와버렸다. 게다가 61유로가 나온 걸 67유로로 잘못 계산한 걸 내가 발견해서 취소하고 다시 결제를 해야 했다. 이건 완전히 사장의 실수 같았지만 스테이크 때문에 이미 마음이 상해서 기분은 별로였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의 트룰리 마을을 보고 싶어서 다시 걸어갔는데, 상점은 모두 닫고 사람들도 별로 없길래 조금 걷다가 말았다. 오늘 라떼마끼야또를 한 잔도 못 마셨는데, 식당도 걍걍이라 디저트 메뉴는 보지도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젤라또집 한 군데를 들어갔는데, 곧 닫아야 해서 커피머신을 다 닦았다고 커피 종류는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카페를 가볼까 하다가 또또 거절당하면 마음 상할 것 같아서 고민했다.
숙소를 조금 지나 성당 앞까지 걷다가 결국 그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10시에 닫는다고 괜찮냐고 한다. 지금 시각은 9시 52분.
'네, 주세요~ 먹고 갈게요!'
라떼마끼야또와 쿠키를 하나 주문해서 호로로로록 5분 만에 먹고 계산하려니 직원이 너무 미안해했다. 괜찮아, 난 진짜로 커피를 마시러 온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