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우리 집에 왔다
엄마가 이해 안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나도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 모를 때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엄마는 내 뿌리여서 막강한 영향을 끼쳤지만, 다 한때라는 것을.
나르시시스트는 익숙했지만,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또 뭔가 싶었다. 1980대 후반 심리학 문헌에서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은밀한 게 특징이다. 겉으로는 착하고 여려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묘하게 상대를 힘들게 하는, 고도로 진화한 형태의 자기애적 성격 특징을 가진 사람.
안타깝지만, 엄마가 그런 유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유형의 엄마에게서 자란 딸이 바로 나다. 내 나이 40대 후반. 코웃음이 나온다. 심리학이 무슨 대수인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증상들을 얼기설기 엮어 엄마를 규명하려 한 내 무지가 부끄럽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저런 자폐증세, 분열증세, 나르시시스트 증세 없이 사는 사람 있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감정을 숨긴 아이'가 어른이 된 모습, 이건 뭐. 해당 안 되는 사람이 없잖아. 1980년대 후반에 생긴 용어라면, 그때는 참신했을지 몰라도 이젠 낡았다. 무시해도 될 만큼 흔한 증상이라는 이야기다.
심리학적 프레임, 껍데기는 가라!
엄마는 지금 우리 집에 와 있다. 예전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겁먹은 아이의 표정을 하고 미안해하는 모습으로 섰다. 엄마와 나의 에너지 구도는 180도 바뀐 것이다. 여기서 엄마와의 과거를 끄집어내는 건 비열한 짓이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 했던가. 상황이 속삭였다.
'이제부터 역학관계 설계자는 너야.'
나는 엄마에게 '과거의 딸'이 아닌 '현재의 딸'로 있기로 했다.
실타래가 한참 얽히려 했을 때를 지나 그저 뭉치로 남겨진 자리. 다시 그려볼 우리만의 시간과 공간.
평생 이런 기회는 없을 줄 알았는데, 생겼다.
"엄마, 애기들 방인데 청소해 놨어. 여기서 지내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