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티슈 어딨노

엄마의 습성

by 스쿠피

묵묵히 엄마를 잘 보살피기만 하면 된다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랑 있다 보니 틈틈이 사진 찍게 되었다. 단순한 놀이나 행동 하나도 무언가의 끄나풀이 되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법. 나를 포함하여 4남매 모두 각자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본다. 게다가 조금씩 엄마를 닮았고, 엄마와 다른 '내현적 개성'을 지녔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피하기 위해 '믿고 보는 공용 렌즈 확보'는 필수다.


내 의도가 왜곡되지 않기 위해 객관화할 수 있는 자료를 축적하기로 했다. 그동안 엄마의 필요에 의해 4남매는 괜한 오해와 이간질을 수도 없이 겪으며 이용당했다. 서로 말없이 세월만 믿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는 미덕은 동화 속에나 있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긋지긋하다.


엄마가 일상생활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공유할 만한 건 이런 거였다. 우선, 엄마는 5일 동안 내가 먼저 깨우지 않으면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다. 밥 반 공기 먹는 것도 힘들어했다. 식탁 앞에 앉아 겨우 밥 먹고 약을 먹으면 다시 방으로 기어들어 가려했다. 나는 말없이 엄마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고, 옷도 갈아입히지 않은 채 롱패딩을 둘렀다. 엄마 방에서 두 걸음이면 현관이다. 두툼한 수면양말에 방한 운동화를 신기고 지팡이를 손에 쥐였다.


"엄마, 힘들지? 산책 나가 볼까, 잠깐만?"


엄마 표정이 심상치 않다. 불쾌하면서도 쓴소리 할 기운이 없어 일그러진 표정이다.


"내 좀 누워 있으면 안 되겠나. 꼼짝도 하기 싫다!"


엄마의 습성이 느껴졌다. 짜증스러운 말투. 어리광도 아니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네가 어디까지 나를 구슬려 볼 수 있는지 해 볼 테면 해봐라. 나만큼 아파보지도 못했으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네가 알기나 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싶은 어른'이라.


"꼼짝도 하기 싫지. 그러니까 나가야지. 집에 몇 년 동안 혼자 귀찮다고 누워 있어 봤잖아. 누워 있으면 끝도 없지. 그래서 여기와 있잖아. 혼자 아니니까 엄마 데리고 내가 나가야지. 차만 타면 바로 코 앞이 공원인데. 시간 재 봐. 10분만 햇빛 쬐고 바로 들어온다. 자, 여기 마스크."


모든 손길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엄마의 에고가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단호하게 말하며, 엄마 옆구리에 손을 넣고 일으켜 세웠다. 현관은 열려 있고, 엘리베이터는 눌러졌다. 루틴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모른다. 이 사소한, 작디작은 '연결고리 행동'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를.


역시 엄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 말만 골라 꼬드겨서 차에 태우는 내가, 견딜 만했나 보다. 다시 되새겨 본다.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는 상태로 평생 살아온 사람이다. '단 한 명이라도 알아주는 이 없어 불쌍하고 서러운 삶'이라는 프레임은 고정불변의 상수가 된 지 오래다.


엄마가 혼자였을 때, 루틴이 엉망이었다고 치자. 내 집에 머무는 동안, 내 루틴을 기둥 삼아 엄마의 루틴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점검할 수 있게 해야 했다. 말로만 '바쁘다'던 딸이 실제로 어떻게 지내는지 엄마에게 보여줄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5~6시에 기상. 엄마가 온 이후로는 이 시간에 요리를 한다. (엄마 오기 전에는 명상-운동-일기-독서였다) 7시 신랑 출근. 8시 아이들 등교. 8시 30분에 엄마 혈당 체크 후, 아침식사는 9시 전후로 시작한다. 이때 4남매 단톡방에 엄마가 아침 먹는 사진부터 올린다.


1. 엄마 아침 먹는 사진->2. 산책하는 활동 모습->3. 점심 먹는 사진->4. 저녁 먹는 사진->5. 만다라 차트 그림활동 결과


5일 정도 일관성 있는 사진과 꾸준한 업로드로 나도 엄마도 안정을 되찾았다. 엄마가 오면 공들인 내 루틴이 분산될까 봐 긴장도 했었다. 또 예전처럼 내 집에서 엄마랑 싸우게 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싸우지 않았고,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며 조심스럽게 배려했다. 5일 동안은.


6일째 되던 날이었다. 엄마의 옛날이야기와 느린 행동이 내 삶의 속도와 차이 난다는 걸 감안하고 있었지만, 5일 동안 쌓인 '나만의 피로감'이 신호를 보내왔다. 조금씩 엄마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는 밀착 루틴에서 물러날 시간이었다.


엄마가 더 걷지 못해 공원에서 자주 주저앉는 걸 보고 캠핑의자를 마련했다. 같이 주저앉아 이야기했던 5일을 뒤로하고, 6일 차 캠핑 의자에 엄마를 앉혀두고 나는 30분 동안 먼 길 산책을 했다. 한결 나았다. 엄마가 공원에서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공간만 고집하며 번번이 맨바닥에 누우려 했던 5일. 6일 차 양지바른 곳에 돗자리를 펴고 같이 누웠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10분 정도 있더니, 엄마가 '이렇게 누워 있을 때가 아니다'며 먼저 일어나자 했다.


6일 차 저녁 준비를 하려고 부엌에서 내가 움직이니 엄마가 식탁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물티슈 어딨노."


왜 그러지. 조용히 건넸더니, 말없이 얼룩진 식탁의자를 닦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내가 낮에 아이들 학원 픽업하러 나갔을 때 방문도 닦아 놓았고, 베란다로 향하는 문 틈, 싱크대 하부장 얼룩까지 닦아 놓았단다. 쉽게 닦이지 않더라, 묵은 때가 왜 이리 많은지, 닦으면 다 새 물건인데 등등.


엄마가 내 집이 편해서 나오는 잔소리라면 반가운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참 기분이 묘했다. 아무리 잔소리처럼 보여도 곧 엄마의 권위로 이어지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졌었지. 고분고분하게 호응하며 들어주지 않으면 곧 역정을 낼 텐데. 엄마의 불변 시나리오가 다시 시동을 거나. 엄마의 뇌 회로는 다른 대안이나 전략은 없는 건가. 엄마 뇌의 융통성 평수가 너무 비좁군.


"엄마 주변사람들 중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야? 그 사람 이야기 좀 해 봐."


"그런 사람이 어딨노. 없지! 아무도 내 속 모른다."


옛날 같았으면 한숨 지었을 대목에서 나는 빵 터졌다. 마치 안타를 날린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직도 엄마는 '소심하고 끈질기게 잘난 척'이다. 이제껏 남 이야기를 빗대어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상대적 평가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졌으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늘 아쉬움이 커야 하고 지금도 안타까워야 한다. '그만하면 괜찮았고, 더할 나위 없이 충만했던' 관계 따위 없다.


엄마의 모든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것은 엄마 마음과 상대,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이므로. 엄마의 자아는 사실, 평생 젤리처럼 흐물거렸다는 것.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그 무엇. 그걸 정확히 보게 된 순간부터 지긋지긋한 굴레가 '그럴 수도 있지'로 바뀌어 버렸다.


"한 길 사람 속 모른다잖아. 아까 장 볼 때도 무장수가 무 골라 주면서 그러더라. 자기도 이렇게 골라 주기는 하지만 무 속을 내가 어찌 알겠냐고."


엄마 눈이 동그래졌다.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