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아들이란
힘없던 엄마가 되살아났다.
시들어버린 식물이 조금씩 보살핌 받고 재생하듯이.
엄마가 우리 집에 온 이후,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했다. 하루도 거스르지 않고 밥과 약을 챙겨 먹었다. 매일 만다라차트 그림을 그리며 작품활동하듯 공을 들였다. 어설프지만 엄마만의 루틴이 생긴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해도 결국 '어떻게 죽고 싶은가'였다. 아버지 죽음 이후, 외로움을 견딘 날들을 무한 회상한다. 그러다 보면,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결혼생활, 시집살이, 끝없는 고단함과 외로움으로 귀결된다. 내용보다 감정이 진하게 남았다. 우울감이 뒤섞인 채로.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40이 넘은 딸로서 엄마 인생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건대, 엄마는 불행하지 않았다. 엄마 스스로 불쌍하게 여기는 '내면의 소리'에 잠식되어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하긴. 누군들 그런 경험이 없겠는가. 벗어나기 전까지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게 자기 인생이거늘.
엄마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듣다가 '어떻게 죽고 싶은가'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숨죽이게 된다.
엄마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걸까.
안타깝게도 엄마는 모르고 있었다. 스스로 원하는 죽음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내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떤 마음을 내어야 할지.
'엄마도 잘 모르는구나. 그래서 계속 맴도는구나. 내가 아무리 귀 기울여도 이 문제는 완벽한 엄마 몫이구나.'
단 하나 긍정적인 게 있다면, 우리 집에 있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80이어도 정서적 독립은 힘든 엄마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그런데 말이다. 엄마는 남동생 이야기만 하면 숨이 멎을 것 같다며 헉헉거렸다. 엄마에게 모든 열과 성을 다해도 통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면,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엄마에게 맏며느리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만들어 준 구세주이자 깊은 슬픔의 원천이기도 했다.
한 번은 매우 사려 깊은 어투로 '남동생이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했더니 엄마가 돌변했다.
"시끄럽다! 그런 소리 하려면 이 방에서 나가라! 내 80 인생 허투루 살지 않았다! 어디서 나를 나무라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노쇠한 체력 어디서 그런 묵은 힘이 나오는지 불호령이 떨어졌다. 엄마의 깊은 감정. 한 맺히다 못해 설움에 분노, 두려움까지 파동을 타고 내게 전해졌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침실로 왔다.
"엄마 상태 보니, 남동생이 엄마를 죽이고 살리겠네."
그날 저녁. 묵직하면서도 담담한 내 말투에서 엄마가 살짝 눈치 보는 게 느껴졌다. 깊은 연민과 동정이 밀려왔다.
카톡!
1시간 후 큰언니와 조카가 함께 우리 집에 들른다는 메시지다. 엄마가 반색하며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이 절묘한 타이밍의 언니 방문이 무척 고마우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빙긋이 웃음 지었다.
엄마의 사진을 단톡방에 올릴 때마다 남동생은 줄곧 말이 없다. 가장 어리고 도도한 느낌. 누나 셋이 너무 물러서 답답하다며, 누나들이 엄마를 망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동생.
남동생만의 맥락과 입장이 있을 거라 여긴다.
그걸 알고 있는 우리와, '아들이 내게 그래서는 안된다'라고 굳게 믿고 있는 엄마의 한계다.
어쩌면 동생은 '귀하고 어린 장손 아들'이라 해서 딱히 배려나 존중받은 게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성가신 집안일들과 어쭙잖고 낡은 가치에 부응하는 일이 너무 비효율적이라 자신의 삶이 '족쇄'나 '굴레'같다고, 이럴 거면 뭐 하러 아들, 아들 하면서 자신을 낳았나 싶을 것이다.
엄마에게 아들은 딸과 존재의 무게가 다르다.
당신도 알고 있지만, 스스로 까다롭다는 걸 알기에 세 딸들에게 힘껏 기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낯부끄럽고 민망하더라도, 아들보다는 딸이 나으니까. 아들에게는 절대 이해받지 못하는 걸 딸들은 알아주니까 의지하며 체면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살아온 대로 똑같이 반복하는 삶이라고, 동생은 생각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지금은 말이다.
엄마가 사경 헤맨 충격을 딛고, 가까스로 기운을 차리는 중이다.
휴전 후, 냉전으로 접어들더라도 잘못한 이는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