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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내가 살아가는 이유

다시, 나를 쓰기 시작했다

by 정유선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느꼈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멈춰 섰다.
몸은 아팠고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말을 건네는 일도,
하루를 계획하는 일도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왜 살아야 하지?”
그 물음은 입안에서 오래 맴돌았다.

어느 날,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하얀 종이 위에
감정도, 생각도, 의미도 없었다.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무너진 나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조금씩 단어가 살아났고,
문장이 감정을 따라 흘렀다.
사소한 기억 하나도 글로 적으니
무의미했던 하루가
조금은 빛을 머금은 듯했다.

기록은 곧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감정을 정리하고, 상처를 꺼내어 바라보며,
그저 ‘존재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나는 글을 쓰며,
세상과 조용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고,
그 이야기를 글로 담아냈다.
그들의 웃음, 손끝, 주름진 눈매…
그 작은 장면들이 내 안에 잊고 있던 삶의 감각을 깨웠다.

편집을 하고, 내레이션을 녹음하며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보냈다.

조회 수나 반응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기록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이 일이 ‘돈이 되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길을 택한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고,
지금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록은 나를 살렸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를 전하는 힘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새벽이면 원고를 쓰고,
낮이면 카메라를 든다.
말수가 적어진 대신
글과 영상으로 마음을 건넨다.

나는 살아간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누군가의 삶을 담는 동안,
그 모든 시간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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