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면 밥상이 아닌 식탁에서 밥을 먹기로 다짐했다. 자취를 할 때는 집이 좁아서 조그만 책상을 하나 두었는데, 책상에서 밥을 먹는 건 혼자서도 반찬을 여러 개 꺼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의자도 하나밖에 없어서 누군가 오기라도 한다면 밥상을 펴야 했다. 그리고 그 밥상 또는 1인 가구에 맞춰진 것이어서 음식을 많이 올려놓지는 못했다.
내가 쓰던 밥상에 꾸역꾸역 접시를 올렸다.
나의 나이 드신 부모님은 관절이 좋지 않으셔서 바닥에 앉았다가 일어나기 힘드셨다. 특히 아빠는 그 때문에 이사하는 날 이외에는 내 집에 한 번도 오지 못하셨다.
좌식생활보다 입식 생활이 관절에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사 가면 꼭 입식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외가 식구들이 모두 뼈와 관절이 약하기 때문에 나도 이제 신경 쓸 나이였다. 그래서 필수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것이 식탁과 의자이다. 혼자서 밥을 먹기 위해서는 2인용 식탁만으로 충분하다.
식탁을 고르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기왕이면 좀 더 넓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식탁에 가스버너를 놓고 음식을 해 먹으면 국물요리를 따뜻하게 먹을 수도 있고, 고기를 구워서 바로 먹을 수도 있고, 샤부샤부처럼 요리를 하면서 먹는 음식도 먹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갑자기 거실에 나와 글을 쓰고 싶어지면 식탁에서 글을 쓸 수도 있다.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사람들을 초대했을 때이다. 우리 가족들이 내 집에 다 같이 올 일은 한 번도 없었지만, 집이 넓어지면 앞으로는 일어날 일일지도 몰랐다. 특히나 내가 살게 될 집은 나의 조부모님의 댁이었기도 하고, 옛날에 우리 가족이 함께 살았던 집이기도 했으니까.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서 건, 주변에 놀러 와서 건 언제든 내 집에 놀러 오지 않을까?
평소에 내가 집에 가장 많이 초대하는 대학교 친구들도 한두 달에 한 번은 우리 집에서 만났다. 5명이 제일 친한 동기들인데 다른 동기들도 친하기 때문에 집에 놀러 올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을 위해 6인용 식탁과 의자를 대여섯 개 구매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 같다.
회사 동료 선생님들도 집에 가끔 왔었는데 모두 좁은 자취방 바닥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한 명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여러 명이 자리를 비켜줘야 하기도 했다. 의자에 앉아 놀 수 있다면 훨씬 편할 것 같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모임이다 보니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필요하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오래 앉아서 놀면 등받이에 기대고 싶어 지는데, 술을 마지면 더더욱 필요하다. 편의와 안전상의 이유로. 결론은 4인용 식탁과 의자는 놓자는 쪽으로 이르렀다.
내가 볼 때 소라는 완전 I(내향적)는 아닌 것 같아.
회사 동료가 MBTI를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해준 말이다. 그때는 그냥 별 고민 없이 흘렸는데, 혼자 사는 나인데 의자를 몇 개 구매할까 고민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진정한 I(내향적)가 맞는가 의문의 들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내향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대학 동기들 모임에도 출석률이 좋고, 회사 동료들과도 잘 지내는 것을 보면 헷갈리기도 한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혼자 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생각보다 혼자 살지는 않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사실 나도 사람을 좋아하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근데 혼자 있는 게 너무 편한 건 또 사실이고. 나도 나를 잘 모를 때가 많다.
나는 엄마가 지어준 이름처럼 "소라"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홀로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가 잠자듯 고요히 있는 사람. 그 껍질은 나에게 거의 집을 때가 많았고. 그런데 나도 모르게 가끔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아니면 다른 이들을 껍질 안으로 초대하면서 살고 있었나 보다.
어쨌든 가족과 친구들, 회사 동료들도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 그것은 의자의 개수를 고민하면서 확실이 깨달았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집이 아니라 남을 위한 자리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부엌이 생각보다 좁아서 식탁을 거실에 놓기로 결정했다. 거실은 아마 나보다는 타인을 위한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침실에 있는 물건들과는 다르게 식탁마저도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식탁을 이것저것 고민했는데 역시 원목이 제일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철제로 된 건 따뜻한 느낌이 덜하고, 칠이 벗겨질 수도 있어서 내 취향이 아니었다. 집의 몰딩과 창이 어두운 갈색이어서 밝은 느낌의 식탁을 골랐다. 식탁의 상판은 집안이 밝아 보이게 흰색으로 택했다. 전체가 원목으로 된 식탁도 고민했으나, 세라믹 재질이 열과 흠집에 강하다고 들어서 상판이 세라믹으로 된 식탁을 구매했다.
식탁사진/ 식탁에서의 첫 식사
하얀 식탁은 아무거나 올려놔도 잘 어울려서 만족스럽다.
의자가 생각보다 꽤 비싸다. 내가 원하는 의자들은 대부분 10만 원이 넘었다. 원목으로 되어서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편한 의자. 하나를 사기에도 아깝다... 등받이는 술자리를 위해 절대 포기 못하지만 팔걸이 정도는 봐줄 수 있다. 그래도 개당 5~10만 원 정도는 줘야 했다. 그래서 접이식 의자와 원목의자를 혼합해서 사기로 결심하고 일단 마음에 드는 원목의자를 1개만 구입해봤다.
원목 의자
의자는 원목과 실로 만들어진 제품을 골랐는데, 실물이 너무 예뻐서 대만족이었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예쁘고 편하고 식탁과도 잘 어울렸다. 혼자 쓰기에는 정말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딱 내 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큼직해서 1인 소파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하나가 더 있으면 좀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팔걸이가 식탁 아래로 들어가지 않는 높이여서 의자 두 개가 톡 튀어나와 있으면 이상할 것 같았다.
요즘은 의자를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배치하는 경우도 많다. 접이식 의자는 심플한 투명 플라스틱 의자로 했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이게 그나마 저렴했다. 쓰지 않을 때에는 방에 보관해서 거실을 더 깔끔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부엌에 놓으라는 조언을 해줘서 배치했더니 생각보다 편안하고 예뻤다.
투명의자/ 부엌에 배치한 의자
투명 접이식 의자의 느낌도 너무 좋아서 하나 더 살까, 원목의자를 하나 더 살까 고민됐다. 1인 가구에 의자 욕심이 이렇게 많다니... 돈도 돈이고, 마음에 쏙 드는 의자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내가 원룸에서 쓰고 있는 책상 의자가 떠올랐다. 손님이 왔을 때는 그 의자를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그리고 부족하면 살면서 하나 더 사야 되겠다.
식탁과 의자가 들어오니까 집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엄마는 가구는 집 안을 화장하는 거라고 했다. 집이 더 화사해지고 분위기가 생겼다. 식탁과 의자가 집에 처음 들여온 가구였는데, 앞으로 변할 집이 더 기대가 되었다. 내 집은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어떤 인상을 주게 될까?
거실
4인 이상의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를 대비해서 넓은 접이식 좌식 테이블도 사기로 마음먹었다. 좌식 테이블 사이즈로도 고민했는데, 평소에는 침실에서 혼자 사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너무 크면 불편할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물어본 결과, 원래도 작은 밥상에 둘러앉아 먹었는데 사이즈가 좀 작아도 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인과 남들 사이에 타협을 봐서 800mm짜리 접이식 테이블을 샀다.
좌식테이블
원래 방석도 두 개밖에 없었는데 두 개 더 구매했다. 원룸에 살 때는 너무 나만을 위한 집이었는데, 새로운 집에서는 다른 사람도 편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이다. 어느새 내 사회생활이 내 개인적인 집 안으로 기어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