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라 Feb 21. 2022

침실은 또 다른 집

서른 하나에 만난 할머니의 오랜 집 10

 침실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원룸에 살 때는 '침실 = 집'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가족들과 함께 살 때도 나는 내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잠을 오래 자는 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일을 침대에서 하는 걸 좋아한다. 공부도, 독서도, 글쓰기도, 영화 시청도, 심지어 간식 먹는 것도 침대에서 하는 게 좋다. 내가 반수(대학을 한 학기 다니고 다시 수능 공부는 하는 것)를 하고 난 뒤, 엄마는 침대가 꺼졌다며 침대부터 바꿔줬다.

 이사하면서도 가장 먼저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게 침대 프레임이었다. 침대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헤드가 없는 침대를 써왔다. 침대 헤드가 없으면 앉아있으면서 매트리스와 프레임을 계속 밀게 된다. 그래서 침대가 점점 앞으로 나간다. 프레임을 싼 걸로 샀더니 4년 정도 쓰니 틀이 틀어지기 시작해서 얼른 헤드 있는 침대를 사기로 결정했다.

 침대는 갈빗대 상판보다 통으로 된 상판이 매트리스의 하중을 더 잘 받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침대의 원목 통으로 된 상판과 로봇 청소기가 들어갈 수 있게 바닥에서부터 침대까지 높이가 10cm가 넘는 것으로 골랐다.

침대 프레임만 들어온 침실

 이 프레임이 내가 침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잘 견뎌줘야 할 텐데.


 침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아늑함이 있다. 방이 여러 개가 생겨도 역시나 내 활동범위는 침실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 같다.

TV도 침실로 가지고 들어오게 되면 완전 무장 상태가 될 것 같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출출하면 침대 앞 좌식 테이블에 앉아 간식을 먹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겨울이면 침실에만 보일러를 틀고 월동을 지낼 것 같다. 자신의 집에 먹이를 비축해두고 반수면 상태로 있는.


 어릴 적 언니와 자기 전에 하던 놀이가 있다. 언니와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한방에서 같이 잤는데, 방은 우리만의 작은 오두막이었다. 아이들 방이라 그랬는지, 우리들의 방은 거실과 다른 방들보다 더 따뜻했다. 부엌에 간식을 가지러 갈 때도 우리는 오두막에 둘만 사는 자매처럼 역할극을 했다.


"언니가 음식 구해올게!"

"언니, 위험하니까 조심해!"


 그때 우리들의 방은 안전지대였고 부모님이 끼어들지 못하는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소중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버릇은 고칠 수가 없는지, 무서우면 가장 먼저 침실로, 이불속으로 숨어든다. 무서운 이야기를 듣거나 떠올랐을 때, 침실 밖은 순식간에 위험한 공간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침실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게 대비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침대가 있고, 내가 놀이 상대가 될 TV, 읽을 책들과 책장, 먹고 글을 쓸 수 있는 접이식 테이블, 잠옷이 있는 코지 한 공간으로 꾸몄다. 이제는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아서 쓸모를 잃은 책상은 화장대로 대신하게 됐다. 우리 집에서 용도가 가장 다양한 공간이자, 내 많은 게 속해있는 공간이다.

화장대와 책장이 있는 침실
침대에서 TV를 볼 수 있는 구조

 해가 잘 드는 집을 좋아하지만, 침실만은 언제든 숙면할 수 있게 암막커튼을 뒀다. 침대와 반대편에 있는 불을 끄기 위해 일어나지 않아도 되게 스탠드도 놨다. 협탁은 책을 꽂을 수 있도록 책장으로 두었다.


 침실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고 나는 온전히 나만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재미있게 어울리고 있어도 집에 가서 있을 나만의 시간을 기대하는 부류이다.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수적인 사람.

 방이 여러 개 생긴다는 것은 나와 남의 공간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기회이다. 침실을 보여주지 않고도 손님을 초대할 수 있기 때문에 초대가 조금 덜 조심스러워지지 않을까? 나는 집에 남자를 초대하는 걸 굉장히 꺼려하는데 아무리 친한 남자 사람 친구라고 해도 적용이 된다.

 집에는 여자들의 물건이 스타킹, 속옷, 생리대 등이 즐비해있고 그것들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내 집은 특히 그렇다. 나는 내 여성용 물건들을 숨길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불편한 상황 또는 오해할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남자를 최대한 초대하지 않는다. 간혹 기혼자를 여러 명이 올 때 같이 초대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침실과 거실이 분리된 후에도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침실이 더러워도 거실은 봐줄 만할 테니 좀 더 개방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나만의 공간은 나를 좀 더 여유롭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니까.

이전 09화 소파와 TV를 포기하고 어떤 거실로 만들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