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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Feb 14. 2022

소파와 TV를 포기하고 어떤 거실로 만들까?

서른 하나에 만난 할머니의 오랜 집 9

 나는 6년간 자취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TV를 가져본 적이 없다. 사고 싶은 적은 많았으나, 심지어 부모님 집에 할머니를 위해 산 TV도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시게 되면서 쓰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지만 가져오지 않았다. 일부러 안 둔 것은 아니고 집이 좁아서 굳이 화면이 큰 TV를 두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스마트 TV가 나왔고, 구형 일반 TV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의 플랫폼이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졌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면 거의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본다. 소리를 최대로 하지 않아도 집안 전체에서 다 들리고, 핸드폰은 빠르게 동영상을 틀 수 있어서 노트북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합정 집에서는 그래도 방이 두 개 있는 10평이어서 방에서 음악을 틀면 화장실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스피커를 사고 싶었지만, 원룸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연히 TV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묻혔고, 영화나 드라마도 더 안 보게 되었다.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하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이 이제 나도 소파와 TV를 놓을 거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TV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영화를 보곤 할 때면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그리고 소파는 원래 내 로망이었다. 푹신한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뒹굴거리는 것이.


 이제 로망을 실현한 공간이 생기니 들뜬 마음에 소파와 TV를 검색해봤다. 스마트 TV는 50만 원 이상, 소파는 20만 원 이상이었다. 최소 금액이 그 정도일 뿐 크기가 큰 TV는 70만 원 정도는 줘야 했고, 소파는 조금만 맘에 들면 백만 원이 훌쩍 넘었다. 누워서 다리를 뻗는 것이 가능한 소파를 보고 있었기에 2인용으론 안되고 최소 3인용 이상 이어야 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패브릭 소파는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여름에는 너무 더워 보인다. 가죽 소파는 정말 좋지만 너무너무 비싸다. 예산을 짜다 보니 한숨만 나왔다. TV를 보는 것을 상상해볼 때, 소파 있어야 될 것 같았다.


 소파와 TV를 합치면 100만 원은 잡아야 하니, "그냥 TV를 보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 돈만큼의 가치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언니는 70인치 스마트 TV를 사고 자기가 이사할 때 산 물건 중에 제일 잘 산 것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TV는 뉴스를 제일 많이 보는 나에게 보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도 했다. 또 TV가 있다 보면 오히려 TV를 더 많이 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걱정됐다. 부모님이랑 함께 살 적에 나는 TV 보는 걸 무척 좋아했으니까.


그래, TV 없는 거실을 만들자!

 

 살아보고 TV를 진짜 사고 싶으면 사자! 어차피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남편과 함께 볼 큰 TV를 사고 싶을 테니까 지금 사는 건 몇 년 못 쓸지도 모른다. 기술은 발전하니까 더 좋은 TV가 나오고, 지금과 같은 TV도 가격이 더 내려갈 것이다. 이렇게 돈이 많으면 하지 않았을 합리화를 했다.

 TV를 포기하고 나니 소파도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벽보고 소파에 앉거나 누워 있으면 지루하기만 할 뿐이니까. 나는 원래 집에서 활동범위가 침대를 잘 벗어나지 않았다. 누워있는 것은 침대에서 하면 되는 일이다. 침대를 두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 누워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TV를 진짜로 포기했는데, 부모님 집에 놀러 갔다가 언니가 거실 TV 뒤에 연결해놓은 선을 발견하였다. 언니에게 물어보니 노트북을 연결해서 게임을 했건 것이란다. 노트북을 연결할 수 있다면 핸드폰을 연결해서 스마트 TV처럼 볼 수 있지도 않을까? 인터넷을 다 뒤져서 연결 방법을 찾아보고 실행에 옮겼다. 다행히 내가 의도하는 것과 같이 구형 TV를 핸드폰과 연결해서 활용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나만 기술에 뒤쳐진 느낌이다.

 거실 TV에 핸드폰을 연결하니, 핸드폰 화면이 그대로 TV에 나오기는 하는데, 재생 버튼을 누르니 연동이 안됐다. 해상도 차이로 인해 호완이 안될 수도 있다고 한다. TV를 다시 포기하려는데 혹시나 하고 할머니방에 있는 TV를 연결하니 이게 웬걸, 연동이 되었다!

 할머니방에 있는 TV가 더 작아서 해상도 문제가 없이 연결되는 것 같다. 한 30~40인치 되는 것 같은데 거실에 놓기에는 작은 사이즈라 침실에 들여놓기로 결정했다. 크롬캐스트를 연결하면 핸드폰에 선을 꽂아놓지 않아도 와이파이로 연동이 된다고 한다. 정말 기술이 발전했다. 아, TV를 올려놓을 TV장은 하나 사야 되겠다. 이로써 예산은 10분의 1로 줄었다.

 침대 옆에 TV를 두고 침대를 소파처럼 쓸 계획이다. 그럼 침실에서 더 나오지 않게 될 것 같지만 더 안락하고 원룸 같긴 할 것 같다. 집 전체가 숲이라면 침실은 숲 속에 있는 오두막 같은 이미지가 매칭 된다. 부엌에서 음식을 구해 침실로 가지고 들어와 먹을까 봐 걱정도 된다.


 거실의 중심인 TV와 소파를 빼니, 새로운 거실을 상상해야 했다. 거실은 집의 얼굴과도 같다.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노출되는 공간이다. 거실에서 추구하려고 했던 안락함은 침실로 넣어두고, 색다른 거실을 꾸미고 싶었다.  내 집을 남에게 보이는 공간이니까 더 신경 쓰이고 더 꾸미고 싶어 진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남에게 자랑하고 남의 시선을 눈치 보는 마음을 가지고 있나 보다.


 머릿속의 인테리어 도면에서 TV 하나 없어지니 거실이 엄청 넓게 느껴졌다.  카페처럼 티타임을 즐길 수 있는 거실로 꾸며볼까? 아니면 운동과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까? 플랜테리어(Plant + Interior)가 유행이라는데 화분을 가꾸는 공간으로 만들어도 좋겠다. 내가 라탄을 좋아하니까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나왔던 발리 인테리어로 꾸미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덩치가 큰 TV와 소파가 없어지니 기분에 따라 소품을 바꿔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기도 쉬울 것 같다.


 그런데 인테리어라는 거 너무 어렵다. 배경지식이 없어서 그런가 어떤 게 필수적인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미드센추리니 모던이니 하는 인테리어 용어도 못 알아듣겠고, 인터넷에서 보는 집들은 다 예쁘기만 하다. 내 스타일대로 예쁘게 꾸미고 싶은데 뭘 알아야 꾸밀 게 아닌가.

 가장 고민인 것은 커튼이 있어야 하는지이다. 창이 불투명해서 없어도 크게 지장은 없을 것 같은데 커튼 없는 거실을 못 보기는 했다. 괜히 관리하기만 힘들고 실용성은 없을까 봐 걱정이다.

 커튼처럼 이게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들이 많다. 벽선반으로 허전한 벽을 꾸밀 계획이었는데, 벽이 지저분해지고 못 자국만 남게 되는 게 아닌지 또 고민한다. 화분은 내가 식물을 키우는데 소질이 없다는 걸 알아서 포기기로 한다. 티타임은 식탁에서 즐기면 되니까 티테이블은 쓸모없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계속 보류하다 보니 거실은 휑하니 비어있고 너무 넓어 보인다. 생각보다 거실을 채울 만한 게 없다. 거실은 손님이 오지 않는다면 잘 사용하지 않을 공간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일단 부엌이 좁아서 식탁을 거실에 놓기로 했다.

거실에 둔 식탁

식탁을 어디 놔야 할지 고민하다가 거실과 부엌의 경계에 놓았다. 음식을 들고 오기 편하도록.

 그러다가 내가 가지고 싶었던 벽난로 선반을 샀다. 향초를 피우고 여러 오브제들을 올려놓을 생각이다. 벽난로를 어디 놔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식탁 때문에 벽난로가 너무 안보였다. 래서 식탁을 거실 가운데로 빼고 벽난로를 식탁 자리에 놓았다.

벽난로와 식탁

향초를 켜고 끄는데 안방과 가까운 자리가 편할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딱 들어왔을 때 보이는 위치에 두는 것이 인테리어 상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벽난로를 보는 것도 좋았다. 실제 불을 피우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는 벽난로 선반이 들어왔다고 말하자 따뜻하냐고 물어봤다.

벽난로 선반에 이것 저것 올리고 스탠드도 켜봤다.

 그래도 아직 거실이 많이 허전해 보이기는 한다. 액자나 포스터라도 걸어야 할 것 같은데 그다음은 더 공부해서 채워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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