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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Dec 06. 2021

미혼이 보는 <해방 타운>

내 삶이 소중해지는 시간

 처음 <해방타운>을 보게 된 계기는 허재 아저씨가 아들들과 티격태격하는 짤을 보고 나서였다. 아들들도 훈훈하고 허재 아저씨도 너무 재미있어서 더 자세히 보려고 <해방타운>을 틀었다. 원래 관찰 예능을 좋아해서 <나 혼자 산다>도 즐겨봤기에 <해방타운>도 내 취향을 저격했다. 내가 <해방타운>을 처음 보게 된 게 3회 정도였으니까, 꽤 처음부터 보고 있는 시청자이다.

 허재 아저씨는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50이 넘도록 혼자 뭘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밥솥의 뚜껑도 열지 못했고, 세탁기도 쓸 줄 몰라 세탁기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세탁기 앞에 앉아 회전 횟수를 세어보기도 했다. 저렇게까지 살림을 모를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재 아저씨의 해방은 거의 허재의 아내분의 해방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너무 웃기고 재미있으면서도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그가 대단해 보였다.

허재의 해방 라이프

 아빠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우리 "아빠가 허재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했다가도 "우리 아빠도 저렇게 난관이나 새로운 걸 만나면 저렇게 시도하려나?"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아빠뿐 아니라 나도 벌써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요청하거나 포기하지 혼자 해볼 생각을 잘 안 하니 말이다.


 허재 아저씨의 부분만 보려고 했는데, 너무 재미있다 보니 다른 출연자들의 해방 라이프도 보게 되었다. 장윤정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미스터트롯>에서도 자주 봤었는데, <해방타운>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원래 장윤정은 나에게 워킹맘의 이미지가 강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 일 수 있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해방타운>에서 그녀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인데 저렇게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윤정이 음식을 만들고 술을 즐기는 영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싶고 공감이 엄청나게 많이 되었다. 허재 아저씨의 영상은 코미디와 고분 분투기 같다면, 장윤정의 영상은 힐링과 혼자만의 즐거움이었다. 나도 혼술을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장윤정의 즐거움이 모니터를 뚫고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저렇게 혼자 마셔봐야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했다. 바쁜 일상에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그녀를 보며, 내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게 됐다.

장윤정의 해방라이프 / 내가 따라한 명란구이


 나는 사실 잘 몰랐던 윤혜진의 해방 라이프도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집순이인 나는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윤혜진은 핫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오포에 살면서 서울에 잘 나오지 않다가 <해방타운>을 하게 되면서 여기저기 핫플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하고 싶었던 것을 맘껏 못하고 억누르다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핫플뿐 아니라, 그녀의 배달음식, 그녀의 발레까지. 결혼과 육아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고, 그래서 해방이 더 행복해 보였다.

윤혜진 해방 라이프

 새로 합류한 백지영이 아이 때문에 집에서는 마라 음식을 먹지 못해, 해방타운만 오면 마라 음식을 먹는 것도 웃겼다. 하루 종일 TV를 보는 것도 너무 내 모습 같았다. 그 일상을 그리워한 적은 없었는데 그녀에게는 그런 하루가 특별한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요리연구가 이혜정 씨가 나왔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정말 열심히 사시고, 그 삶에서 오로지 자신만의 것은 없는 그녀가 안타깝고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대단해 보였고. 짠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응원하게 되었다.

백지영 / 이혜정

 처음에 <해방타운>을 봤을 때는 <나 혼자 산다>랑 비슷한 프로그램이 하나 더 나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다 보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조금 달랐다. <해방타운>은 가족들과 같이 살다가 혼자 살게 되면서 느끼는 차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출연진들은 결혼으로 인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고 접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해방타운>을 볼 때면 <나 혼자 산다>를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의 안타까움과 시원함이 있다.

 결혼하면 정말 저렇게 해방이 필요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할까? 아직 결혼도, 아이도 나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만 할 뿐이다. 그러나 상상만으로도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그려진다. 야근하고 동료들과 술 한잔도 쉽지 않을 것이고, 주말 내내 늘어져 있거나, 평일에 취미 학원을 다니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녀들의 해방 라이프를 보면서 내 일상적인 삶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언젠가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지. 그전에 내 혼자 사는 삶을 더 많이 사랑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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