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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Jan 17. 2022

10년 만에 만난 그 집

서른 하나에 만난 할머니의 오랜 집 4

 11월 30일, 11월의 끝. 이날은 세입자가 나가는 날이다. 10년 만에 할머니 집을 보려고 반차를 냈다. 출근할 때부터 들떴고, 해가 정오를 가리켰을 때 드디어 퇴근을 했다. 엄마는 세입자가 나가는 걸 확인하고 보증금을 돌려주느라 이미 할머니 집에 있었다. 나는 설렘과 두려움을 가지고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엄마를 역 앞에서 만났다. 할머니 집으로 바로 가고 싶었지만 참고 밥을 먼저 먹으러 갔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과 조금 미루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언제 보든지 집은 같을 테지만, 밥을 먹고 더 오래 찬찬히 보고 싶었다.

 엄마는 세입자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해줬다. 착한 사람들 같다고 했다. 아내분은 엄마의 손을 잡으며 정말 잘 살았다고 울먹이며 말했다고 한다. 신혼 때 이곳으로 이사 와서 둘째 딸도 낳았다고, 좋은 일만 있었다고 말이다. 엄마는 딸이 집을 못 구해서 나가 달라고 한 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더 기대가 되었다. 살다 보면 진짜 나한테 잘 맞고 좋은 집이 있는데, 할머니 집이 그들에게 그런 집이었다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미신 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그렇게 잘 살았다면, 왠지 나도 그 기운을 받아서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조금 긴장했는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엄마랑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1층 현관문을 지나는 것조차 10년 전 일이었다.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직접 눈으로 실물을 보니 기억이 떠올랐다. 이마를 찢어서 꿰매야 했던 돌계단, 철문과 작은 초인종. 이제는 망가진 초인종이지만 초인종 소리가 어땠는지도 기억이 났다. 신발장과 바닥이 돌로 된 현관을 보니 이곳에 앉아서 신발을 오른쪽 왼쪽 잘 구분해서 신었는지 고민하고 엄마에게 "엄마 나 잘 신은 거 맞아?"라고 물어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돌계단 / 철문과 초인종 / 신발장이 있는 현관

 창문을 보았을 때는, "맞다, 이런 창문이었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열쇠로 돌려 잠그는 창문, 한쪽 열쇠는 잃어버린 창문, 창에 문양이 있는 그런 창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신발장과 마찬가지로 놀랍도록 내 마음에 들었다. 집에 가서 창문이 망가진다면 어디 가서 이런 창문을 살 수 있는지 찾아볼 정도로.

창문

 샤시는 3중 창으로 되어 있었다. 아마 벽이 두꺼워서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튼튼하고 반듯하게 지은 집이라고 했던 말뜻을 이제 알았다. 벽이 두꺼운 집이었다. 30년 된 집 치고는 반듯하고 상한 데가 없어 보였다. 물론 스크레치나 낡은 곳은 있어도 주저앉거나 깨진 곳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많이 걱정했던 것보다는 안심이었다.

 베란다가 가장 놀라웠고, 손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망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타일이 깨져있고 벽에 페인트도 조금 떨어져 있었다. 집 안과 벽돌로 분리되어 있는 베란다는 독특한 느낌이었다.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막내 돼지가 만든 벽돌집이 연상됐다. 내가 살았던 자취방들이 날림으로 지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집은 두껍고 견고하고 튼튼해 보였다.

벽돌집이 떠오르는 베란다

 여기저기 손볼 곳은 보이지만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고 할까? 여기저기 이가 빠졌지만 뼈대는 끄떡없어 보였다. 안에 들어와 보니 놀랍도록 예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앞으로 삼십 년이 더 지나도 이대로 일 것 같았다. 나랑 동갑인 집인데 나만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내 안은 이렇게 단단하고 넓지 못한 것 같은데. 나를 주눅 들게도 만들었다. 나한테는 버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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