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집값의 측면에서는 받았던 전세자금 대출을 갚고 남은 보증금만 부모님께 주면 된다. 세입자를 내보낼 돈이 조금 부족하시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돈을 떼먹지만 않으신다면 집값 자체로 드는 비용은 없다. 거의 얹혀사는 것이다. 대신 집이 넓어져서 공과금이 많이 나올까 봐 걱정된다. 여름에는 에어컨 때문에, 겨울에는 난방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 장난 아닐 것이다. 다행히 관리비는 따로 없다. 지금 내는 관리비가 6만 원이니까 관리비를 매달 모아서 여름, 겨울에 낸다고 생각하면 쌤쌤일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옵션이 없어서 다른 비용이 많이 든다. 텅 빈 빌라이기 때문에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부터 필요한 건 다 내가 사야 한다. 풀옵션 원룸에 살다가 이사를 가니 살 것도 무진장 많다. 이게 가장 부담스러운 점이다. 집수리도 집주인에게 요구하지 못하고 그냥 내가 해야 된다. 어차피 내 돈이든 가족들 돈이든 우리 돈이 드는 건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 비용적인 측면은 쏘쏘.
할머니 집의 위치는 살기는 좋지만 출근하기에는 조금 멀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한 번에 가는 교통수단이 없어서 무조건 갈아타야 한다. 차를 타면 빠르지만 주차장이 없다. 어차피 나는 차도 돈도 없으니 상관없는 일이지만. 대신 주변에 먹고 놀데는 많다. 대형마트는 없지만 꽤 큰 마트가 집 앞에 있고, 시장과 지하철 역이 모두 5분 이내이다. 유명한 음식점들도 즐비해있다. 나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바쁘면 혼자 먹고 들어갈 일이 많기 때문에 주변에 맛집이 많은 것은 매우 축복이다. 그래서 위치는 통과!
층이 낮다는 것은 맘에 안 든다. 밑에 반지하층이 있는 1층이다. 대문에는 2층이라고 되어있지만 등본에는 1층이라고 나와있는 1.5층 집이다. 예전에 할머니가 사실 때 도둑이 한 번 든 적이 있어서 방범창을 필수로 달아야 할 것이다. 여자 혼자 살다 보니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하다. 다행히 동네가 옛날보다 많이 번화해져서 도둑이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층이 낮으면 벌레도 많은데 엄마가 벌레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니 살아봐야 알 일이다. 층고는 마이너스...
다음은 채광의 측면이다.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두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엄마도 남향이긴 한데 층이 낮아서 빛이 잘 안 들어왔다고 말한다. 나는 햇빛을 진짜 중요시 여기는데 큰일이다. 햇빛이 안 들어오면 빨래도 잘 안 마르고 습기 차고 쿰쿰한 곰팡이의 냄새가 난다. 나는 집을 볼 때 습기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습기에 특효약은 햇빛이다. 엄마의 말에는 집을 잘 지어서 곰팡이도 안 생기고 습기가 별로 없는 집이라는데... 믿는 수밖에. 뭔가 엄마가 부동산 주인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제 점수는요...
이래저래 따져봐도 쏙 맘에 들기는커녕 걱정이 앞서는 집이다. 그냥 쫓겨나지 않는 게 제일 큰 메리트인 집인 것이다. 크기가 커지는 건 좋은데 커져도 너무 커진다. 이래서 기도는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데. 기도를 엄마한테 했더니 맘대로 집을 들이민다.
어릴 적 기억에 의존해 재현한 할머니집 구조
옵션이 하나도 없고 오래된 집이어서 준비할 게 너무 많다. 샤시, 도배, 화장실 타일도 다 뜯어고치고 싶지만 돈이 없다. 2년 차 직장인이 수중에 모아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가도 아닌 집을 고치자니 돈이 너무 아깝다. 이 빌라에 평생 살 생각은 없어서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집주인이 바뀌면서 전세를 올린다는 말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집을 찾아 떠나는 신세가 되었다. 전세금2억이 넘으면 전세자금 대출이 끊기기 때문에 더 싼 집으로 또는 더 비싼 대출로 갈아타야 했다. 그런 나에게 할머니의 오랜 집은 내 탈출구가 되어줬다.
어째서 2020년 초에도 전세대란이었는데 2021년에는 더 심해졌단 말인가? 전세 구하기도 힘든데 내 집 마련의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내 목표는 이곳에서 뭉개다가 분양받아서 나가는 것이다. 얼마를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는 동안 잘 뭉개기 위해서 어떻게든 열심히 해봐야겠다. 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