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에 처음 자취를 시작했다. 내 첫 집은 대학교 앞에 있는 2천에 30만 원인 5평짜리 풀옵션 원룸이었다. 빨래를 널면 지나다니기도 힘든 집이었다. 대학 때부터 어울려 노는 5명의 친구들이 오면 두 명은 바닥에, 세명은 침대에 앉아야 했다. 웃풍은 얼마나 센 지 겨울에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퉁퉁 부었다. 그래도 첫 자취여서 부모님 집에서 러그와 퀼트로 만든 방석, 그릇세트, 찻잔세트, 스탠드 등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소품들을 챙겨 왔었다. 하지만 자취의 로망을 지키기에는 집이 너무 좁았다. 여기에서는 일 년만 살다가 나왔다.
그 후 조금 더 집을 넓혀 7평짜리 원룸으로 이사 갔다. 7평만 돼도 살기 정말 괜찮다. 친구들도 그 집이 정말 괜찮았다고 말하곤 한다. 다섯 명이 모두 바닥에 앉아도 자리가 충분했다. 원룸에게 2평은 정말 큰 의미인 것이다.
이때 오피스텔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아봤는데 해가 잘 들어서 집이 따뜻하고 건물관리도 잘 되어있었다. 겨울에 보일러를 켜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주차장도 있고 분리수거하는 곳도 따로 있었다.
오피스텔에서 키우던 바질 이 오피스텔은 신기한 구조였는데, 9층만 2개가 있었다. 한 번은 다른 층도 두 개씩 있는지 궁금해서 계단으로 내려가며 세어본 적도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9층만 딱 두 개가 있었다. 나는 두 번째 9층에 살았고 우리 층에는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았다. 10층에서 계단을 내려가거나 첫 번째 9층에서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다. 배달시킬 때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지 않아서 나름 만족하며 지냈다.
참 맘에 들었지만 이 집도 단점은 있었다. 지하철역 근처여서 창문만 열면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2분마다 들린다는 것이다. 창문에도 지하철 때문인지 검은 먼지가 자주 꼈다. 그리고 수압도 약해서 언니가 놀러 와서 몇 번이고 변기를 막히게 했다. 나중에는 싱크대에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 만족하며 2년간 이 집에서 살았고, 이 집으로 인해 높고 햇볕이 잘 드는 집을 선호하게 되었다.
세 번째 집은 언니랑 같이 살게 되면서 이사 간 1.5층 투룸 빌라였다. 언니의 주장으로 힙한 합정에 집을 얻었다. 처음으로 대학교 앞을 떠나게 된 것이었는데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합정은 정말 좋았다. 한강과 가까워서 조깅하러 한강에 가기도 했고, 영화관과 쇼핑센터, 대형마트가 모두 5분~10분 안에 있었다. 와인바와 이자카야, 인스타와 블로그에 나오는 맛집들이 발에 치였다. 대신 이런 곳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걸어 다니면서 쓰는 돈이 장난 아니라는 단점이 있다.
나중에 언니가 먼저 나가고 6개월 정도를 혼자 살았다. 친구들을 불러 홈파티도 하고 파자마 파티도 했다. 20대의 마지막을 즐기기 위해 집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홍대의 클럽에도 갔다.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으면 상수 쪽으로 걸어가기도 했다. 집이 넓고 위치가 좋아서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합정 집은 10평 남짓이었는데 거실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부엌과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곳은 습하고 쿰쿰한 냄새가 났다. 엄마의 말로는 햇볕이 잘 들지 않고 낮으면 그런 냄새가 난다고 했다. 집이 커져서 그런가 겨울에 가스비는 10만 원이 훌쩍 넘는 게 다반사였다. 따뜻하지 않고 습한 집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가스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수면양말에 기모 후드를 입으며 지냈지만 힘만 들고 가스비는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투룸이어서 월세도 두배로 비싸졌다.
이 집에 살면서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월세와 공과금, 작은 적금, 생활비 등을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었다. 내 소중하고 작은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갔다. 나중에는 한겨울에 보일러까지 고장 나고, 계약기간인 2년을 버티고 집을 뺄 때는 집주인이 돈을 못 줄 수도 있다는 둥 나에게 화를 내서 참 고생을 많이 한 집이었다. 나는 이 집에 살고 나서 원룸으로 너무 가고 싶었다. 나만의 작고 소중한 공간으로.
그리하여 오게 된 집이 6평짜리 분리형 원룸이었다. 나는 집에서 밥을 해먹을 걸 좋아하는데 특히 굽고 지지고 튀기는 음식을 많이 했다. 요리 때문에 침실에 냄새가 배는 걸 싫어해서 분리된 구조를 택했다. 전세로 가게 되면서 처음으로 대출도 받았다. 집을 구하는데 혼자서 한 겨울에 열 곳도 넘게 집을 보러 다녔다. 그동안 이사 다니면서 집에 원하는 조건이 많이 생겼다.
전세 자금 대출이 돼야 함.
위치 : 너무 외지지 않을 것.
층 : 높을수록 좋음. 반지하와 1층은 안됨. 2층은 방법창이 있거나 설치가 가능해야 함.
햇볕 : 빨래 널기 적당해야 함. 집에 곰팡이 냄새가 안 나야 함.
크기 : 너무 작으면 안 되지만 너무 넓어서 공과금이 많이 나오는 크기는 안 됨.
오래되어서 고장이 많은 집은 안 됨. 벌레 X, 더러움 X, 습기 X.
이 이외에도 수압 문제나 수납장, 화장실 선반과 창문 유무 등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문제는 위와 같다. 집에 대한 조건들을 다 충족하려니 집값은 비싸졌다. 더구나 당시에는 전세대란이 뉴스에 자주 보도되던 때여서 전세가 많이 오른 상태였다. 태생적인 집순이인 나에게 집을 정하는 건 매우 신중해야 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금액이 커지니까 손이 떨리고 집의 의미도 더 커졌다.
원룸 치고 너무 비싸지만, 대출을 최대로 땡기면 가능한 집이라 지금의 집을 구했다. 딱 2억이 마지노선이었는데, 2억이 넘어가면 내가 빌리는 대출 상품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금리가 더 높은 상품으로 빌려야 하기 때문에 2억을 상한선으로 집을 구했는데 이 집이 딱 2억이었다.
신축 첫 입주라 깨끗했고, 수납장이 잘 되어 있으며, 화장실에 선반도 편하게 되어 있어서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햇빛이 잘 들어와서 들어갔을 때 좋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바라는 게 많아서 일까. 이 집에 이사할 때부터 나는 100% 만족하지 못했다. 우선 전세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 서울의 중심이라는 용산이어서 그런지 집값이 만만치 않았다. 엄마한테 빌리고, 모아둔 돈 다 털어 넣고 대출도 최대한도로 받았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딱 마련한 전셋값. 여윳돈이 없었다. 그래도 전세이다 보니 집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이 두배 이상으로 줄었다. 그 덕에 적금을 더 늘릴 수 있게 되었다.
6평 원룸의 위치는 너무 외지지 않았지만 지하철역과 가깝지도 않았다. 집 근처의 지하철역이 3개나 되는데 모두 걸어서 12~13분이 걸렸다. 그 정도면 가까운 편이 아니라는 걸 한여름에 뼈가 타들어가게 느꼈다. 올해 특히 심했던 폭염에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까지 쓰니 출근길에 10분 이상 걷는다는 건 정말 지옥이었다. 신호등을 두 개나 건너야 하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편의점을 두 번 들렸다가 출근을 했다. 이것 때문에 이사가 너무 가고 싶어 졌다.
햇볕은 잘 들었지만 집이 너무 작아서 여름에는 어쩔 수 없이 습기가 찼다. 6평인 줄 알았던 원룸은 계약서에서 보니 6평이 조금 안 되는 크기였다. 어쩐지 작더라니... 그리고 초등학교 옆이라 심어놓은 나무들 때문에 벌레가 많았다.
"지겨워, 지겨워" 하면서 계약기간이 끝나면 바로 이사를 가야지 했다가도 여름이 지나고 또 막상 집을 치워놓고 나면 "이 집도 나름 괜찮은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안락하고 딱 나만의 공간이니까. 대신 집에서 움직임이 큰 행동은 하지 못했다. 새로 다니게 된 요가학원에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숙제를 내주곤 했는데, 내 집에서는 팔다리를 쭉 뻗을 공간이 없었다.
투룸에 살다가 원룸으로 이사오니 크기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많았다. 그간의 자취 경력만큼이나 쌓인 물건들은 집을 더 좁아 보이게 만들었다. 옷이 많은 편인데 옷장은 없고, 처음 자취할 때는 밥솥만 있었는데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커피포트 등 조그만 가전도 많이 늘었다. 요가매트도 깔아놓을 수가 없어서 부모님 집으로 보냈다. 가끔 놀러 오는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을 집에 초대할 때도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다. "혼자 사는데 큰집은 필요 없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이 작아지니 생각이 바뀌었다. 너무 작은 집은 불편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