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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Jan 27. 2022

소비 패턴과 예산

서른 하나에 만난 할머니의 오랜 집 6

 월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고 싶은 건 무한대이다. 인테리어의 세계가 이토록 다양하고 사람을 유혹하는지 이전에는 미쳐 알지 못했다. 살던 집들이 내 집이 아닌 것도 원인이었겠지만, 집이 좁아서 꾸미는 것보다는 비우는 것이 최고의 인테리어였기에 자취하면서 집을 꾸밀 생각을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올여름에 처음으로 시나몬 행잉을 구매하면서 엄마에게 내가 너무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봤었다.


남들은 다 해, 네가 좀 늦은 거야.

 나도 뭐 사는 거 참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인테리어 소품은 내 돈 주고 산 게 거의 없다. 소녀소녀 하고 레이스에 아기자기한 것도 좋아하는데 차라리 액세서리를 사지 인테리어에 투자할 생각은 안 해봤다. 엄마는 내가 안 했던 게 신기한 거라고 했다. 자취하는 여자들은 다들 예쁘게 꾸며놓고 산다고. 자취 6년 만에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다니... 이사를 앞두기 때문일까, 내 취향이나 취미가 바뀐 걸까.

 시나몬 행잉을 시작으로 라탄 트레이와 라탄 코스터, 석고 화분도 샀다. 지금은 아직 작은 집에 있어서 자리만 차지하고 만족도는 아주 조금 있는 상태이다. 라탄이 뭔지도 몰랐는데 발리 느낌을 준다는 라탄 소품들은 내 취향을 저격했다. 이건 확실히 바뀐 취향이다. 라탄이라는 소재가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시나몬 행잉 / 라탄트레이, 라탄코스터, 석고화분


 인테리어 소품을 조금 추가하여 이사할 때 사야 할 것이 460만 원을 초과한다. 내 월급보다도 많다. 거의 두배는 된다. 이것도 정말 많이 양보해서 추린 것들이다. 한정된 월급으로는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그리고 샀을 때 후회하는 것도 생긴다.


 무언가를 샀을 때 가장 기쁘면서도 허무했던 적은 처음으로 명품가방을 샀을 때이다. 340만 원짜리 명품가방은 크지도 않은 게 내가 산 물건 중에 제일 값비쌌다. 그 가방을 고르려고 백화점에 사전조사를 10번은 더 갔다.

 엄마와 아빠, 언니까지도 이제 서른이 넘고 취직했으니까 살 때가 되었다고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돈을 벌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면 명품 가방을 하나쯤 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입사하고 처음으로 명품의 세계에 눈을 떴다. 엄마는 그때도 나보고 참 늦다고 했었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남을 부러워하지도 질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참 야망도 없다. 내가 계속 학생이었고, 취업준비생이었기 때문에 명품은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아는 브랜드도 샤넬, 구찌, 루이비통이 다였다.

 27살,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언니의 권유로 같이 이탈리아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언니가 "엄마한테 에르메스 스카프 사다 줄까?"라고 제안했다. 나는 언니에게 "울 엄마는 그런 거 몰라"라고 대답했다. 언니는 엄청 비웃으면 엄마가 된장녀라고 그랬다. 언니는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나는 엄마가 명품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다. 엄마가 모르는 게 아니라 내가 몰라서 엄마도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굉장히 좁고 내 위주이기 때문에.

 엄마한테 한국에 돌아와서 에르메스가 뭔지 아냐고 물어봤을 때, 엄마는 조금 당황해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랑 언니는 명품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물론 내가 있는 앞에서도 말이다. 언니는 그때부터 명품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한다. 관심이 없었던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언니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사줬던 가방도 명품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그 브랜드를 외우기까지는 3년이 더 걸렸다.


 다짐을 하고 혼자 명품 가방을 사러 가면서 손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댔다. 명품가방이 든 큰 쇼핑백을 가지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마음이 울렁울렁 이상했다. 뭔가 사고 친 기분이었다. 몇 개월을 고민하고 결정했지만 이게 잘한 소비인지, 못한 소비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명품 가방 사고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

 내가 왜 이걸 가지고 싶어 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단지 다른 사람이 다 가지기 때문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달 월급보다 큰 금액이 쑹덩하고 빠져나가기가 아깝고 허전하고 허무했다. 손에 비싼 가방이 있는데도 허무하다는 느낌이 이상했다.

 그럼에도 명품의 눈을 떠버린 나는 예쁜 명품가방이 있으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가격을 알아보고 있다. 명품 가방 하나면 집을 다 꾸밀 정도의 가구와 가전, 인테리어 소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깝고, 보면 또 예쁘고, 아이러니하다.


 언니는 좋아하는 옷이나 물건의 가격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산다. 그만큼 잘 면 된다는 주의다. 언니는 보통 비싸고 좋은 걸로 산다. 그래야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니는 "이건 정말 잘 샀어."라고 자랑하는 게 종종 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의 가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냥 사고 싶으면 스트레스받지 말고 사는 편이다. 그래서 언니 집에는 책상도 4개 노트북도 3개이다. 그래도 다 잘 쓰고 있다고 한다.

 엄마는 소비패턴이 5년 전쯤부터 바뀌었다. 엄마가 제일 애용하는 곳은 기부받은 것을 파는 아름다운 가게와 구제 샵이다. 엄마는 옷이 엄청나게 많은데, 못 입는 옷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고 거기에서 또 새로운 옷을 산다. 옷은 아주 저렴해서 몇 천 원부터 비싸도 2만 원을 잘 넘지 않는다. 그런데 기부하는 것보다 사는 게 훨씬 많다.

엄마가 아름다운가게에서 사다준 가방(2만원)

 엄마의 소비가 절약하고 실용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종종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이해가 안 되는 걸 넘어 화가 날 때도 있다. 늘어지고 헤지고 오래된 옷들을 사 오는 게 정말 싫다. 가끔도 아니고 일주일에 두세 번 쇼핑을 하러 가는데 한 달에 적어도 다섯 벌에서 열 벌 정도는 사는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좋은 옷을 하나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때는 내 옷들도 마구 주워가서 화가 났었다. 나도 못 입어서 버리려고 모아둔 옷들인데 엄마가 말도 안 하고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고, 오래된 그런 옷들을 엄마가 입는 게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속상했다.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는데 한 친구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어머니가 막 옷에만 집중한다기보다 남들이 지나치는 것들 사이에서 예쁘다 하는 걸 찾는 거 자체를 좋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엄마를 속 터져하는 딸보다 더 엄마를 이해하는 친구인지도 모른다. 멀리 보아서 가능한 건지 원래 뭐든 예쁘게 보는 친구여서 그런 건지는 자세히 따지기 어렵지만, 확실히 나보다는 더 큰 사람이다. 비록 키는 내가 더 클지라도. 엄마의 소비는 단지 물건을 사는 의미만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소비에서 얻는 효능감이 다르듯 나도 그럴 것이다. 가끔은 내가 그냥 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나는 냄새에 민감해서 향수 냄새를 맡으면 재채기를 할 때가 많고, 향수 향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요즘 자꾸 향수만 보면 사고 싶고, 향수를 시향 하고 싶고, 찾아보고 그런다.

 결국 두 개의 향수를 구매했다. 향수를 사면 내가 이 향수에 어울리는 여성이 된 것 같고, 향수에 맞는 분위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소비 행위 자체가 기쁨으로 느껴진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나는 무언가 사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을 항상 가지는데 소비가 꼭 합리적인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쇼핑하는 '나'는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비슷한 색깔 립스틱을 여러 개 사는 나? 나도 변호해주기 힘들다. 역시 나를 알기란 어려운 작업이다.

 결국 모든 소비는 나를 위한 게 아닐까? 내가 더 행복하게 된다면 조금 아깝더라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내 예산이 자꾸 늘어나는 건지도 몰랐다. 내 소비패턴은 나도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것이다. 이것저것 포기하다가 결국에는 이것만 사야겠다며 추가하는.

 쓸데없는 소비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꼭 사야 되는 것도 그다지 많지 않다. 이제 인테리어에 눈을 뜨게 된 나는 내 MBTI 유형과 맞지 않는 비이성적인 소비를 더 많이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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