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옷을 수납할 공간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행거와 서랍장을 가지고 있고, 리빙박스 네 개를 쌓아두고 쓰고 있다. 거기에 침대 밑에 수납장과 렌지대 밑에 서랍에도 옷을 넣어뒀다. 그럼에도 계속 늘어나는 옷을 주체하지 못해서 주기적으로 기부를 한다.
행거와 서랍장/렌지대 밑에 서랍장
나는 왜 자꾸 옷을 사는 걸까? 진짜 사지 말아야지 했는데도 유행하는 스타일을 보면 저건 필수니까 사도 된다고 합리화를 한다. 나만의 스타일이 없어서 이 스타일 저 스타일 다 입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편안하고 깔끔한 옷에 손이 많이 가지만, 나는 역시 독특한 디자인에 눈을 못 뗀다. 나는 옷 때문에 미니멀리스트는 되지 못할 것이다.
행거에 옷을 너무 많이 걸어 놓으니 행거는 앞으로 쏠린 채 간신히 버티고 있다. 행거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걸 깨닫고는 진짜 이런 생활을 그만하고 싶었다. 대충 사는 생활, 임시로 사는 것 같은 이런 생활 말이다.
옷장을 가지고 싶었다. 옷을 정리하고 말끔한 옷을 입고 싶었다. 옷장 없이 행거로 살다 보니 옷이 더 쉽게 상한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고 햇빛에 색이 바랜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것인데 옷이 많고 비싼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관리를 잘해서 입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예쁘고 값비싼 옷이라도 주름져있고 얼룩이 있으면 그 흠집만 보일 뿐이다. 그런데 옷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면 옷에 주름이 생기고 냄새가 배는 건 막을 수도 없고 잘 확인하기도 어렵다.
옷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내 소중한 옷들, 살 때는 애지중지 데려왔는데 작은 골방에 처박아둔 꼴이다. 서른이 넘어가자, 누가 내 옷을 보면 딱 봐도 자취하는 사람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장에 가기 위해 원피스를 입었는데 큰 주름들이 눈에 띈다. 20대 초중반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결국 야밤에 언니에게 다리미를 빌려서 다려 입고 갔다.
올해 드디어 쭈글쭈글한 내 옷이 계속 맘에 걸려서 친구들에게 생일선물로 핸디 다리미를 선물해달라고 해서 트렌치코트를 다려 입었다. 그랬더니 날 보는 사람들 마다 몇 년째 입은 트렌치코트를 새로 샀냐고 물어보았다. 너무 예쁘다고. 원래 이렇게 예쁜 옷이었는데 내가 그동안 잘못 입은 것이다.
빨래를 할 때 옷의 빨래 기호를 읽고 색깔 빨래를 구별해서 빨게 된 것도 자취 5년 차까지 수많은 실수를 거치면서 이다. 내가 물들인 하얀 티만 해도 여러 벌이다. 살림은 할수록 어렵고 해야 할 게 보인다.아직도 빨래는 너무나 어렵다.
세탁소를 애용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내가 빨면 누런 색이 안 빠지는 옷들도 세탁소에서는 새것이 되어 온다. 그냥 빠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잘 빨고 잘 보관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
하지만 세탁소는 돈 잡아먹는 귀신이다. 겨울이면 더 심해진다. 패딩 몇 개만 맡겨도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렇다고 세탁을 안 하면 옷이 누렇게 뜨고 냄새가 난다. 옷은 살 때도 관리할 때도 정말 돈을 잡아먹는 귀신이다.
어차피 유행에 따라 변하고, 나이에 맞게 소화할 수 있는 옷들이 줄어들지만 예쁜 걸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정리해보자.
가구 중에는 가장 먼저 옷장을 골랐다. 두 짝짜리 옷장을 사려고 했는데 이불도 넣고, 사계절 옷을 모두 수납하려면 두 짝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세 짝짜리 옷장으로 정했다. 가장 저렴하고 깔끔하면서도 공간이 넓어야 했다. 다행히 내 맘에 드는 옷장을 발견했다.
새로 산 옷장
우유색으로 깔끔하고 문 손잡이도 맘에 들었다. 높이가 긴 옷장이고, 수납공간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세일해서 싸게 구매한 점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첫 번째 칸은 위아래가 반으로 나눠져 있어서 아래에는 이불, 위에는 상의를 걸었다. 두 번째 칸은 서랍과 길게 걸 수 있는 봉이 있어서 서랍에는 바지와 티, 위에는 원피스와 코트 등을 걸었다. 마지막 칸은 가방과 스카프, 스팀다리미 등을 넣고 긴 옷들을 보관했다.
옷장의 향기를 위해 향기 나는 기계도 샀다. 꽤나 비싸다. 그런데도 소비욕구를 참지 못했다. 부디 광고에서처럼 획기적인 상품이길 바란다.
향기나는 기계
원래 사용하던 하얀 전신 거울도 가져와 드레스룸에 넣었다. 4단짜리 서랍장도 가져갔고 그 위에 액세서리를 올렸다. 속옷과 양말을 정리하는 수납박스도 샀다. 속옷을 정리하고 나니 낡은 것은 싹 버리고 세트로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리를 끝낸 드레스룸
단순하고 어찌 보면 무미건조한 방이지만 눈앞에 행거에 빼곡히 걸려있는 옷들이 안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옷은 좋은데 왜 집에서 보이는 건 싫은 걸까. 이제 마음껏 옷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니 내 통장은 이제 큰일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