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라 Mar 21. 2022

취미 부자의 취미 공간

서른 하나에 만난 할머니의 오랜 집 14

 방이 세 개가 되었다. 침실과 드레스룸을 빼면 남는 하나의 방을 어떤 용도로 쓸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냥 비워둘 수도 없는 일이고, 창고로 쓰자니 잡동사니만 쌓일 것 같았다. 내게 필요한 공간이 어떤 것인지, 남는 방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여분의 방이라니.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것. 내게 그런 일이 뭐가 있더라?


취미가 뭐예요?

 누군가가 나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나는 굉장히 곤란해했다. 나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충 독서, 영화감상 등을 꼽았다. 독서보다 핸드폰을 보는 걸 좋아하고,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더 많이 보지만 말이다.

 나는 집에서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죽이는 걸 좋아한다. 나는 그것을 시간을 버린다고 표현한다. 바쁘게 사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고 쉴 때는 시간을 펑펑 과소비하면서 지낸다. 그게 편하고 내 나름대로의 충전이다.

 20대 동안 나는 취미가 없는 사람으로 지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위해 시간을 내서 즐겼던 일이 내 기억으로는 없다. 그렇다고 심심하게 지내지도, 일상이 불만족스럽지도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가족들과 살 때는 같이 있으면 뭘 하지 않아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보통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는 쉬거나 자기 바빴다. 가끔 혼자 즐기는 시간은 혼술과 미국 드라마 보기 정도였다.


 서른이 되면서부터 삶이 좀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고, 회사에서 퇴근하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그것 하나는 좋았다. 공부와는 다르게 일은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것.

 공부는 끝이 없어서 해도 해도 채워지지 않아서 쉴 때도 계속 공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일은 잘 못하더라도 끝이 있다. 다만 다른 일이 또 생길 뿐. 나는 야근을 할지언정 집에서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퇴근을 하면 회사와는 완전 단절이었다. 여가시간이 생긴 것이다.


 여가시간에 늘 하던 대로 시간을 버리며 지내는 게 어느 날 갑자기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지루해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상태인데, 변화를 주고 싶었다. 심심한 건지 외로운 건지 헷갈리면서, 내 안의 감정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다.

 너무 말을 하고 싶은데 사람들을 만나는 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야 하니까. 또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 하기는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도 털어놓고 공감을 받고 싶기는 해서 손이 근질거렸다. 그렇게 해서 서른에 글쓰기라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글을 쓰고 좋은 점은 평일을 더 잘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이 너무 지루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매일 출근하고 하루하루를 때우는 느낌으로 사는 게 따분했다. 내일 이 생활을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진절머리가 났다. 아마 당시에 나는 직장에 권태기가 온 것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부터는 삶이 조금 달라졌다. 내 일상에서 글감을 찾고, 의미를 부여한다. 내 취향상 해피앤딩을 지향하기 때문에 내 글의 결말도 좋은 점을 찾으며 끝맺으려 한다. 그래서 내 일상이 더 소중해지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집에 가서 글을 쓸 생각으로 하루를 버티기도 한다.

 글을 쓰는 모임에도 나가고,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 혼자 돌아다녀보기도 했다. 글이 안 써질 때는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풀어냈나 참고하기도 했다. 원래 집에서 글을 쓰는 공간과 책을 읽는 공간은 모두 침대였다. 그럼 남는 방을 서재로 만들까? 그러려면 식탁 이외의 테이블을 하나 더 사야 한다. 돈도 너무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다. 어차피 글은 침대나 식탁에서 쓰게 될 거 같았다.

방 안에서 글 쓰는 중


 서른한 살에 가지게 된 따끈따끈한 취미는 서예였다. 아마 내 돈 내고 취미 학원을 처음으로 다니게 된 것 같다. 취미에 큰 의미를 두지도, 하고 싶은 게 별로 있지도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서예는 대학생 때부터 해보고 싶었다. 사학과를 나와서 대학원에서도 한국 고대사를 전공했기에 서예를 계속 접하고 관심이 있었다. 다만 서예에 돈과 시간을 투자를 할 만큼 하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취미가 있으면 일상이 좀 덜 지루하고 활기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취미를 가지는 일에 인색하지 않게 되었다.

 내 돈과 시간을 할애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내 일상이 반짝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어디에 쓸데는 없지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실행하는 내가 좀 멋져 보인다.

 나는 아직 초보여서 단어 정도밖에 쓰지 못한다. 서예를 하다 보면 지루할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다. 내가 다니는 서예학원이 평일에 밖에 안 열기 때문에 퇴근 후에 시간을 쪼개서 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배우고 익히는 게 재미있는 사건이 되었다.

내가 쓴 서예와 서예도구

 서예를 하기 위해서는 테이블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실 식탁에서 해야 되겠다.

 요즘 또 한창 꽂힌 것은 보드게임인데, 친구들과 하던 것이 온&오프라인 모임까지 가입하게 되었다. 이 취미는 여러 명이서 해야 하니까 거실의 식탁이나 좌식 테이블에서 해야 한다. 어느 것도 새로운 방이 필요할 만한 일이 없었다.


나 취미 많았네?

 하고 싶은 걸 미루지 않고 야금야금 하다 보니 취미가 계속 생겼다. 글쓰기부터 독서, 서예, 보드게임,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것도 취미로 볼 수도 있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한테 별 걸 다 한다고 그랬다. 심심하냐고.

 맞다. 심심해서 그런 거다.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것이다. 근데 이것저것 하다 보면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더 잘 알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할 때나를 더 좋아하게 된다. 취미는 내 자존감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내 취미들의 취향은 참 한결같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정적인 일이다. 움직이는 활동은 거의 없다. 유일하게 보드게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취미이지만, 이것도 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할 때는 거의 우리 집에서 했었다. 새로 취미로 삼고 싶은 것도 정적이고 집에서 하는 일이다.

 차 마시는 일. 다도라고까지 하기는 뭣하고, 카페인에 약한 내가 홈카페를 만들고 싶어서 선택한 대안이다. 예쁜 다기와 예쁜 꽃차를 우려내 고요한 시간을 즐기고 싶다. 건강에도 좋으니 일석이조이다. 하지만 이것도 방이 필요한 취미는 아니다. 식탁이 최적의 장소이다. 

 게다가 언니가 쓰다가 준 베드 테이블을 주방에 배치했더니, 커피포트와 차 용품들을 놓기 딱 좋다. 식탁보다 얇아서 공간 차지도 많이 하지 않고 적당하다.

차 용품을 놓은 테이블


 마지막으로 생각이 머무른 것은 운동이었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요가를 다녔다. 두세 달 다니고 쉬고를 반복해서 별로 늘지는 않았다. 여전히 몸이 뻣뻣하다. 오히려 그래서 요가는 나한테 잘 맞는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특히 유연성이고, 나는 신나는 음악보다는 내 내면에도 집중하는 운동이 좋다.

 운동은 진짜 좋은데 하기는 싫다. 몸의 변화를 느끼는 건 기쁜 일이지만 움직이는 건 역시 안 좋아한다. 그래도 나이가 하나둘 많아질수록 운동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사무직이다 보니 어깨와 등, 허리가 불편할 때가 있다. 운동하는 건 진짜 싫지만, 하고 나면 기분은 좋아진다.

 요가 학원을 다니는 것도 시간을 따로 빼야 하는 거라서 바쁘면 못 가게 되고, 결국은 재등록을 안 하고 몇 달 쉬기도 한다. 새로 취미가 생기면 거기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운동은 소홀히 하게 된다.

 운동은 꼭 필요하고 하기는 귀찮은데, 내가 좋아하는 집에서 운동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연결됐다. 집에 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게다가 새로 등록한 요가 학원 선생님은 자꾸 숙제를 내주시는데 원룸에서는 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요가 방을 만들어서 운동을 습관으로 만들기로 계획했다. 그러려면 전신 거울이 있어야 한다. 전신 거울을 원래 이사 가면서 큰 사이즈로 사고 싶었었다. 그리고 요가매트와 폼롤러 등을 사야 한다.

 또 요가하면 생각나는 것이 인센스다. 요가 학원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태국에 여행 갔을 때 많이 맡아본 향이다. 머리를 맑게 해 주고 진정 효과가 있다는데, 나는 요가 학원의 분위기가 생각나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인센스 올려놓을 수 있는 협탁도 가져다 놓았다. 협탁은 언니가 쓰지 않는 것을 가져왔다.

폼롤러와 전신거울 / 협탁과 인센스 받침대

 요가를 새로운 취미로 만들어봐야겠다. 이제 건강을 챙길 나이도 되으니.


오랜 취미인 요리

https://youtu.be/u_lDtR3hL14

취미를 위한 장비 구입

https://youtu.be/Hiy0i7zAXrU

홈찻집을 위한 용품 구입

https://youtu.be/w5zZjA-KnZw


이전 13화 꿈의 드레스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