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갑인 이 집은 내가 감당하기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첫인상은 좋았는데, 지내보니 단점이 자꾸 눈에 띈다. 집도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나는 아직 이 일을 감당할 만큼 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걱정이 됐던 것은 베란다였다. 샤시는 낡았고, 방충망은 바람에 날아가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15년 전쯤에 이 동네가 더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았을 때, 베란다를 통해서 도둑이 들었었다. 그래서 보안에 취약한 베란다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사람도 많이 다니고 베란다 뒤로 가로등도 생겼다. 샤시와 방충망을 문의했던 업체 사장님들이 공통적으로 요즘에는 도둑도 별로 없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베란다는 문제가 많았다. 바닥의 타일이 여기저기 깨져있었고, 벽은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겨울에 온도차가 심하면 곰팡이가 잘 생긴다고 했다. 창문을 자주 열어서 통풍을 시켜줘야 한다고. 입주청소를 하면서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 곰팡이를 지웠다. 그리고 집 앞 페인트 가게에 가서 곰팡이 방지 페인트를 샀다.
페인트를 발라본 적도 없고, 어떻게 바르는지도 찾아보지 않고 무작정 발랐다. 페인트 가게에서 추천해준 붓으로 발랐는데 팔이 빠질 것 같았다. 그제야 여기저기 물어보고 검색해보니 롤러로 바르는 게 훨씬 빠르다고 했다.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세밀하게 발라야 하는 곳만 붓으로 먼저 발라준 뒤 롤러를 이용해 넓게 발랐다. 그래도 힘들긴 했다. 계획으로는 세 번 바르려고 했는데 두 번으로 만족했다. 그럼에도 확실히 더 깨끗해 보였다.
페인트칠 전후
벽은 해결했지만, 더 큰 문제는 바닥이었다. 타일이 다 깨져있었다. 타일공사는 돈도 없고 일이 너무 커질 것 같아서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인터넷에서 데크를 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무 데크를 깔면 베란다가 캠핑 분위기를 낼 것 같았다.
가격이 제법 나가는 데크를 사서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베란다의 사이즈에 딱 맞질 않았다. 벽이 울퉁불퉁해서 데크 3개가 딱 맞는 곳도, 조금 모자란 곳도 있었다. 톱으로 데크를 자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나무와 플라스틱을 자르느라고 고생 고생하다가 결국 많은 데크를 남기고 포기했다. 진짜 울고 싶었다.
일을 하다 마는 것도 잘 못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서 잔뜩 짜증이 났다. 혼자서 하니까 어디 물어볼데도 없고, 모든 결정도 혼자 내려야했다. 데크가 싸지도 않은데 돈도 시간도 내 팔뚝도 아까워서 씩씩댔다. 할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나를 다독이고 데크가 끼워지지 않는 일부분은 그냥 비워놨다.
게다가 세탁기 설치해주시는 기사님이 데크 위에 세탁기를 설치하는 것이 더 불안하다고 하셨다. 데크도 같이 흔들리면 더 진동이 커진다고. 그래서 깨친 타일 위에 설치해주셨는데, 진동이 있어서 고장의 원인이 된다고 경고하셨다. 타일 공사를 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데크를 깔고 남는 부분은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기로 했다. 엄마가 이모네집 베란다에 깔아놨다고 해서 알게 되었다. 다행히 가위로 자를 수 있어서 데크보다 쉬웠다. 하지만 자를 때 손이 아픈 건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깐 매트는 동그랗게 말려서 펴질 생각을 안 했다. 엄마 말에는 펴질 때 되면 펴진다고 했는데 그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베란다 바닥 정리 전후
세탁기 뒤에 보일러와 흉물처럼 생긴 철근으로 된 수납공간을 가리기 위해 커튼도 사서 달았다. 조금 어색하지만 베란다의 단점은 대충 가려 놓은 거 같다.
가림막 커튼
두 번째는 방충망이다. 나는 벌레를 너무너무 싫어해서 봄부터 가을까지 액체 모기약을 24시간 틀어놓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 집의 방충망은 너덜너덜하고 심지어 몇 개는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날파리는 물론 미세먼지까지 막아준다는 미세방충망이 있다는 걸 찾아냈다. 거실과 안방, 베란다, 화장실에 각 하나씩 방충망을 달았다. 화장실은 아예 방충망이 없어서 그물을 씌워놓은 거였다고 한다. 잠금장치까지 달아서 46만 원에 맞췄다. 여름이 되면 이 방충망의 효용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잠금장치가 달린 방충망
방충망 사장님께 부엌 유리창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유리 집에 가서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창문이 라운드로 되어 있어서 깎는 기술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틀을 들고 유리 집에 가보라고 조언해주셨다. 다 봐주시고 나가시더니 다시 초인종을 누르셨다. 유리틀을 가져가겠다는 것이었다.
유리 없는 부엌 유리창
"이거 하려면 또 10년 걸릴 거 아니에요?"
쿨하게 말하시더니 유리틀을 떼어가셨다. 집 여기저기 망가진 곳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걸 다 아셨나 보다. 샤시도 오래되고 방충망도 찢어진 걸 기워놨는데 모를 수야 없었을 것이다. 쿨하면서도 친절한 사장님을 보면서 충청도의 기운을 느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님의 수고에도 유리창을 만들어줄 수 있는 곳은 못 찾았고... 그대로 다시 끼워놨다.
세 번째 문제는 술이 얼큰하게 취해있는데 터졌다. 이사를 아직 하지 않았지만, 가전과 식탁은 들어온 상태에서 회사 동료들을 초대했었다. 다 먹고 다 같이 설거지를 하는데 싱크대 밑에서 물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밤이고 다들 술에 취해서 무슨 일인지 파악도 안 됐다. 대충 물만 닦고 다들 돌려보냈는데, 텅 빈 집에서 새어 나오는 물을 보자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흘러나왔다.
그렇게 운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서른 넘어서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며칠 전이 새해여서 엄마를 만났는데 엄마가 자꾸 애기 취급을 해서 서른둘이라고 당당히 말했었다. 애기가 내복을 안 입고 다닌다고 어찌나 잔소리하던지... 그런데 싱크대에서 물이 새니 엄마한테 전화해서 애기처럼 울어버렸다. 그 애기가 술을 몇 병 마셨는지는 모르겠지.
그동안 쌓인 이사 스트레스가 터져 나온 것 같다. 사실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서 무리를 해서 이 집에 들어왔다. 집을 두 달 정도 비워두고 돈은 여기저기서 다 끌어왔는데 살고 있는 집은 나갈 생각을 안 했다. 이사가 순탄치 않으니 큰 집은 큰 짐처럼 느껴졌다.
술주정인지 진심인지 모를 눈물바람이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다음날 집으로 와서 싱크대를 봐줬다. 수리업체를 소개받아 싱크대 공사를 맡겼다. 엄마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 됐다. 뭐든 아무렇지 않은 듯 뚝딱 해결하는 사람. 그게 진짜 어른이 아닐까?
싱크대 공사도 문제였다. 빈집이어서 공사할 때 가게 연락 달라고 했더니 안 와도 된다고 그냥 하고 가겠다고 했다. 공사 끝나고 집에 가봤더니 난리가 그런 난리가 없었다. 베란다 문은 열어놓고 쓰레기는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물어 젖은 수건도 부엌에서 현관까지 흩뿌리듯 버려져있었다. 거실의 멀티탭도 가져다 쓰고 전원을 안 끄고 갔다. 뿐만 아니라 배관 주변은 뻥 뚫려있었고 싱크대 걸레받이도 안 껴주고 갔다.
싱크대 공사 후 현장
화가 나서 업체에 전화해서 따졌더니 사장님이 전화를 뚝 끊어버리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 세입자 아가씨가 이상한 걸로 트집 잡는다고... 엄마가 집주인이고 내가 세입자인 줄 알았는지 나랑은 얘기도 하려 하지 않는다.
엄마한테 사진 보여주고 엄마가 연락해보라고 했던 거라 엄마도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사장님한테 자기도 확인했는데 이렇게 공사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마무리해달라고 했더니 사장님은 바로 알겠다고 했다.
항의 후 싱크대 마무리
세입자의 서러움인지 어려 보여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약자가 아닐까 걱정할 상황이 종종 생긴다. 이사하면서 가전이나 가구, 인터넷 설치를 왔을 때도 혼자 산다고 말하기가 꺼려진다. 그런데 기사님들은 꼭 물어본다. 이 큰 집에 혼자 사냐고.
대충 할머니 집이라고 둘러대지만, 안방에 하나 있는 침대와 집안의 분위기가 혼자 사는 여성의 집이라는 걸 숨길 수 없게 한다. 내가 이사하면서 힘든 것은 집의 문제보다는 내가 혼자인 탓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돕고 기댈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모두 내가 해야할 일이 되기 때문에.
화장실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다. 촌스러운 수납장, 타일 사이에 깨진 줄눈, 세입자가 달아놓은 환풍기 때문에 다 닫히지 않는 창문까지... 닳아있는 문턱과 평평하지 않은 바닥도 눈에 거슬린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살면서 다 고칠 수 있을까?
숙제가 있으면 바로 다 해버려야 하는 내 성격도 집 때문에 많이 느긋해질 것 같다. 당장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