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는 왕의 침전을 지키는 지밀 궁녀였다. 생각시를 벗어나 지밀 궁녀가 되었을 때는 너무 기뻐 며칠 동안은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지밀 궁녀는 궁녀 중 봉급이 가장 많고 격이 높았다. 그중에서도 전하를 곁을 지키는 대전의 지밀 궁녀이니 앞으로의 궁녀 생활이 탄탄대로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성희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을미년의 쌀쌀한 가을 어느 날 궁에는 변고가 터졌다. 궁인들의 비명소리가 궁을 울렸으나 그녀는 전하의 곁을 지켜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성희가 전하의 곁을 지키는 일이 어쩌면 천운 인지도 몰랐다. 그날 궁에서 죽어나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적떼가 밤을 타 궁 담장을 넘던 날, 이 나라의 국모가 죽었다.
전하께서는 어린 궁인들에게 다정히도 말해주시며 곧잘 주전부리도 나눠주셨다. 자신이 어린 나이에 갑자기 궁에 들어와 곤룡포를 입으시고 여러 예를 몸에 익히느라 힘이 들었다며 어린 궁인들을 안쓰러워하셨다. 가족들은 보고 싶지 않니? 어린 손으로 일을 하는 게 고되지는 않니? 하시며 측은한 눈으로 바라봐주셨다. 하여 우리 상감마마께서는 참으로도 어지시고 수발들기 편한 상전이라 생각했다.
궁이 피로 물들던 밤 이후 대전을 포함한 궁궐 전체의 기운이 바뀌었다. 전하께서는 작은 일에도 노여워하셨고 항상 불안에 떠셨다. 수라를 드시는 일도 침수를 드시는 일도 한 번에 되지 않았다. 수라는 수차례 확인하면서 따뜻할 때에 잡수진 적이 없었다. 그마저도 불안증이 도지시면 내팽개쳐지기 일 수였다. 침수를 드실 때면 누가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고 당부하고 수차례 반복하고 선잠이 드셨다가,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셨다. 성희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매사에 조심, 또 조심했다.
종종 흐느끼시며 중전을 부르시는 일도 있었다. 그 소리가 너무도 처량해 눈물을 훔치지 않는 궁인들이 없었다. 전하께서 울화증이 도지시는 날에는 보이는 물건들을 던지시고 미친 소리를 중얼거리셨다. 그런 날은 전하를 모시는 성희의 손에 상처가 새로 생겨났다. 그럼에도 전하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분의 가슴에는 더 큰 상처가 매일매일 새겨지고 있다는 걸을 알기 때문이었다.
"안쓰러운 분"
성희는 자신만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하를 바라보는 눈빛이 불충하게도 전하께서 어린 궁인들을 돌아보시던 눈빛보다 더 짙은 연민이 담겨있었다. 이 땅에서 가장 높으신 분, 모든 백성들의 어버이이자, 모든 궁인들과 백성들을 가지신 분. 그러나 가장 가여운 분이셨다.
전하께서는 이 경복궁을 끔찍이도 싫어하셨다. 침을 뱉고는 언젠가 이곳을 나갈 것이라고 화를 내셨다. 끔찍하다며 진저리 치셨다. 그리고는 도적떼를 피하기 위해 파란 눈의 호랑이 굴로 들어가셨다.
지밀 궁녀인 성희도 야밤에 전하와 세자 저하를 모시고 남의 집에 숨어들었다. 전하께서는 남의 집에 오시고도 편히 숨 쉬지 못하셨다. 그렇다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셨다. 성희는 언제나와 같이 전하의 옆에서 바닥을 보며 대기했으나, 바닥은 불그스름한 나무 바닥이 아닌 딱딱한 대리석 바닥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발은 버선발이 아닌 신을 신은 발이었다.
어느 날 전하께서는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참으로 오랜만에 성희에게 말을 건네셨다.
"아이야,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꾸나."
성희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전하를 보며 덩달아 미소를 피어올렸다. 전하께서는 오랜만에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종종 중전마마의 말씀을 들으시며 지으시던 표정이었다.
"그곳에서 새로 시작할 거란다."
그렇게 성희는 황제가 된 전하를 따라 오랫동안 버려졌던 궁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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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뒤편으로 나오니 고종의 길이라고 러시아 공사관과 연결된 길이 복원되어 있었어요. 그곳에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을미사변으로 경복궁에서 명성왕후가 시해되고,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아관파천, 그 후 대한제국을 선포라고 경복궁이 아닌 덕수궁으로 환궁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