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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Nov 26. 2021

겨울비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픽션)

 깊은 산속의 산장이 촉촉하게 젖었다. 첫눈이 지난 지 몇 주는 된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겨울비가 내렸다. 마당을 들락날락거리던 다람쥐도, 칼로리를 비축하던 곰들도 뜻밖의 소식이었을 것이다.


 겨울을 대비해 이미 장작도 충분히 준비했고, 겨우내 먹을 쌀과 밀가루, 콩, 고구마와 감자, 시래기와 무, 배추, 말린 버섯, 소시지 등도 충분히 쟁여 놓았다. 겨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야 한정되어 있다. 신선한 음식은 기대하기 힘들고 이전에 수확했던 것을 비축하는 수준이다. 창고에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양의 음식이 있다.

 겨울이 왔나 싶었는데, 겨울비가 겨울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은 쟁여놓은 장작과 음식이 습기에 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창고를 점검하고 다시 출몰하는 벌레들과 짐승들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이 미물들도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져 마당에 음식을 버리듯 놓아두게 된다.


 곧 다가올 추위에 모든 생명이 잠드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고독하다. 겨울 산장에는 산장의 주인인 나 이외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 이 산은 지형이 험해서 원래 등산객이 많지 않은 곳이다. 전쟁이 나도 이곳은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을 외진 곳이라 내 보금자리를 이곳으로 정했다. 특히나 한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들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간다.

 산장에서의 겨울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을 준비할 때이다. 고독과 외로움을 견딜 준비 말이다. 내가 잘하는 것이지만 언제나 기대가 되면서도 두렵다. 혼자 사는 삶이 안락하고 좋으면서도 자꾸만 새어드는 고독은 어쩔 수가 없다.


톡톡-

 창문을 통해 빗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이미 다 메말랐다고 생각한 나도 촉촉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날씨가 풀린 날이면 창문을 빼꼼 내다보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에 지쳐 사람의 발길이 드문 산에 들어와 산장을 지었지만, 날이 풀려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면 손님이 찾아오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사람을 진짜 싫어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런 날에는 혹시 모를 손님을 위해 정성스럽게 차를 끓이고 산장을 따뜻하게 데운다. 벽난로에 장작을 태워 습기와 쌀쌀함을 몰아내고 새로 꺼낸 침구로 손님방을 단장한다.

 

 탁탁탁탁-

 따끈한 배춧국을 끓이며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마지막 손님을 위한 음식과 침실은 언제나 깨끗이 준비한다. 집에 감도는 열기에 나도 조금은 따뜻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지쳐 숨어든 산장에 노크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곳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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