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어느 날
2009년은 아버지가 처음 갑상선암 발병이 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독하게 슬프기에는 아직 그런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2007년쯤 학교에서 퇴직하시고 모처럼의 여유와 평생 원하셨던 전업화가의 삶의 기쁨을 느끼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일 텐데.
혼자 이루 추론할 수 없어 언니에게 2009년에 왜 이런 <가을밤> 같은 슬픈 그림이 그려진 건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때는 우리가 모두 같이 살았을 때이다. 하남시 집을 팔고 강동구로 와서 몇 년 흘렀을 때이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이야기해 주고 싶던 위로였는지, 가장의 삶의 무게였는지 추측해 보았다.
오래 짊어진 생계의 짐. 마음껏 그리고 마음껏 전시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가족의 생활이 저 어깨의 짐이었을 것 같아서 우리는 미안해졌다.
오래, 사회 초년생이 되기 위해 애쓰고 그렇게 사회의 일원, 4대 보험을 받고 명함이 있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아직 아는 것 없고 줄 댄 곳 없는 사회초년생들로서 긴 회사의 먹이사슬 가장 바닥맛을 보고 있던 우리였다.
지친 우리를 위로함이었거나, 또는 아버지 스스로의 짐을 떠올림이었을 것 같다.
언제나처럼 아버지스럽게 밝게, 어떻게든 감사와 희망을 찾아내보려 온갖 새와 빛을 동원해 하얗고 파랗게 그려내셨던 거라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