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진보한 문명을 이룩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류가 한낱 전염병에 너무 허무하게 당해 자존심을 상실한 시대를. 평균적인 교육 수준의 향상으로 과거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을 거라는 믿음을 상실한 시대를. 그리고 지긋지긋한 색깔론을 바탕으로 음모론을 운운하며 기어코 광화문에 모여 온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상식을 상실한 자들이 존재하는 시대를.
다른 땅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땅은 아주 오래전부터 상식이 부재한 사람들이 호의호식을 해왔다. 내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상식 대신 오히려 나라를 팔아넘긴 사람들이 도리어 잘살았고 민주주의라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을 거부하고 독재정권을 만들거나 거기에 빌붙던 자들이 더 잘살아왔다. 그리고 그토록 꿈꿔왔던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상식이 부재한 자들의 득세는 여전하다. 부정부패와 비리는 나쁜 것이라는 다섯 살짜리 어린애도 알만한 이 기본적인 상식이 여전히 우리를 배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신의 주체는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한 상식의 부재가 과연 기득권층만의 일일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상식의 부재는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계층도 가리지 않는다.
요즘 들어 늘어난 건지 아니면 미디어의 발달 때문인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기사가 하루에도 몇 개씩이나 쏟아져 나온다. 상식을 넘어선 갑질. 상식을 넘어선 폭언. 상식을 넘어선 폭력. 상식을 넘어선 살인까지. 그리고 대부분의 이 인면수심의 족속들은 당당하기 마련이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당당하게 만드는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그들은 자신들이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말마따나 모든 인간은 스스로 상식이 잘 갖춰진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존재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당당하다. 그래서 뽀찌 좀 벌어보겠다고 구급차를 막아 환자를 사망하게 한 그 택시운전기사도 이해할 수 없는 갑질로 한 경비원을 자살하게 만든 그 아파트 주민도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들의 상식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에.
이런 짜증 나는 기사를 볼수록 우리 같은 평범한 상식적인 사람들은 피로감이 쌓여만 간다. 그리고 그렇게 쌓여만 갈 뿐 도저히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이렇게 바랄 뿐이다. 부디 저 상식의 선을 넘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를. 하지만 법원의 상식은 이런 우리의 상식을 배반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칠십억 원의 돈을 횡령한 사람과, 라면 열 개를 훔친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죄가 무거울까? 대부분의 사람은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둘 다 나쁜 짓이라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굳이 비교해보자면 아무래도 라면 열 개보다는 칠십억 이라는 액수에 무게가 쏠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적인 상식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위에 언급한 두 사람이 받은 형량은 각각 다음과 같다. 징역 삼 년과 징역 삼 년 육 개월. 형량이 얼추 비슷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더 어이가 없는 건 형량이 육 개월 더 많은 쪽이 칠십억을 횡령한 쪽이 아닌 라면 열 개를 훔친 쪽이라는 것이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게 설마 이런 것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물론 위의 사례는 매우 극단적이고 단편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저런 사례 하나로 상식의 부재를 운운하는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너 따위가 뭔데 상식을 운운하며 타인을 비난하는 거냐고.
당연한 이야기이다. 상식이란 건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정상적인 지식이나 판단력을 뜻하는 용어인데 바로 이 정상적이라는 것의 범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상식이라는 건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식의 선을 정하기란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상식을 운운하며 생각이 다른 타인을 비난하는 나는 편협한 사람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자. 당신은 정말, 진심으로 상식의 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모든 사람의 상식이나 생각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들 덕분에 어딘지 나사 하나가 빠진 것만 같은 이 세상이 어찌어찌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난 그런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이해심이 쥐뿔만큼도 없는 난 그저 이런 모든 상황에 화가 날 뿐이다.
아니... 화를 넘어서 이제는 소위 말하는 빡쳐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렇게 점점 빡쳐가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점점 빡쳐 간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게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엉망이 되고 있다. 촛불시위라는 국민의 염원을 담아 출범한 정부도 알고 보니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는 것에 빡쳐 가고, 거기에 대고 여전히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며 소리만 꽥꽥 질러대는 반대 진영의 모습에 빡쳐 간다.
이해시키기보다는 일단 밀어붙이고 보는 정부의 모습에 빡쳐 가고, 거기에 맞서 파업을 하는 것까진 이해한다 치지만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모든 의료진에게 존경의 의미로 했던 ‘덕분에 챌린지’를 현장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고 면허증조차 없는 의대생들이 멋대로 훼손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월권행위에 빡쳐 간다.
대다수의 사람이 힘겹게 지켜온 생활 속 거리 두기를 꿋꿋이 어기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에게 빡쳐 가고 기어코 광화문에 꾸역꾸역 모여들어 온 나라를 또다시 난장판으로 만든 그들의 모습에 빡쳐 간다.
그리고 상식의 선을 넘어선 그 행위의 주체가 소위 말하는 이 땅의 엘리트들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그들을 비호하는 무리를 보며 빡쳐 간다.
결국, 이 모든 건 상식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일반인들보다 교육의 수준이 월등히 높은 엘리트들이 상식이 없는 게 말이 되냐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지식과 상식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지식은 책 안에 있지만, 상식은 양심 안에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상식이 부재한 자들은 이 당연한 사실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진 채 평생을 그렇게 상식이 부재한 채 살아간다.
물론 양심에서 비롯된 상식의 부재가 그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단순히 그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그것이 없다고 해도 그 사람은 누군가의 착한 자식이고 누군가의 훌륭한 부모이며 누군가의 존경을 받은 직장 상사나 동료라는 사실은 변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상식의 부재가 그들의 주변이 아닌 전혀 관련 없는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다. 누군 바보라서 비리를 안 저지르고, 바보라서 정해진 사회 규범을 준수하며 바보라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발적으로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실천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바보처럼 꾸역꾸역 상식의 선을 지키는 이유는 단 하나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유전자 어딘가에 그렇게 설정되어 있고, 철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보고 듣고 배워 왔기 때문에. 그렇게 배워온 대로 살아왔을 뿐이지 바보라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될 권리 같은 건 없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집단들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정책도, 그 어떤 이념도, 그 어떤 종교도, 그 어떤 계층도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될 정당한 권리는 없다. 제아무리 완벽한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다 하더라고 상식의 선을 넘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고 상식의 선을 넘어가며 그네들끼리만 좋아 죽는 정책이, 이념이, 종교가, 계층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 사회에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왜 멀쩡한 다수가 상식이 부재한 소수에게 피해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인류는 언제나 이런 상식이 부재한 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여왔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 곳곳에는 언제나 이런 상식이 부재한 자들이 존재해왔고 덕분에 늘 현명한 다수가 무지한 소수에게 피해를 받았다. 덕분에 우리 같은 다수가 그렇게 빡쳐 왔던 것이다. 늘, 언제나, 지금껏 말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