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부처를 불교에서 믿는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는 ‘눈을 뜬 자’로 진리를 깨달은 인간을 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진리를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불가의 오랜 가르침이다. 고로 부처란 신이 아닌 먼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선배’이자 ‘멘토’이다.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멘토 말이다.
지난 시간 동안 이 땅에는 수많은 멘토가 존재해왔다. 그들은 부모나 누이, 형제이기도 했고 때로는 친구나 동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발전하면서 멘토의 포지션이 변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멘토가 옆에서 조언해주는 스승 같은 존재였다면, 지금의 멘토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른바 셀럽이 됐다. 서적을 출간하고 강연을 하고 각종 방송 매체에 등장해서 대중에게 자신을 노출시킨다.
변화한 시대에 맞춰 탈바꿈한 멘토의 포지션은 나름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지간해서는 얻을 수 없는 가르침이나 조언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접할 수 있는 조언만큼 멘토에 대한 신상이나 과거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민낯을 드러낸 멘토의 실체가 기대를 벗어나게 되면 실망하고, 그 실망이 한계치를 넘으면 분노에 휩싸인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혜민에게 분노하고 있듯이.
한 달 전쯤 방영했던 온 앤 오프라는 방송을 보며 나는 내심 언짢았다. 그렇게 절실한 건 아니지만 나름 불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방송에 나오는 혜민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스님처럼 보이지 않았다. 웬만한 속세인보다 더 호화롭고 세련된 모습도 모습이거니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스님의 모습이라 할 수 없었다.
물론 스님들도 사람인지라 이런저런 취미를 가진 분들도 있지만, 그의 모습은 그 취미라는 범위를 훌쩍 넘어있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방송에 출연한 거지. 방송국 놈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걸 그대로 다 내보낸 거지. 불교에 크게 관심이 없던 여자 친구의 눈에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방송 내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오빠. 스님이 저래도 돼?”
솔직히 나는 그에게 큰 관심은 없다. 오래전 지인에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란 서적을 선물 받지 않았다면 더욱 관심 없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몇 페이지 보지 않고 곱게 책장에 꽂아뒀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유의 서적은 딱히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훗날 그 책이 300만 부가 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는 그런 유의 책으로 위로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그때 알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혜민은 나에게 딱히 관심은 없지만 좋은 생각과 준수한 외모 그리고 바른 인성을 지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청년들의 멘토라더라. 딱 그 정도였다. 그래서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이 어딘지 언짢긴 했지만, 딱히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신의 분노에 수년간 이 시대의 멘토였던 그의 이름이 조롱으로 얼룩지고 있는 걸 보면.
공교롭게도 멘토의 추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을 남긴 교수와 바람의 딸이라 불리던 탐험가는 한때나마 이 시대 청년들의 멘토였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서 내려온 지 오래다. 예전과는 달리 그들의 따뜻한 위로와 조언의 신빙성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시대에 맞지도 않고 이 시대를 청년으로 살아보지도 않은 자들의 허황된 이야기며 위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주장은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한때나마 믿고 의지했던 멘토의 배신에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은 과연 스스로가 당신의 멘토가 되기를 자청했을까?
멘토라는 단어는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멘토르라는 이름에서 유래됐다. 전쟁을 앞둔 오디세우스는 친구인 멘토르에게 집안과 아들 텔레마코스를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아 떠나기 전 멘토르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요청했다. 이 두 번의 요청으로 멘토르는 멘토라는 불멸의 단어가 되었다.
멘토란 이렇듯 결국 자청이 아닌 요청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언해주고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자들의 요청으로 말이다. 바로 당신이 그들에게 요청했고, 언론이 그들에게 요청했고, 시대가 그들에게 요청했다. 딱히 당신과 일면식도 없고 크게 다를 것도 없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지금도 서점의 베스트셀러 판매대에는 수많은 멘토 후보들이 당신의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편중된 취향을 가진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취향을 비난하겠다는 건 아니다. 나에게는 감히 타인을 비난할 생각도, 자격도 전혀 없다. 전혀.
다만 그런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말은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과 주장이지 당신을 향한 조언이 될 수 없다는 걸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이 세상 그 어떤 누구도 감히 당신에게 조언할 수 없다. 그 어떤 누구도 감히 당신을 이끌 수도 없다. 게다가 그들이 하는 뻔한 이야기는 이미 당신도 알고 있는 이야기다. 단지 그것을 타인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싶어, 그들에게 멘토라는 이름의 허상을 씌웠을 뿐이다. 당신 스스로가.
불가에는 살불살조라는 말이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어딘지 살벌한 이야기다. 당연히 실제로 죽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를 등불 삼아 나아가라는 불가의 핵심을 함축한 말이다. 물론 불가의 모든 가르침이 정답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하자.
당신에게는 멘토가 필요 없다. 당신이라는 여정이 시작한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