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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진도 따위

by 북장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다.

초등 2학년 수학이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단 말인가.

그런데 덧셈과 뺄셈에게 눈물을 내어주고 말았다.


초등학교 교사이고, 작년에 2학년 담임을 맡았었다.

그러면 뭐 하는가, 자식 수학 진도에 무릎을 꿇었는데.





보통 겨울방학은 현학년을 정리하고 다음 학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많은 부모들이 다음 학년 수학을 예습시키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인내하는 때인 것이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가지 덧셈, 뺄셈을 하며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렵게 해야 하는 거야?"라는 아이의 질문에 욱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라리 학원을 보내면 자식이랑 덧셈, 뺄셈 때문에 싸울 일은 없게 될까 순간 고민이 된다.


수학은 왜 배우는 걸까?

아이 말마따나 수학은 도대체 왜 우리를 이렇게 어렵게 만드는 걸까?

아이에게 내가 끊임없이 속삭이는 답은 이것이다.

"넌 지금 수학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중이야. 수학은 네가 문제와 답을 찾기 위해 실수하고 실패하는 모든 과정에서 수학적으로 관찰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표현하게끔 만들거든. 우리는 지금 수학이라는 언어로 대화하는 중인거지."

이것은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는 수학교육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방학 동안 다음 학기 예습을 모두 끝내겠다는 목표 따위는 잠시 내려놔도 되지 않을까.

그놈의 진도를 빼려다가 방법만 훑고 지나가면 안 되니 말이다.

잠시 문제집을 집어넣고 주섬주섬 수모형, 수백판 같은 교구들을 꺼내본다.

"우리 문제집은 잠깐 멈추자. 교구 가지고 엄마랑 생각 연습하자."


첫 번째, 수백판에서 눈을 감고 수 2개를 골라낸다.

무엇이 내 손에 쥐어질지 살짝의 긴장감이 더해져 아이는 보이지도 않는 허공에 코카콜라를 외쳐댄다.

두 번째, 수 2개를 수모형으로 표현해 본다.

37은 십모형 3개랑 일모형 7개, 25은 십모형 2개랑 일모형 5개이다.

세 번째, 일모형이 모여 십모형이 되게끔 가르기를 해본다.

37을 40으로 만들려면 일모형 3개가 필요하니까 25를 3이랑 22로 가른다.

네 번째, 37과 25의 합을 덧셈식으로 표현해 본다.

37+25=37+3+22=30+22=52.


하루에 세 번씩 놀이하듯 교구를 만지며 활동을 했다.

문제집을 내려놓고 이렇게 하니 그나마 아이와 싸움이 붙지 않는다.

아이의 공부정서를 지켜줘야 한다는데 엄마의 감정은 누가 지켜주는 것인지 힘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모르겠어', '하기 싫어', 엄마 미워'라는 솔직한 표현들.

'친구 누구는 벌써 2학기 수학을 공부한다더라'라는 비교의 말들.

나도 모르게 자꾸 마음을 찌르고 들어와 포기와 재촉 사이에서 흔들리게 만든다.


중심을 잡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

뚜렷한 목적과 목표가 세워져 있을 때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교육도 매한가지이다.

내 아이가 수학을 잘했으면 하는 것은 점수를 잘 받기 위함이 아니다.

수학 공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눈들 중 수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을 얻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 지혜로운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 아이에게 길을 보여준다면 아이도 그 뒤를 따라오리라 믿는다.

그러니 수학 진도 따위 살포시 뒤로 미루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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