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딸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했다.
독서모임이라기보다는 친구들과의 놀이시간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올해에는 복직을 하게 되면서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독서모임은 계속하고 싶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내게 남편이 힌트를 던져줬다.
"한 달에 한번, 주말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놀면 재밌겠다."
주말, 평일에 모일 수 없으면 주말에 모이면 되겠구나.
일 년을 함께 한 친구들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끝내기는 아쉬운데 주말에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독서모임을 하면 어떨까요?"
엄마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한 달에 한 번 책 한 권을 가족이 다 같이 읽고 모여 대화를 하는 것.
'다 같이 책을 읽고 대화를 한다'가 반응의 차이를 가르는 지점이었다.
아이만 책을 읽고 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건 환영하지만 부모들이 책을 읽고 대화를 하는 건 부담스럽다고 했다.
내가 독서모임을 가족의 장으로 확대하려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가족의 독서 문화 형성과 정착이다.
아이만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책을 가까이하며 즐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가족이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가는 것, 서로에게 책을 추천하며 읽고 생각한 바를 나누는 것을 원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 가족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모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느꼈다.
대놓고 일 벌이기 좋아하는 나에게 포기란 없다.
내게는 아이들 독서모임뿐만 아니라 엄마로서의 책모임도 있다.
2주에 한 번씩 엄마들이 책과 보드게임 등 놀잇감을 가지고 모여 서로 소개하고 빌려가는 동아리이다.
연말에 회원들은 우리끼리만의 모임이 아니라 지역으로 조금 더 확장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책나누장'이라는 주제로 안 읽는 책을 기부받고, 집에 있는 놀잇감과 책들을 가지고 나와서 파는 플리마켓 행사를 했다.
우리 나름대로 북큐레이션도 하고 유치원 아이들을 초대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들에게는 숨어있는 동지들을 만나며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직접 책나누장 활동을 해보게끔 하는 게 다음 목표이다.
동아리 엄마들과 활동을 하다 알게 된 것이 자녀들이 거의 다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사실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2학년과 1학년에 주로 포진되어 있어 독서모임 하기에 아주 좋은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의견을 제시했다.
"평일에 못 모이는 사람들도 생기고, 아이들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주말가족독서모임을 하면 어떨까요?"
이렇게 총대를 메고 주말가족독서모임의 리더가 되었다.
안정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작은 도서관 대관 신청을 해서 일 년 사용 승인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곳저곳 아이들과 일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찾으면서 많이 거절당했다.
타이밍 좋게 작은 도서관 대관 신청이라는 게 생겨 바로 신청을 했고, 도서관에서는 자기들이 원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모임을 어떤 방법으로 운영할 것인지 엄마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도, 성별로, 취향도, 배경도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해야 책 대화를 다양하게 나눌 수 있을지가 핵심이었다.
이야기 끝에 정해진 것은 주제 확장 독서와 소개, 책 대화였다.
2주 동안 탐색할 주제 하나를 정해 주제 확장 독서를 하고, 아이가 좋았던 책 한 권을 골라 자신의 언어로 소개한다.
소개 후에 두 그룹으로 분리되어 리더가 아이들과 독서 대화를 나누면서 간단한 활동을 하고, 엄마들은 주제 확장과 관련된 활동이나 아이디어 등을 공유한다.
2월 마지막주에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주제가 학교, 유치원이었는데 아이들이 책을 골라온 것도 참 다양하고 소개하는 것도 성향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스타일이어서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아이들이 책에 대한 집중력이 참 높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거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제목, 표지, 그림, 인물의 말과 행동 등 책의 요소요소들을 참 많이 즐기고 있다는 것.
분명 동아리 회원들, 엄마들이 독서와 관련하여 만든 가족의 환경, 문화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 같았다.
엄마들끼리 모이는 평일 모임에서 그림책에 푹 빠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것들이 각 가정에 어떻게 스며들었을지 상상이 되었고, 보기에 참 좋았다.
엄마들의 아이디어 공유에서는 책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들이 그림책에 푹 빠져 즐길 수 있는 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 글자에 집중시키지 말고 그림과 글 모두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하자. 한글을 해득했다고 아이 스스로 읽게 시키지 말고 함께 읽는 것이 그림책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소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말자. 첫 모임이라 아무런 방법을 언급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개를 하게 했지만 책 소개는 결국엔 독서 전중후 활동이다. 독서모임을 계속하다 보면 장면마다 중요한 문장 하나만 읽기, 자기 나름대로 문장 만들어 말하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나 인물 소개하기, 가장 공감되었던 인물의 감정 이야기하기 등 차근차근 아이들이 배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가족이 모여 있으니 엄마들의 대화 주제는 독서와 교육으로 집중되고 아이들은 책을 뽑아보느라 각자 자신의 시간에 빠져 정신이 없었다.
책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 가족들은 보드게임도 너무 익숙해서 나한테는 황금 같은 인맥들이다.
나중에는 보드게임과 관련해서도 활동들을 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외동인지라 매번 엄마, 아빠랑만 보드게임을 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 아이 친구들 중에는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없다.
보드게임도 결국엔 가족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 가족들과 모임을 함께하면 서로의 가족문화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아서 큰 기대감을 갖게 된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